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車만 타면 ‘짐승’…‘민폐’ 욕했지만 타고싶다, 기아도 내놓는 아빠차 끝판왕 [세상만車]
픽업트럭, ‘1석3조 슈퍼카’ 진화
“픽미 픽미 픽미 업” 본격 경쟁
세상 모든 것은 변합니다.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가 됩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도 같은 의미겠죠.
변화가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작은 변화에 불과하지만 크고 다양한 결과를 만들기도 합니다.
단지 체인지(Change)의 지(g)가 씨(c)로 바뀌었을 뿐인데 뜻이 완전히 달라진 찬스(Chance)가 되는 것처럼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주는 ‘작지만 큰 변화’입니다.
요즘처럼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작지만 큰 변화,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이 더 주목받습니다.
대표 전략은 ‘원 소스 멀티 유즈’(one-source multi-use, OSMU)입니다. OSMU는 하나의 소스·콘텐츠를 여러 상품 유형으로 전개·개발하는 것을 뜻합니다.
투자비용을 아끼면서 높은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영화를 비디오, TV 방송, 게임, 캐릭터 등으로 파생시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죠. 비슷한 포맷의 시리즈물이나 아류(亞流)물을 만드는 것도 OSMU에 해당합니다.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Star Wars)가 선구자로 여겨집니다. 미국 과학수사 드라마 CSI 시리즈(라스베가스·마이애미·뉴욕), ‘포켓몬’도 성공사례로 꼽힙니다.
‘삼시세끼’, ‘꽃보다 시리즈’ 등을 잇달아 성공시킨 ‘스타 PD’ 나영석도 OSMU의 대가라고 볼 수 있죠.
OSMU는 영화, 드라마, 게임을 넘어 기업 제품으로도 영역을 넓혔습니다. 단순히 ‘재활용’하는 수준으로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높은 마케팅 전략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현대차 아이오닉5·아이오닉6, 제네시스 GV60, 기아 EV6·EV9 등이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공유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산차 전설’ 현대차 포니도 OSMU 전략을 실천했습니다.
포니하면 차량 뒤쪽이 사선처럼 비스듬한 패스트백을 떠올리지만 국산차 최초로 해치백, 픽업트럭, 왜건에 이어 쿠페 등 가지치기 모델로 나왔기 때문이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컨버터블(오픈카), 캠핑카를 픽업 한 대(one-source)로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죠.
픽업트럭은 트럭이면서도 트럭이 아닙니다. 프레임 위에 캐빈과 적재함을 얹는 구조는 트럭과 같습니다.
하지만 트럭과 달리 캐빈과 적재함이 일체감 있게 디자인됐습니다. 적재함 게이트도 좌우 양쪽과 뒤쪽에 나 있는 트럭과 달리 뒤쪽에만 있습니다.
픽업은 가장 미국적인 차종으로 여겨집니다. 미국에서 태어날 운명을 지녔다고 볼 수 있죠.
강하고 큰 것을 좋아하는 미국인들은 강하고 투박하며 덩치 큰 마초(짐승남) 성향의 차를 ‘드림카’로 여깁니다.
미국 마초 문화의 뿌리는 19세기 금을 찾아 광활한 서부를 개척했던 미국인들의 프런티어 정신, 카우보이 문화에서 유래했습니다.
거친 황무지에서 생존하기 위해 요구됐던 강한 남성상과 큰 덩치를 숭상하는 분위기, 청교도가 가져온 가족 중심 문화, 넓은 땅과 싼 기름 값, 안전을 위한 욕구 등이 맞물린 결과죠.
현재도 차고를 갖춘 교외 주택이나 시골에 사는 미국인들 생활방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다목적 차로 여겨지죠.
편의시설이 부족하고 배달 문화가 발전하지 않은 교외나 시골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은 픽업을 화물용은 물론 출퇴근용이나 가족 나들이용으로 다양하게 사용합니다.
