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계 최대 반도체 단지’ 추진국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일들
세계 1위 반도체 장비 기업인 미국 AMAT가 경기도 오산에 지으려던 연구개발(R&D) 센터가 정부의 무신경 탓에 암초에 부딪혔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이 방미 성과로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투자 건으로, AMAT가 토지를 매입하고 기본 건축 설계까지 끝냈는데 국토부가 오산시 가장동 일대를 공공 택지 후보지로 발표하며 이 부지를 포함시킨 것이다. 공공 택지로 지정되면 개발 행위가 금지돼 R&D 센터 신축이 불가능해진다.
AMAT의 R&D 센터 부지는 세계 최대 규모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불과 18㎞ 떨어진 곳이다. 한국의 반도체 생태계에 동참하겠다며 투자를 결정한 글로벌 기업을 정부가 지원하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골탕 먹여도 되나. 반도체 산업을 ‘국가 전략 자산’이라고 말해 온 정부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부지 확보와 용수 문제로 3년간 첫 삽도 못 떴던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계획은 발전소 문제에 또 발목 잡혔다. SK는 LNG 발전소를 지어 반도체 공장에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지만 산업부가 ‘탄소 중립’을 이유로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는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대량 전력 공급이 어려운데, 기업이 어쩌란 말인가.
미국과 일본은 막대한 보조금을 앞세워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고 있다. 대만은 국가가 앞장서 반도체 공장의 전력·용수 공급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다. 한국에서만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송전선 문제 때문에 5년을 허비하는 식의 황당한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기업 투자액의 15%만 세액공제 해 주는 인색한 제도를 운용하면서 공장 못 짓게 온갖 방해까지 하면 어떻게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나.
현장에선 행정이 사사건건 발목 잡고 있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반도체 현안 점검 회의’에서 “국가의 모든 역량을 결집해 반도체 클러스터를 성공시켜야 한다”면서 “전력·용수·주택·교통 등 인프라 구축 상황을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 지시와 일선 부처 행정이 제각각 따로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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