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유가 고공행진…농가 등골 휜다

김다정 기자 2024. 4. 2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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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비료 등 대부분 수입 의존
면세유 가격 1200원 돌파 임박
시설자재 값 인상 가능성 높아
“정부·지자체 관련 지원 확대를”
경북 칠곡의 한 한우 사육농가에서 농장주(오른쪽)가 수입 건초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 볼 때마다 걱정이 늘어나네요. 다음에 살 땐 많이 올라 있을까 봐서요.”

경북 칠곡에서 한우를 키우는 배정민씨(가명)는 환율이 1400원에 육박하는 ‘강달러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는 보도에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안 그래도 한우 가격이 떨어져 ‘팔면 손해’인 상황인데,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 원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사료도 가격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배씨는 “지금도 송아지 가격은 높고 한우는 낮아 2년 넘게 키워 출하해봤자 사료값을 건지기도 힘든데, 여기서 사료비가 더 오르면 경영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갑자기 조사료 재배면적을 늘릴 수도 없고 소를 안 키울 수도 없고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환율과 국제유가가 상승세를 보이면서 농가들의 근심도 커지고 있다. 기름·사료·비료 등 농업필수재 대부분이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본격적인 영농철이 시작되면서 영농 현장에서 자재 사용량이 늘어 생산비 증가에 따른 농가 채산성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특히 볏짚을 먹일 수 없는 송아지들에게 급이하는 수입 건초의 가격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환율에 유가 상승까지 더해지면 물류비 명목으로 건초 가격이 더 뛸 수 있어서다.

배씨는 “지난해 160마리를 키우며 사료비로 총 2억원 이상을 썼는데 올해는 그것보다 더 쓰게 될 것 같다”며 “키울수록 적자인 상황이 올 듯해 걱정”이라고 전했다.

벼 재배농가들의 시름도 깊다. 모내기철을 맞아 트랙터·이앙기 등 대형 농기계 사용이 증가하고 있는데 면세유 가격이 오름세를 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인 오피넷에 따르면 2월 이후 오르기 시작한 면세유 가격은 25일 현재 경유 1ℓ당 1197원으로 1200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전남 고흥군 남양면에서 16.5㏊(5만평)의 유기농 벼농사를 짓는 조공선씨(70)는 “트랙터 4대, 이앙기 3대, 콤바인 1대를 굴리면서 1년에 1만ℓ 정도의 경유를 사용하는데, 농기계에 들어가는 한해 기름값만 1000만원이 넘게 든다”며 “유가가 오르면 생산비도 한해에 수백만원이 더 들게 돼 가격이 오른다고 하면 걱정스럽다”고 하소연했다.

농기계를 활용해 농작업 대행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농협도 유가 상승은 부담스럽다. 영세·고령농을 대상으로 농작업을 대행해주는 전남 순천농협은 10년 넘게 661㎡(200평)당 16만원으로 동결했던 작업비를 올해 18만원으로 인상했다.

김정현 순천농협 영농지원센터 과장은 “인건비·유가 등이 많이 올라 작업비를 현실화했다”며 “농협에서 손해를 안고 동결하고 싶어도 대행서비스를 하는 다른 대농이나 업체에서 원가 상승분을 반영해달라고 아우성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유가 상승은 시설자재 가격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게 농업용 필름이다. 농업용 필름은 보통 석유에서 추출하는 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EVA) 또는 폴리에틸렌(PE)이라는 플라스틱 물질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국제 원유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한 자재업계 관계자는 “하우스필름·멀칭필름 등 농업용 필름의 가격이 인상될 요인이 많아 국제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며 “농업용 필름은 EVA와 PE의 원가 비중이 절반 이상이라 이들 가격이 오르면 농가경영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비료값 인상과 관련해서도 우려가 나온다. 비료는 사료나 면세유와 달리 환율과 유가 상승에 영향을 즉각적으로 받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미치는 여파가 작지 않기 때문이다.

강원 인제군 기린면에서 약 3만3058㎡(1만평) 규모로 감자농사를 짓는 전흥갑씨(68)는 “보통 감자밭 1000평에 비료를 40포대 정도 쓰는데, 전체 생산비의 20%가 비료값으로 들어간다”며 “지금은 어떻게든 견디지만 이렇게 비용이 계속 오르면 결국 두 손 들고 농사를 포기하는 농민이 속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농가들은 환율·유가 상승분을 고스란히 농가가 떠안지 않도록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관련 지원을 확대해달라고 요구한다.

순천시 별량면에서 약 66.1㏊(20만평) 규모로 벼농사를 짓는 김용춘씨(70)는 “유가가 오를 것 같으면 농협에서 귀뜀을 해줘 평상시보다 면세유를 조금 더 사놓는 등 상황에 맞춰 기름을 구매한다”면서도 “농가가 개별적으로 가격 변동에 대응하는 게 쉽진 않아 급등할 땐 보조를 더 해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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