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우칼럼] 양극화를 치유할 기회의 창
되레 절충·타협의 장 물꼬 틔워
당정, 野를 국정 동반자 여기고
巨野, 절제된 권력행사 선언을
양극화는 심화했지만 기회의 창은 열렸다
오히려 그 반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 세력 간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것은 양극화가 극에 달했다는 증거이다. 상대 진영을 힘으로 압도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고, 또 그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자기 확신이 삽시간에 퍼져나감은 물론, 이것이 독이 되어 민주주의를 마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압도적 승리를 이룬 쪽이 겸양과 절제라는 기본을 되새겨야 할 이유이다. 패배한 쪽은 자칫 좌절감이 분발과 자기 혁신을 막아서지 않도록 사력을 다해야 한다.
한층 격화한 양극화의 단초는 득표율 격차에서 발견된다.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득표 차이는 5.4%포인트(50.5% 대 45.1%)에 불과했다. 이 ‘근소한 차이’가 의석수에서 71석의 차이(90석 대 161석)를 낳았다. 합의된 룰에 따른 결과이므로 응당 존중되는 게 마땅하지만, 진 쪽은 가슴을 치게 마련이다.
미국이 오랫동안 게리맨더링을 통해 선거구 변경을 남용하고 결국 고질적인 정치 불신을 키운 것처럼, 우리의 경우 소선거구제가 민주주의의 정당성에 대한 유권자의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정당성 시비를 떠나, 결과적으로 소선거구제가 승자독식을 당연시하고, 패자에게 열패감을 안기는 기제가 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정치에서 발원한 승자독식의 바이러스가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 승자만이 대우받는 왜곡된 사회문화가 점점 더 견고해졌다. 정치의 양극화가 사회의 양극화를 키운 꼴이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따지는 셈이지만, 우리 사회 자체가 양극화를 키우고, 이를 정치권에 전파한 것도 사실이다. 신분 세습과 부의 양극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인구 양극화’, 남녀 간 첨예한 갈등, 온라인 증오와 혐오, 이 모든 것들이 사회를 분열시키고, 구성원의 열패감과 박탈감을 키워, 사회를 질식시키고 미래를 위협한다. 여기에 동질적인 관계와 집단을 선호하는 사회적 경향성이 생겨나고,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AI)이 확증편향을 강화하면서, 관용과 타협이 실종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은 절묘하게 집권 여당에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과두제에 단호하게 선을 긋고,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을 통해 입법 독주를 막을 수 있도록 게임의 룰을 허락했다. 섬뜩할 만치 놀라운 점은 이러한 절묘한 게임의 법칙이 결국 우리 정치가 도약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회로써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최근 협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전문가와 국민의 견해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자, 긍정적인 변화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양극화가 바닥을 친 이 시점에서 다른 이념을 가진 정치 세력들이 권력을 분점하고 함께 행사함으로써, 양극화의 상처를 치유하고 우리의 정치를 절충과 타협이 작동하는 새로운 장으로 변모시킬 기회의 창이 열렸다고 볼 수 있다.
정부와 집권 여당은 거대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여기고 협치를 즉각 이행해야 한다. 거대 야당은 172석이 남용될 때 폭정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경고를 경청하고, 집권 세력의 국정 운영을 사사건건 방해하고 발목 잡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상임위를 독점하지 않겠다고, 필리버스터 무력화 카드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절제된 권력 행사는 국민의 응어리를 보듬고 정치에 대한 신뢰를 키워, 성숙한 민주주의를 앞당길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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