여론조사 잘 읽고 싶다면? 이념 성향 비율부터

나경희 기자 2024. 4. 29.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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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은 ‘여론’이 넘쳐난 선거였다. 출구조사는 빗나갔다. 왜? 여론조사부터 출구조사까지, 논점과 궁금한 점을 문답식으로 정리했다.
4월10일 총선 투표가 끝난 뒤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국회사진취재단

4월10일 치러진 총선을 앞두고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여론조사 건수만 1990건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통신사별 여론조사 전화 차단법’이 온라인에 공유될 정도로 ‘여론’이 넘쳐난 선거였다. 72억8000만원을 들인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는 국민의힘의 개헌 저지선(101석)마저 무너질 수 있다고 내다봤지만, 실제 결과는 예측치를 벗어나 효용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여론조사부터 출구조사까지, 논점과 궁금한 점을 문답식으로 정리했다.

■ 여론조사

자동응답시스템(ARS)으로 이루어지는 여론조사 결과는 정확하지 않다?

2023년 10월 한국갤럽, 한국리서치 등 여론조사기관 34곳이 속한 한국조사협회는 조사원이 진행하는 전화면접 조사만 시행하며 ARS 조사 방식을 폐지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정치선거 전화 여론조사 기준’을 발표했다. “ARS는 정치 고관여층만이 (전화를 끊지 않고) 주로 참여해 무당층의 의견이 상대적으로 적게 표집되는 등 결과가 왜곡”되기 때문에 “과학적인 조사 방법이 아닐 뿐만 아니라, 통신 환경마저 훼손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이라는 것이다. 반면 리얼미터 등 19곳 여론조사기관이 속한 한국정치조사협회는 전화면접 역시 마찬가지로 전화 응답률이 떨어지고 있는 추세이므로 이를 근거로 과학성을 따질 수는 없다고 반박한다.

이 논쟁이 ‘고비용의 전화면접을 주로 사용하는 한국조사협회’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ARS를 활용하는 한국정치조사협회’ 간의 경쟁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전화면접에 비해 ARS 응답자의 성향이 한쪽에 더 편중돼 있다고 본다.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고문은 “ARS는 전화면접보다 응답률이 떨어진다. 정치적 의견과 욕구가 뚜렷한 사람만 응답한다는 거다. 여론조사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들여다보는 창문인데, ARS는 남의 의견보다 자신의 정치적 의견이 강한 사람이 응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전화면접보다는 좀 더 흐릿한 ‘창문’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총선 여론조사에서 왜 ‘샤이 보수’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을까?

다시 말해 왜 국민의힘 지지자가 민주당 지지자보다 응답률이 높지 않았을까? 여론조사 응답률 자체가 10~15%로 낮은데, 자신이 지지하는 쪽이 열세라고 느껴지면 응답률은 더욱 떨어진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볼 때 ‘정당 지지율’부터 보지 말고 해당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념 성향 구성비’를 먼저 살펴볼 것을 조언한다. 김영원 숙명여자대학교 통계학부 교수는 “진보·중도·보수로 나뉘는 이념 성향 구성비는 조사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이건 보정 작업을 할 수 없어 고스란히 여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해당 조사에 어느 성향의 사람들이 더 많이 응답했는지를 감안하고 결과를 해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진행자 김어준씨가 설립한 여론조사기관 ‘여론조사 꽃’의 조사 결과가 다른 곳에 비해 민주당에 유리하게 나온 이유는?

전문가들은 일종의 ‘하우스 이펙트(여론조사기관의 성향에 따라 응답자의 반응이 달라지는 현상)’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응답자가 전화를 받고 ‘여론조사 꽃에서 실시하는 조사’라는 멘트를 들었을 때, 김어준씨를 지지하는 사람은 보수 성향인 사람에 비해 전화를 끊지 않고 끝까지 조사를 완료할 가능성이 높기에 친민주당 성향의 응답자가 많이 포함됐을 수 있다. 

여론조사가 현실을 잘 반영하려면?

양질의 샘플을, 긴 기간 조사할수록 좋다. 양질의 샘플을 위해서는 응답자가 조사에 흔쾌히 응해주는 정치 고관여층이 아니라서 전화를 받지 않거나 도중에 끊어버릴 경우 다시 전화를 걸어 끝까지 조사 참여를 유도하는 ‘콜백’도 중요하다. 물론 비용이 더 들어가는 일이다. 조사 기간도 중요한데, 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보통 한 이슈가 터지면 1박2일 동안 샘플을 돌려서 조사 결과를 내놓는다. 하지만 매일 뉴스를 쳐다보고 있는 기자 혹은 언론사에게나 급박하게 보이는 이슈도 많다. 모두가 알 만한 대형 뉴스가 아니라면 시민들에게도 이슈가 확산되는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총선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공동취재

■ 출구조사

출구조사 예측치와 실제 결과가 다른 이유는?

가장 큰 이유는 전체 유권자 약 4428만11명 가운데 1384만9043명(약 31.2%)이나 사전투표를 했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제167조 제2항에 따르면, 출구조사는 ‘선거일에 투표소로부터 50m 밖에서 투표의 비밀이 침해되지 않는 방법으로 질문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만일 사전투표 출구조사 결과가 유출되면 선거일 표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2023년 3월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은 사전투표일에도 출구조사가 가능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각 여론조사기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전투표자를 상대로 전화조사를 함으로써 출구조사를 보정하는데, 이번에는 접전지 55개 지역구에서 전화조사가 이루어졌다. 나머지 199개 지역구는 접전지 전화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결과를 보정했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는 경합 지역이 많았는데, 현실적으로 전화조사를 할 수 있는 시간 및 비용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표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없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번 총선보다 사전투표율이 더 높았던 지난 대선 출구조사는 정확도가 더 높았는데.

대선 출구조사의 모집단은 대한민국 전체 유권자 4400만명이다. 이 중에서 출구조사를 한 투표소 한두 곳의 응답이 튄다고 해서 전체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총선 출구조사의 모집단은 각 선거구에 속한 주민으로 13만~27만명에 불과하다. 작은 모집단에서는 투표소 한두 곳의 응답도 큰 영향을 미친다.

어차피 몇 시간 뒤 정확한 결과를 알게 되는데, 굳이 출구조사로 막대한 비용을 써야 하나?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튜브나 각종 OTT에 밀리고 있는 지상파로서는 개표방송이 시청자들을 다시 TV 앞으로 끌어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비유하자면 개표방송은 흥행이 보증된 드라마와 같다. 그중에서도 출구조사는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에 방송사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라도 출구조사를 하는 것이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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