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에 급증하는 ‘전업자녀’…부모도 문제라는데 [한중일 톺아보기]
2021년 다롄시에서도 횡단보도를 건너는 행인들을 향해 돌진한 차량으로 4명이 죽고 3명이 중상을 입는 등 2020년 이후 유사한 사건이 잇따르고 있죠.
지난해 7월 광둥성에서는 한 남성이 유치원에 난입해 흉기를 휘둘러 무고한 어린 생명을 3명이나 앗아가 중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들 ‘묻지마’ 사건에 공통점이 한가지 있다면 범죄자들이 전부 2030 청년들이었다는 겁니다.
지난해 6월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역대 최고치인 21.3%까지 상승했습니다. 그러자 당국은 돌연 월간 수치 발표를 중단한 뒤 올해부터 학생, 취업준비생을 제외한 ‘실제 구직자’만을 대상으로 한 반쪽짜리 수치를 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겁니다.
베이징대 경제학과 장단단 교수 등 전문가들은 중국의 실제 청년 실업률이 40%를 훌쩍 넘을 것이라고 추산하기도 합니다. 실업률이 40%를 넘는다는 건 만16∼24세 중국 청년 2.5명 중 최소 1명 이상이 실업 상태라는 뜻입니다.
한국에서도 일부 기성세대가 청년층의 눈높이를 시비거리로 삼곤 하지만, 한국과 조금 다른 건 중국은 당사자 보다도 부모들의 눈높이, 즉 그들의 체면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 입니다.
현재 중국의 대도시에서 대졸 청년이 한화로 월급 200만원 수준의 일자리를 찾는건 그리 어렵진 않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는 겁니다.
현재 중국의 부모들은 과거 산아제한 정책으로 단 하나뿐인 자식에게 어릴때부터 교육비 등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 키웠습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자식을 국내외 명문대학에 입학시켰더니, 겨우 월급 200만원 받는데를 다녀서는 부모로서 체면이 깎인다는 겁니다.
구독자 10만명을 보유하고 있는 한 왕훙(網紅·중국의 인플루언서)은 “취업이 어렵다고 하지만 부모들의 체면이 문제” 라며 “비싼 돈 들여 영미권에 유학보냈는데 유명 외국계 기업에 들어가 500만원 이상은 받아야 면이 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중국내 손꼽히는 명문대를 나왔는데도 집에서 노는 청년들이 늘고 있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상하이 명문 푸단대학교의 지난해 학부 졸업생 가운데 취업자는 18.1%에 그쳐, 최근 5년래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경기 선행이 불투명하다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채용 확대에 신중해질 수 밖에 없는데, 이로 인한 피해를 가장 직접적으로 떠안고 있는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경제적 불안정은 최근 ‘검소한 결혼식’ 등 씀씀이를 줄이는 추세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국사회는 사회적 체면을 한국 이상으로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보니 결혼식을 하면 많은 사람들을 불러 가급적 화려하게 치르는게 일반적 입니다. 평균 결혼식 비용이 33만 위안(약 6200만원)으로 지난해 기준 중국 1인당 국민 가처분소득의 8배가 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죠. 그런데 최근 Z세대 일각에서 결혼식에 돈을 가급적 적게 쓰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장래에 대한 불안으로 수중에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결혼 또는 노후연금에 쓰는걸 고민하는 청년이 늘고 있다”며 “예전 중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라고 전했습니다.
씀씀이를 줄이는 한편으로 한탕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청년들은 늘면서 지난 한해 중국의누적 복권 판매액이 사상최대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청년층에게서 발견되기 시작한 이 같은 검소한 결혼식과 복권 판매량 증가등은 과거 1990년대 버블 붕괴후 일본에서 나타났던 현상과도 묘하게 겹치는 대목 입니다.
최근 샤오훙슈(小红书)등 중국 SNS에는 청년들이 누가 더 형편없고 해괴한 모습으로 출근하는지 경쟁하듯 올리는 게시물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NYT는 이들 중국 청년들이 부적절한 복장으로 회사에 나가는 배경에는 낮은 처우와 줄어든 기회에 대한 상실감과 허탈함이 기저에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고의적 ‘자기 비하’로 눈높이에 맞지 않는 급여 등 열심히 일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불만을 반영한 행동으로, ‘탕핑주의’(身尙平·자포자기 심정으로 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가 회사에까지 침투했다는 분석입니다.
상하이의 IT회사에 다니는 한 청년은 이 같은 행동을 하는 이유를 묻자 “아무도 이런 적은 돈과 복지에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대신할 수 없을 것” 이라며 “그걸 알기때문에 옷차림이나 상사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지난 2021년 부터 공교육 분야에서 관련 교육이 공식 시작됐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모든 교육과정 교과서에 ‘시진핑 정치사상’을 포함하도록 했는데, 최근 초등교과 수학시험문제에 대거 등장해 화제가 된 ‘시진핑 어록’도 하나의 예 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접근이 해결책이 될지 의문입니다.
고용 없는 성장, 내수 부진, 투자 감소 등 복잡한 경제 사안으로 발생하는 사회현상이 애국심과 사상 교육으로 풀릴것 같지 않고 되레 청년들의 불만을 자극할 위험이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청년 실업의 근본 해결책을 찾기보다 정치적 선전에 의존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일입니다.
중국 당국은 과연 청년층의 불만을 적절하게 관리할 수 있을까요. 좀 더 현실적이고 실질적 접근방식을 찾지 않는 한 그들의 좌절감이 지도부에 대한 분노로 확산되는 일도 시간문제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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