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순환경제]② 탄소중립 달성 시민 손에…일상 파고든 재활용·잉여식품 매장

헬싱키(핀란드)=홍아름 기자 2024. 4. 2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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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경제 계획 세운 핀란드 혁신 기금 ‘시트라’
“탄소중립 달성하려면 순환 경제 필수”
정부·지자체부터 소규모 매장, 교육 기관까지 나서
데이터와 AI 도입해 실현 시점 앞당길 계획
핀란드의 순환경제를 이끄는 혁신 기금 '시트라'의 건물./시트라

“단순히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정책으로는 탄소 중립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2035년까지 탄소 중립에 도달하려면 순환경제를 반드시 구현해야 합니다.”

지난 23일(현지 시각) 핀란드 헬싱키에서 만난 핀란드 혁신 기금 ‘시트라(Sitra)’의 툴리 히에타니에미 선임 리드는 핀란드가 2016년 세계 최초로 순환경제 로드맵을 발표한 이유를 설명했다. 시트라는 핀란드 정부와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준정부 기관이자 싱크탱크다. 중앙은행 기부금에서 나오는 이익과 운영 이익으로 연간 3000만유로(약 44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하면서 정부와는 독립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시트라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핀란드에서 순환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다.

핀란드는 일찍이 기후변화와 에너지에 대한 장기 전략을 꾸린 국가 중 하나다. 2008년에는 2020년까지 정부가 이행할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정책을 명시하도록 했고, 2015년에는 기후변화법(Climate Change Act)을 시행했다. 현재는 유럽연합(EU)과 함께 2035년까지 탄소 중립에 도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

이렇게 탄소 중립에 앞서 나간 핀란드지만, 2035년 탄소 중립이라는 목표는 달성이 쉽지 않다. 히에타니에미 리드는 “최근 데이터를 보면 원자력 발전소와 풍력 발전을 바탕으로 탄소 배출량이 크게 감소했지만, 숲이나 땅에 저장되는 탄소량이 줄고 있다”며 “탄소 중립, 더 나아가 배출량보다 흡수량이 더 큰 탄소 네거티브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는 노력과 함께 자연환경의 손실을 막는 또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핀란드는 국토의 4분의 3이 숲으로 덮여있을 만큼 탄소를 흡수하는 자연자원이 풍부하다. 하지만 토지 이용이나 벌목과 같은 자원 추출, 가공으로 생물 다양성의 손실이 일어나고 있다. 히에타니에미 리드는 “50년 동안 자연 자원에 대한 수요가 3배 늘었다”며 “결국 자원을 재생하거나 재사용하는 순환 경제 모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산업혁명 이후 전 세계는 선형 경제를 기반으로 했다. 채취한 자원을 이용해 물건을 생산하고, 사용한 뒤에는 폐기하는 일방향적인 구조다. 이와 달리 순환 경제에서는 폐기물을 재활용해 다시 물건을 생산하는 데 사용한다. 히에타니에미 리드는 “정부나 기관뿐 아니라 시민들도 함께 순환경제에 참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헬싱키시에서 짓고 있는 보행자 중심 지구 '쿠닌카안타미'. 나선형의 보행자 거리 양쪽에 건물이 있는 형태다./헬싱키시 홈페이지

핀란드 정부는 민간이나 공공 산림 소유자에게 일종의 인센티브를 준다. 장기적인 자연 보호와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해 숲의 일부를 보호해달라는 의미다. 재러드 럭스턴 시트라 선임 리드는 “이 정책으로 핀란드 남부의 숲 900헥타르를 보호했다”며 “상업적 목적으로 벌채됐을 산림을 10~20년 보존할 수 있는 역사적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순환경제를 위한 노력은 지자체로 이어진다. 헬싱키시는 2014년부터 녹색 전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보행자 중심 지구 ‘쿠닌카안타미’를 조성하고 있다. 시민 5500명이 거주할 수 있는 규모로 보행자 거리를 따라 건물들이 배치돼 있는 형태다. 지역에 내리는 빗물을 모아뒀다가 재활용하고, 토지를 개간하는 과정에서 나온 암석이나 나무를 건축 소재로 활용하는 친환경 방법을 도입해 환경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한다. 1층 높이 이상의 모든 건물의 지붕에는 풀을 심어 자연 환경의 비중을 높였다.

쿠닌카안타미처럼 순환경제를 목적으로 조성된 지역 밖에서도 순환경제를 실천하는 헬싱키 시민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헬싱키 거리에는 중고 재활용 매장이나 잉여식품 매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낡은 스케이트보드를 가공해 만든 귀걸이부터 군복이나 자동차 안전벨트를 재활용해 만든 의류, 가방까지 다양한 제품이 판매된다. 한 중고제품 매장을 운영하는 시민은 “재활용을 위한 재료를 수집하는 데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최근 20~30대 사이에서 중고나 빈티지 제품을 즐겨 쓰는 라이프 스타일이 유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핀란드 헬싱키에는 순환경제를 목적으로 하는 중고 재활욤 매장과 잉여식품 매장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위쪽 사진은 헬싱키 시내의 중고 재활용 매장 ‘SMH 스토어’의 모습, 아래쪽 사진은 지속가능한 음식 문화를 구축하고 순환경제를 실천하는 핀란드의 잉여식품 매장 ‘루프(LOOP)’의 모습. 루프는 식품 가공 과정에서 나오는 잉여 식품이나 기부 받은 식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헬싱키=홍아름 기자

핀란드는 2017년부터 순환경제 로드맵을 정규 교육 과정으로 확대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직업 훈련, 대학교에서 순환경제에 대해 가르쳐 사회 전체가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순환경제 기반의 학습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JA 핀란드’의 카이사 후이쿠리 책임자는 “유치원생이나 어린이들이 ‘작은 사회’를 경험하면서 자원의 순환에 대해 깨달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고 설명했다.

핀란드는 앞으로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순환 경제 구현을 위한 방식을 도입할 계획이다. 헤이키 아우라 시트라 선임 리드는 “AI로 화물을 운송하는 선박의 경로와 일정을 최적화해 배출량을 최대 40%까지 줄이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을 시험으로 확인했고, 확장할 예정”이라며 “핀란드에서 나오는 폐자동차 중 재활용이 가능한 차를 AI로 선별해 최대 2500㎏에 달하는 철강을 재활용하고, 제품의 라이프사이클 정보를 담은 디지털 여권을 도입해 자원을 추적하고 효율적으로 재활용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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