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문학작품으로 함경도를 만나다

박영서 2024. 4. 28.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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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지금은 가볼 수 없는 '문학 공간'이 꿈결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저자는 주먹만 한 눈송이가 밤하늘을 채우는 함경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함경도 곳곳에 숨겨진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공간적 배경을 찾아다니고, 걸출한 선배 작가들의 작품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상세하게 살펴 본다.

독자들은 책장을 넘길수록 눈보라 치는 함경도로 빨려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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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이야기
김남일 지음 / 학고재 펴냄

"작가 이효석은 아까부터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 밤, 올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있다손 치더라도 그처럼 눈 많은 밤에야 쉬이 나타날 재간도 없을 터였다. 제19사단의 정문은 봉쇄되었고, 묵 내기 화투를 하던 젊은 치들의 발길도 진작 끊겨버렸다. 오직 막차를 기다리는 이효석만이 있을 뿐인데, 정작 그는 막차가 늦게 떠나기만을 바라고 있는지도 몰랐다. 사실, 그는 '동'이라는 이름의 카페에서 보내는 모든 순간들이 행복했다. 눈 나리는 고요한 밤. 북국의 눈송이는 유달리 굵다. 그리고 밤의 눈이란 깊은 푸른빛을 띤다." (본문 244쪽)

책에는 지금은 가볼 수 없는 '문학 공간'이 꿈결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한 세기 전 함경도다. 저자는 주먹만 한 눈송이가 밤하늘을 채우는 함경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함경도 곳곳에 숨겨진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공간적 배경을 찾아다니고, 걸출한 선배 작가들의 작품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상세하게 살펴 본다.

한설야는 소설 '과도기'(1929)를 통해 흥남질소비료공장이 처음 들어서던 때의 일을 그렸다. 이효석이 서울에서 총독부에 취직했다가 '친일파'라는 악담을 듣고 쫓기듯 처가의 고향인 함경도 경성으로 이사해 살아가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함흥 영생고보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백석은 고향 정주를 떠올리게 하는 함경도의 산들을 좋아했다. 김남천이 고향 성천에 가서 어린 기생,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바깥에 나왔을 때 내리던 눈, 그 눈 묘사는 압권이다. 이용악의 눈 앞에선 두만강은 코끼리처럼 말이 없었다.

저자는 독자들을 함경도 구석구석으로 안내하면서 문학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게 만든다. 독자들은 책장을 넘길수록 눈보라 치는 함경도로 빨려들어갈 것이다. 그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두만강, 개마고원, 주을온천 등 갈 수 없는 곳을 향한 그리움도 새삼 사무친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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