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엔비디아 독주에 맞서… 인텔·삼성·네이버 ‘AI 생태계’ 연합

변희원 기자 2024. 4. 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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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CEO, 6월 서울 서밋 개최
그래픽=김성규

인텔이 6월 5일 서울에서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가 참석하는 ‘인텔 인공지능(AI) 서밋’을 연다.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1년에 여러 차례씩 열리는 행사이지만, 대부분 인텔 현지 법인 중심으로 치러지고 겔싱어가 직접 참석해 연설까지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번 행사에는 네이버에서 최수연 대표가 참석하고 네이버에서 AI를 담당하는 고위 임원이 연설을 한다. 삼성전자에서도 메모리 사업부의 고위 임원이 나와 ‘모든 곳에 AI가 있는 시대에 삼성과 인텔의 전략적 협업’을 주제로 연설할 것으로 알려졌다.

테크 업계는 인텔 주최 AI 행사에 자사 CEO와 함께 삼성전자·네이버의 핵심 인사가 등장하는 배경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현재 ‘AI 반도체 생태계’는 미국의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대만 TSMC, 한국 SK하이닉스가 연합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이 구축한 탄탄한 공급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텔이 삼성전자·네이버와 손을 잡으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AI 반도체 중 핵심인 AI 가속기 시장은 엔비디아가 97%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AI 가속기’는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GPU(그래픽 처리 장치)를 결합해 만드는 것으로, AI에 필수적인 연산이나 추론을 빠르게 수행한다. 엔비디아의 AI 가속기 제조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1위 TSMC, HBM 공급을 이 시장 1위인 SK하이닉스가 맡고 있다.

인텔·삼성전자·네이버의 연합은 이들의 독점력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인텔은 자체 AI 가속기를 개발했지만, 현재 시장 점유율은 0.5%에 불과하고, 삼성전자도 HBM 시장에선 후발 주자”라며 “선두 업체를 따라잡으면서 그들의 독점적 지배력에서 벗어날 필요성이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 관계자는 “새로운 고객 확보 차원에서 여러 업체와 협업을 추진 중”이라며 “특정 업체를 염두에 두고 견제나 대항하는 차원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인텔과 삼성전자, 네이버가 손을 잡는 것은 개별적으로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입지를 구축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텔은 AI 가속기, 삼성전자는 HBM의 시장 확대를 추진 중이지만, 두 회사 모두 얼마만큼의 주문을 확보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네이버는 엔비디아에서 AI 가속기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6월 인텔 AI 서밋 무대에 오르는 네이버 고위 임원의 연설 제목도 ‘GPU 없이 AI 현대화하기’다. ‘엔비디아의 GPU에 의존하지 않고 AI를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미 엔비디아와 TSMC, SK하이닉스는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TSMC와 SK하이닉스는 차세대 HBM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최근 최태원 SK 회장은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최고경영자)를 직접 미국에서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모두 갖춰져야 성장이 가능한 AI 산업의 특성상 앞으로 ‘엔비디아 생태계’나 ‘인텔 생태계’처럼 여러 기업이 손을 잡는 협력 체제는 더 많아질 것이라는 게 테크 업계의 전망이다.

그래픽=김성규

◇엔비디아 생태계에 대안 세력 등장

인텔과 삼성전자, 네이버의 협업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겔싱어 인텔 CEO는 지난 9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진행된 ‘인텔 비전 2024′ 행사에서 네이버와의 협업을 발표했다. 엔비디아의 반도체와 AI 개발 플랫폼 없이도 AI 개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AI 개발 플랫폼인 ‘쿠다(CUDA)’를 자사의 AI 가속기에서만 작동할 수 있도록 하며 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해왔다. 거의 모든 AI 개발자가 쿠다를 이용해 챗GPT 같은 AI 모델을 만들어왔기 때문에 엔비디아 이외의 다른 기업 반도체를 쓰는 게 매우 어렵다. 네이버와 인텔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공동 연구소를 만들어 AI 개발 플랫폼을 개발하기로 했다. 또 네이버는 AI를 위한 거대 언어 모델(LLM) 개발에 인텔 AI 가속기인 ‘가우디’를 활용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급성장하는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한발 뒤처져 있다. SK하이닉스와 차별화되는 공법으로 차세대 HBM 개발에 성공해 상반기 중 납품을 목표로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장 충분한 주문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새로운 공급선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정호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삼성전자도 자체 AI 가속기 개발에 나섰기 때문에 향후 이 분야에서 인텔과 경쟁 관계에 놓일 수 있지만, 당분간은 HBM 납품을 매개로 인텔과 협력 관계를 가질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와 네이버는 HBM이 필요 없는 새로운 방식의 AI 가속기 ‘마하1′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그래픽=김성규

◇AI 반도체에서 한국 입지 강해질까

인텔이 새로운 AI 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추진하면서 한국 업체인 삼성전자와 네이버를 선택한 것을 국내 테크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AI 가속기 핵심 부품인 HBM은 미국의 반도체 회사인 마이크론도 생산하고 있지만, 기술력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앞서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인텔이 네이버에 손을 내민 것도 의미가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인텔이 미국의 다른 빅테크에 러브콜을 보냈지만, 빅테크들이 엔비디아 눈치를 보느라 인텔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미국 빅테크를 제외하면 네이버처럼 한국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 속에 화웨이와 같은 중국 기술 기업과 손을 잡기가 쉽지 않았던 탓도 있다. AI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기업 간 합종연횡을 통해 새로운 ‘AI 생태계’가 더 많아질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 테크 기업들이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I 가속기(AI accelerator)

대규모 데이터 학습과 추론 등 AI에 특화된 반도체로, 흔히 HBM과 GPU(그래픽 처리 장치)를 조립해 만든다. 머신러닝(기계학습)처럼 AI에 필수적인 기능 수행을 더 가속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AI 가속기에 CPU(중앙처리장치) 등을 결합하면 기본적인 ‘AI 컴퓨터’가 된다. 대표적으로 엔비디아의 H100·H200, 인텔의 ‘가우디’가 있고, 삼성전자는 HBM이 필요 없는 ‘마하’ 시리즈를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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