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마린 IPO 계기로…‘중복상장’ 논란 다시 부상

남지현 기자 2024. 4. 29.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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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 자회사, 분할 뒤 청약 25조 ‘돌풍’
모회사 소수주주들, 주가 급락에 부글부글
잦은 중복상장, 코리아디스카운트 한 원인
지난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에이치디(HD)현대마린솔루션 기업공개 기자간담회에서 이기동 대표이사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 최대어로 꼽혀온 에이치디(HD)현대마린솔루션(이하 현대마린)의 상장을 계기로 ‘중복상장’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상장 모회사가 알짜 사업부문을 분할한 뒤 이를 상장하는 것을 가리키는 중복상장은 그간 모회사 주가를 떨어뜨려 모회사 소수주주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정부가 두 해 전 주주권익 보호 장치를 마련했으나 현대마린 상장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은 탓에 논란이 불붙고 있다. 여기에는 지배주주와 소수주주 간의 엇갈리는 이해관계가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현대마린 신주 청약 흥행 뒤 소수주주들의 울분

28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일반 투자자 대상으로 지난 25~26일 이틀간 진행된 공모주 청약 경쟁률은 255.8대 1에 이르렀다. 청약에 몰린 증거금만 약 25조원이다. 이런 흥행 돌풍이 반갑지 않은 쪽은 모회사인 에이치디현대의 소수주주들이다. 현대마린 상장이 에이치디현대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현대마린이 한국거래소로부터 주권상장 심사 승인을 받은 지난 2월19일 이후 주가를 보면 이런 우려는 과하지 않다. 승인 이후 한 달간 에이치디 현대 주가는 약 9% 하락했다. 현대마린이 금융당국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며 상장 절차가 본격화한 지난 3월25일부턴 주가 하락세는 더 가팔라졌다. 포털 주식 게시판엔 “남은 자회사까지 다 상장하면 (에이치디현대는) 껍데기만 남을 것”이란 불만 섞인 글이 줄을 잇는다.

에이치디현대 등의 주주들은 중복상장에 따른 모회사의 주가 하락을 비교적 많이 지켜본 편이다. 한 예로 자회사 에이치디현대오일뱅크 상장 추진 당시(2022년 6월)는 물론 이보다 한 해 앞선 에이치디현대중공업 상장 때도 이 회사의 모회사이자 에이치디현대그룹의 중간지주사인 에이치디한국조선해양의 주가는 큰 폭 하락했다.

이에 대해 에이치디현대 관계자는 “주식시장에서 자회사의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 받는다면 모회사 주식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통상 회사 분할과 뒤이은 자회사 상장은 해당 사업부에 대한 전문화와 성장을 위한 자금조달을 위해 이뤄지지만 이 과정에서 모회사의 주가 하락이 동반되는 터라 소수주주들의 불만은 단골로 제기돼 왔다. 지난 2022년 자본시장연구원은 이런 불만이 근거가 있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낸 바도 있다. 연구원은 2010∼2021년 중복상장된 사례 중 자회사 상장 전 2년과 상장 후 3년간 모회사의 기업가치를 비교한 결과, 상장 후 ‘모회사의 기업가치가 유의하게 감소’했다는 내용의 분석 결과를 이 보고서에서 제시했다.

중복 상장은 코리아디스카운트의 한 요인

국외에선 중복상장이 일반적이지 않다. 신한투자증권 자료를 보면, 2021년 현재 한국 유가증권시장 내 복수상장 비율은 8.5%로 미국(0.5%), 일본(6.1%), 프랑스(2.2%) 등 선진국 대비 높다. 이런 중복상장은 모회사 주가는 물론 한국 증시의 구조적 저평가로 이어진다는 시각도 있다.

이정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중복상장은 (기업가치의) 중복 계산(더블카운팅)을 의미하는 터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불러오고 있다”고 말했다. 중복상장은 자회사의 영업실적이나 성장 가능성 등 기업가치가 자회사 주가는 물론 모회사 주가에도 반영되는 것 아니냐는 불신을 불러와 한국 상장기업에 대한 구조적 저평가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한국 증시에 드물지 않은 중복상장의 배경은 총수 일가 등 지배주주의 이해관계가 자리잡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실제 물적분할에 이은 자회사 상장은 모회사 지배주주 입장에선 자회사 사업 확장을 위한 자본 조달 부담을 덜면서도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남길남 자본연 선임연구원은 “모회사가 보유한 상장 자회사 지분은 지배력 유지 용도인 터라 매각 가능성이 없거나 낮다. 이 점은 모회사 소수주주 입장에선 지분 매각을 통한 이익 증가와 그에 따른 배당 확대 기회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모회사의 투자 가치가 감소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지난 2022년 9월부터 물적분할 후 5년 내 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 주주 보호를 위해 주식매수청구권을 도입하는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보다 근본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마린의 사례도 물적분할 뒤 7년이 흐른 현재 상장이 이뤄지는 터라 당국이 마련한 대책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5년이라는 형식적 요건보다 일반 주주의 실질적 피해는 어느 정도인지, 적절한 보상 수준과 방법은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보다 시장 환경에 맞는 대책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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