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돌파구 영수회담, 시작은 박정희 때…역대 성적표는

한상희 기자 2024. 4. 28.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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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첫 회담…한일협정 비준과 베트남 파병 합의
DJ-이회창 7차례, 가장 큰 성과…의약분업 갈등 해결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2년 만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머리를 맞대는 첫 영수회담에서 실질적인 성과가 나올지 관심이 쏠린다.

28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대통령과 이 대표는 29일 오후 2시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양자 회담을 열기로 했다. 양측이 의제를 제한하지 않기로 하면서 회담에선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등을 비롯해 의정 갈등 등 각종 국정 현안이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역대 영수회담을 보면 정국 현안이 꼬일 때마다 영수회담을 통해 타개책을 마련하고자 했지만 결과가 꼭 좋은 것은 아니었다. 당·정의 양보를 끌어내려는 야당 대표와 대통령의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헌정사 최초의 영수회담은 1965년 7월 박정희 정부 시절 이뤄졌다. 박 대통령과 박순천 민주당 대표는 당시 회담에서 임시국회를 소집해 한일협정 비준과 베트남 전쟁 파병 동의안을 다루기로 합의했다. 이후에도 4차례 더 이뤄졌지만, 대통령이 막강한 권력을 지녔던 시기여서 영수회담이 큰 정치적 기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반대로 영수회담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진 시기는 노태우 정부, 문민 정부, 국민의 정부 시기 즉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 시대였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시기이면서 보스형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당을 장악하던 시절이었다. 영수회담은 국회가 교착상태에 빠질 때마다 해결책으로 등장했고, 집권당 총재를 겸하고 있는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만남이 국정 현안을 푸는 마지막 절차로 여겨졌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영수회담은 1987년 민주화 이래 가장 성과가 큰 영수회담으로 꼽힌다. 두 사람은 2000년에만 7차례나 만나면서 약사법, 남북정상회담, 9.11 테러로 인한 민생 안정 조치 등 여러 방면에서 합의를 이뤄냈다. 2000년 6월 의약분업 문제로 진료 마비 사태를 불러온 의료대란과 관련해, 김 대통령과 이 총재는 영수회담에서 의약분업을 예정대로 추진하되, 여야 합의로 약사법을 개정하기로 합의하면서 갈등을 해결하기도 했다.

그러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당정 분리가 이뤄지면서 영수회담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 땐 영수회담이 2차례만 이뤄졌다. 또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떨어지면서 영수회담이 빈손으로 끝나는 경우가 늘어났다. 2005년 9월 영수회담에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거부했던 게 대표적인 사례다. 노 대통령은 재임 시절 "나는 행정부 수장이지 여당 영수가 아니며, 만약 영수회담을 하려면 민주당과 한나라당 대표끼리 만나 회담해야 한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명박(MB) 정부 들어서도 세 차례 회담이 열렸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이 대통령은 2008년 5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한미 쇠고기협상을 놓고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와 만났지만 소득을 얻지 못했다. 이 대통령은 17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국회에서 처리하도록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손 대표는 오히려 한미 쇠고기 협상 관련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면서 합의가 결렬됐다.

가장 최근 영수회담 사레는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만남이었다. 남북 정상회담을 2주 앞두고 문 전 대통령이 야당 대표에게 협조와 조언을 구한다는 취지였는데, 이견만 확인한 채 돌아섰다.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야당의 협조를 요청했고, 홍 대표는 '북핵 폐기를 위한 회담이 되어야 한다' '한미 동맹 강화 조치가 필요하다' 등의 의견을 전달했다. 홍 대표는 개헌 철회, 정치보복 수사 중단,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임명 철회 등을 요구했으나 긍정적인 답변을 얻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한 차례 영수회담으로 성과를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여야정 정책협의체 상설회의처럼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김대중 대통령 때와 지금은 정치 상황이 많이 다르다"며 "그땐 대통령이 집권당 총재였기에 당을 완전히 장악해서 당에 명령을 내릴 수 있었기에 야당 총재와 현안에 대해 담판낼 수 있었던 것"이라면서 "반면 지금은 대통령의 당무 개입이 위법이어서 국정 주요 현안에 대통령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지금은 총선 후 참패 분위기다. 민심의 결론이 이미 났기 때문에 대통령이 야당에 요구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손에 잡히는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대통령, 여야 대표, 여야 원내대표, 대통령실 비서실장, 정책실장 등이 참여하는 고위 정책회의를 정례화하는 데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angela02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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