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세계 닮아가는 지구 [세계의 창]

한겨레 2024. 4. 2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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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진정한 문제는 우리가 다가오는 위기들을 모두 잘 알면서도 이를 막으려 행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듯이, 우리가 처한 위기는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문명의 공존 그리고 각 문명 내부에 존재하는 적대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다.

이처럼 우리는 위기가 임박했다고 생각하고 이를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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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넷플릭스 제공

슬라보이 지제크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우리의 진정한 문제는 우리가 다가오는 위기들을 모두 잘 알면서도 이를 막으려 행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류츠신의 에스에프(SF) 걸작 ‘삼체’(The Three-Body Problem)에서 그려진 상황과 비슷하다. 세개의 태양이 존재하는 삼체 세계에서는 태양들이 예측할 수 없는 주기로 뜨고 지고 극심한 고열기와 저온기가 반복되면서 문명들이 계속해서 멸망한다. 이곳에서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요소들과의 끊임없는 투쟁이다.

최근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환경 교란은 지구가 삼체 세계처럼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주지 않는가? 지구 온난화는 물론 우리가 목도하는 파괴적인 허리케인, 가뭄, 홍수는 ‘자연의 종말’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지구 온난화를 생각할 때 영국이 척박하고 건조한 땅으로 바뀌고, 미국 캘리포니아의 데스밸리가 큰 호수로 변해버린 때를 떠올리지만, 기후만 극단적으로 변할 뿐 여전히 기후 패턴은 어떤 규칙성을 띨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이 말해주듯 지구 기후는 혼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혼돈계에서는 평형 상태도, 규칙적인 패턴도 없다. 계절은 10년마다 심지어 해마다 크게 변화하고, 어떤 해에는 갑자기 극단적인 날씨가 찾아오지만 어떤 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도 하며, 기온도 낮은 온도와 높은 온도 사이를 큰 폭으로 오갈 수 있다. 지구 기후가 어떤 방향으로 향하는지 파악하는 게 이제 완전히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생존에 치명적일 뿐만 아니라, 계절의 반복이라는 자연의 원리도 사라질 것이다.

지구는 세개의 태양이 만드는 삼체 문제는 없지만 대신 생태 위기, 경제 불평등, 전쟁, 혼란스러운 이주, 위협적인 인공지능, 사회 붕괴 등 ‘여섯가지 위기’에 따른 문제를 겪고 있다. 이 위기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삼체 세계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혼란을 만든다. 이 위기들은 다른 위기들을 더 악화시킬까? 아니면 지금의 생태 위기를 극복하려면 자본주의와 전쟁을 넘어 전지구적인 연대로 이루어진 사회 질서로 나아가야 한다는 깨달음을 줄까? 류츠신은 작품에서 놀라운 과학기술 발명을 통한 개입을 상상한다. 하지만 그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듯이, 우리가 처한 위기는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문명의 공존 그리고 각 문명 내부에 존재하는 적대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다. 따라서 해결책은 단순히 기술적인 것에 그쳐서는 안 되며, 사회를 새롭게 조직하는 차원이 되어야 한다.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다가올 위기를 대비하는 것이다. 위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생태 위기, 전쟁, 디지털 붕괴와 같은 일들이 반드시 일어나리라 생각하고 그것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최근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익숙해져야 한다”며 유럽이 전쟁을 앞뒀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이처럼 우리는 위기가 임박했다고 생각하고 이를 막아야 한다.

우리는 중요한 일들에 대해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삶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칠 사안임에도 적절한 지식 토대를 갖추지 못한 채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곤 한다. 이는 절망스럽기 짝이 없다.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우리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능하지 않고 오히려 전능한 존재이지만, 우리가 지닌 힘이 미칠 범위를 결정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생물권(biosphere)을 완벽하게 통제할 능력은 갖지 못했음에도, 불행하게도 그 균형을 깨뜨려 인류의 존재를 위태롭게 할 힘은 지녔다.

번역 김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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