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소파대파 프로젝트

성송이 씨네소파 대표 2024. 4. 2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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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송이 씨네소파 대표

어떤 일은 생각할 겨를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작년에 엉겁결에 사무실을 매입할 때도 그랬다. 공간 마련의 꿈은 좋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기에 한참 동안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부동산을 돌아다녀도 마땅한 곳은 없었고 무엇보다 돈이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건물을 소개받았고, 이후 계약을 하기까지 단 일주일이 걸렸다. 신기하게도 갑자기 약간의 돈도 생겼다. 무지막지한 ‘영끌’ 과정을 거쳐 ‘하우스 푸어’의 서막을 열게 됐지만, 그렇게 우리는 단독 주택에 입성했다.

마련한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사업적으로도 생활적으로도 여러 비전을 세웠으나, 우리가 가장 꾸준히 한 일은 고양이 사료를 사는 일이었다. 우리는 자주 보이는 몇몇을 수호묘로 지정하고 이름도 지어주었다. 서너 마리 정도가 오가면서 밥을 먹었는데 그중 한 녀석은 몸집이 작아서 ‘소파’라고 불렀다. 소파는 가끔 마당이나 2층 계단에 드러누워 낮잠을 자기도 했지만, 조금이라도 인기척이 나면 잽싸게 도망가며 곁을 주는 법이 없었다.

약 두 달 전쯤, 주간회의를 하는데 오랜만에 소파가 찾아왔다. 몰라보게 말라비틀어진 상태로 말이다. 놀란 마음에 회의를 하다 말고 가까이 다가가니 어쩐 일인지 도망도 가지 않고 우리를 쳐다보았다. 자세히 보니 입 주변이 피와 침으로 엉겨 붙어 있었고 사료에 입을 갖다 대면서도 삼키지 못했다. 녀석을 담요에 싸서 상자에 담아 병원에 데려갔다.

소파는 최악의 병을 진단받고 말았다. 치사율이 매우 높은 ‘범백’. 입원 치료가 불가피한데 치료 후에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입원비만 200만 원이 넘을 거라고도 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던 것 같다. 매달 근근이 살아가는 작은 회사인데, 고양이 치료로 그만한 돈을 쓰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완치가 된다 해도 그 이후는 어떻게 할 요량으로? 아프고 죽는 일은 사실 너무도 자연스러운 순리 아닌가. 해부학 교과서처럼 뼈만 남은 소파를 옆에 두고 병원 로비에 둘러앉아 못다 한 주간회의를 했다.

고민 끝에 우리는 치료를 시작해 보기로 마음을 모았다. 각자 다른 이유가 있었을 텐데, 나의 솔직한 이유는 길어도 이틀을 버티지 못할 것 같은 고양이의 상태 때문이었다. 길바닥에서 죽는 것보다 잠시라도 따뜻한 곳에서 지내다 가는 것이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밥을 주고 싶은 마음 정도에서 시작한 인연이 이렇게까지 커질 수 있다니, 관계라는 것에 대해 경외감이 들었다. 함부로 품은 마음에도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다.

입원을 시키고 병원을 나서면서 약간이나마 도움을 받을 수 없을까 하고 SNS에 고양이 구조 소식과 후원 계좌를 올렸다. 1.7㎏짜리 소파를 튼튼한 고양이로 만들기 위한 ‘소파대파 프로젝트’. 그런데 놀랍게도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서 후원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응원을 보냈다. 후원금으로, 또는 간절한 기도로. 그리고 ‘소파’는 다음 날부터 미친 생존력을 보이며 기적적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소파가 삶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한 것 같다고 했다. 하루하루 열심히 건강해졌다. 병원비는 180만 원이 나왔고 후원금은 180만 원이 모였다. 또한 놀라운 일이다. 소파는 정말로 제 스스로 살아난 셈이다. 꼬박 일주일을 병원에서 보내고 퇴원한 소파는 애교 많은 고양이가 되어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끝을 알 수 없는 동거 중이다. 사무실 독방 하나를 꿰차고 우리와 함께 거주 중인 녀석은 요즘 틈만 나면 과식하고 좋아하는 의자에 드러누워 나른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고양이를 발견하고 구조하고 도움을 구하고 후원을 받기까지의 모든 일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나갔다. 그때 정말 살기 위해 찾아왔던 것일까? 회의를 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서로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기꺼이 돕는 것과 또 온 힘을 다해 살아나는 것. 여기에 담긴 일련의 마음들이 아마도 올 한 해를 버티는 근육으로 자리 잡을 것 같다. 사실 소파는 작은 파도가 모여 큰 파도로 이룬다는 뜻이 담긴 우리 회사의 이름이기도 하다. 여기 두 소파가 조만간 ‘대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지면으로나마 작은 꼬맹이의 미친 생명력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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