미국에서 열린 모터쇼에서도 관람객에게 가장 사랑받은 모델은 친환경차도, 멋진 고성능차도, 편한 세단도 아닌 픽업입니다. 픽업 공개 현장에는 언제나 미국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죠.
SUV보다 크고 넓지만 외모는 투박하고 승차감은 나쁘고 연비도 좋지 않은 ‘짐차’로 평가절하 했습니다. 주차공간이 미국보다 좁은 한국에서는 ‘민폐’라는 욕도 먹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카우보이 옷차림의 ‘짐승남’이 타는 차로 여겨졌지만 한국에서는 ‘시골 아재’가 타는 ‘소형 트럭’으로 간주됐습니다.
패밀리카로 사용하면 아빠를 못하는 게 없는 ‘슈퍼맨’으로 만들어줍니다.
온·오프로드를 가리지 않는 주행성능을 갖춰 출퇴근용도는 물론 레저용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자동차시장 화두가 된 차박(차에서 숙박)에도 최적화됐습니다.
적재함이 길고 넓어 SUV보다 편리하게 차박할 수 있습니다. 적재함이 개방돼 오픈카처럼 ‘별밤지기’ 낭만을 즐길 수 있습니다.
적재함에 커버를 설치하면 외모도 SUV처럼 변하고, 화물도 안전하게 실을 수 있습니다. 캠핑카로 컨버전(개조)할 수도 있습니다.
연간 자동차세는 2만8500원에 불과합니다. 같은 배기량의 승용차를 구입할 때보다 연간 70만원까지 아낄 수 있습니다.
활용도 측면으로 살펴보면 포람페(포르쉐, 람보르기니, 페라리)보다 더 다재다능한 패밀리 슈퍼카입니다.
국산차 브랜드들도 픽업 개발에 눈뜨기 시작했습니다. SUV가 2% 부족하다고 여기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여 새로운 틈새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죠.
포니 픽업 이후 국산 픽업 대표주자 자리는 KG모빌리티(옛 쌍용차) ‘스포츠’ 시리즈로 넘어갔습니다.
2002년 무쏘 스포츠를 내놓은 이래 코란도 스포츠, 렉스턴 스포츠, 렉스턴 스포츠 칸을 잇달아 내놓으며 ‘픽업 대명사’가 됐습니다.
현재 국내에서는 렉스턴 스포츠(칸)이 픽업 시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수입차로는 픽업 본고장 미국 출신인 쉐보레 콜로라도, GMC 시에라, 포드 레인저, 지프 글래디에이터 등이 있습니다.
시장 규모는 축소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렉스턴 스포츠(칸)는 출시된 지 오래돼 식상해졌고, 수입 픽업은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국내 판매된 픽업 10대 중 8대는 렉스턴 스포츠였습니다. 판매대수는 1만4667대로 집계됐죠. 수입 픽업 중에서는 콜로라도가 가장 많이 팔렸습니다. 판매대수는 1736대였습니다.
올해 1분기(1~3월) 픽업 판매대수는 3978대로 전년동기보다 14.6% 줄었습니다.
자동차업계는 가성비 높은 국산 픽업이 나오면 시장 규모가 다시 커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시장 규모를 키울 대표 모델로는 기아 타스만과 KG모빌리티 O100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KGM도 올해 안에 렉스턴 스포츠보다 작은 ‘O100’을 생산할 계획입니다. KGM 효자 SUV인 토레스를 기반으로 만든 전기 픽업입니다.
테슬라 전기 픽업 ‘사이버트럭’도 국내 출시될 예정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고르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게 됩니다. 픽업들이 자신을 선택해달라며 ‘픽미 픽미 픽미 업’(Pick me, Pick me, Pick me up)을 외칠테니까요.
업계 관계자는 “OSMU 성향의 픽업의 가장 큰 장점은 1석3조 효과를 창출하는 다재다능함”이라며 “기존에 없었던 국산 픽업이 나오면 SUV는 레저용으로 2% 부족하다고 여기는 아빠차 구매자들에게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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