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3살에 “좌익 암살대원”…김광동 진화위, ‘부역자’ 낙인

고경태 기자 2024. 4. 2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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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사건(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이란 진도군 의신면·임회면에 거주하던 이들이 한국전쟁 중 인민군 점령기에 부역 행위를 했다는 이유 등으로 1950년 10월 경찰 수복 뒤, 1951년 1월까지 거주지 일대에서 경찰에게 살해된 사건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암살대원으로 활동한 적대세력(북한) 부역자'라는 이유로 진실규명(피해자 인정)을 보류한 진도 지역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 상당수가 10대 초반 미성년자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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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과거사 청산
6·25때 진도 민간인 학살 사건
경찰의 감시·탄압용 기록 근거로
즉결처형 정당화…나이도 조작
내부서도 “희생자에 2차 가해”
한국전쟁기 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 벌어져 허훈옥, 문진춘, 허윤(허균)이 허광백(가명)에게 지목돼 학살당한 의신면 골짜기 밭. 옛날 도둑들이 들끓었다 하여 도둑굴재라고도 불린다. 고경태 기자
‘진도 사건(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이란 진도군 의신면·임회면에 거주하던 이들이 한국전쟁 중 인민군 점령기에 부역 행위를 했다는 이유 등으로 1950년 10월 경찰 수복 뒤, 1951년 1월까지 거주지 일대에서 경찰에게 살해된 사건이다.

‘암살대원’은 13살이었다. 14살이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암살대원으로 활동한 적대세력(북한) 부역자’라는 이유로 진실규명(피해자 인정)을 보류한 진도 지역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 상당수가 10대 초반 미성년자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전쟁기 민간인 집단 사망 사건 등 국가폭력의 진실을 밝혀내 국민 통합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설립된 진실화해위가 2022년 12월 김광동 위원장 취임 이후 ‘부역자는 학살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기조를 뚜렷이 한 뒤 ‘부역자 색출’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미성년자마저 암살대원으로 몰아 전시 즉결처형을 정당화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겨레가 지난 17~18일 전남 진도군 의신면 만길리 현장 등을 찾아 희생자 유족 등을 취재한 결과, 지난 3월12일 진실화해위 제74차 전체위원회에서 진실규명 불능(피해자 인정 불가) 의견으로 상정되었다가 야당 추천 위원들 반대로 일단 보류된 ‘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2차)’(진도 사건) 희생자 4명 중 3명이 10대로 확인됐다.

이들 4명에 대한 진실규명이 보류된 데는 1969년 진도경찰서가 작성한 요시찰인 감시 기록인 ‘대공’ 기록이 결정적 구실을 했다. 이 기록은 10대 초반이던 이들을 한국전쟁 당시 좌익세력 쪽의 ‘암살대원’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나이 또한 실제와 달리 19~20살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한겨레 취재 결과 진실규명이 보류된 4명 중 한명인 허훈옥은 1950년 사건 발생 당시 14살로 진도중학교 1학년이었다. 동생 허경옥(87)씨는 18일 전남 장성군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나 “형은 진도중학교 1학년이었고 나는 의신국민학교(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연년생이어서 단짝처럼 함께 다녔다”고 말했다. 한겨레가 확인한 허훈옥의 호적초본에는 생년이 ‘소화(昭和·쇼와) 11년(1936년)’으로 돼 있다.

1969년 진도경찰서는 ‘대공’의 사살자 및 동 가족동향명부에 사망 당시 14살이었던 허훈옥의 ‘사살 개요’란에 ‘암살대원’이라고 적었다. 적대세력(북한)에 동조해 활동한 암살대원이어서 처형됐다는 의미다. 나이도 19살로 잘못 기재해놓았다.

같은 마을에서 희생됐으나 역시 경찰의 ‘암살대원’ 기록 탓에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김대환과 허장오도 한겨레 확인 결과 사망 당시 각각 13살과 17살이었다. 이들은 경찰 기록에 20살로 돼 있었다. 김대환의 경우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은 채 아버지·형과 함께 고기잡이를 했고, 허장오는 진도농중에 다녔다.

지난 16일 오후 열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제76차 전체위원회에서 김광동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기록학 전문가인 김익한 명지대 명예교수는 “연좌제가 있던 시절 경찰의 동향보고 문건이다. 이들이 왜 감시 대상이 돼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로서 가족의 활동을 서술한 것이라 조작 가능성이 충분한데 (추가 자료 없이) 이를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는 건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진실화해위 내부에서는 “희생자들을 부역자로 조작하는 2차 가해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진도 장성/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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