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정복은 다음 기회에···“오늘은 휴일이니까”[오마주]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여기 외계 행성에서 지구를 정복하러 온 악당이 있습니다. 언뜻 보기엔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사실 톱처럼 날카로운 이와 뾰족한 귀, 전갈 같은 꼬리를 가졌습니다. 그의 마음은 지구에 대한 악의로 가득차 있습니다. 언제든 기회만 있다면 지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작정인데···아, 그런데 오늘은 안되겠네요. 오늘은 소중한 휴일이거든요. 이번 주 오마주에서 소개할 작품은 애니메이션 <휴일의 악당> 입니다.
<휴일의 악당>의 주인공은 휴일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악당입니다. 평일에는 지구에 사는 인류를 섬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지구를 지키는 ‘레인저’들과 치열한 전투도 벌입니다. 악의 무리의 수장인 그는 지구 정복을 위한 전략을 세우고, 밑에 부하들도 관리해야 하고, 직접 싸움도 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그에게는 한가지 철칙이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일이 쌓여있어도 휴일에는 절대 일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가 휴일에 하는 일은 보통 직장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밀린 빨래를 합니다. 냉장고에 남은 우유와 달걀로 프렌치토스트를 만듭니다. 커피도 한 잔 내립니다. 빨래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아침을 먹고 그날 할 일을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순간들이지만, 이런 순간들이 모여 다음 한 주를 버틸 에너지가 됩니다. “휴일을 소중하게 보내기. 그것이 악의 선두에서 은밀히 활약하는 나의 신조이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휴일 루틴’은 동물원에 가는 것입니다. 동물원에는 판다가 있거든요. 그가 처음 판다를 만난 건 지구에 사는 생명체를 조사하던 때였습니다. ‘흑백털뭉치’라는 설명이 붙은 판다를 조사하기 위해 동물원을 찾았다가 그만 판다에게 반해버리고 맙니다. 온몸을 뒤덮은 복슬복슬한 털, 느릿느릿한 움직임, 동그란 손발…. 그는 주말마다 몇 시간씩 서서 판다를 관찰하고, 휴대폰 카메라로 수백 장의 사진을 찍습니다. 동물원에서 마주쳐 싸움을 청해오는 레인저에게도 “오늘은 휴전하자”고 합니다. 싸우는 소리에 판다가 겁을 먹을까 걱정된다면서요.
코믹 힐링 애니메이션인데, 웃기기도 하지만 회차마다 직장인이라면 위로받거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대사가 나옵니다. 예컨대 이런 것입니다. 악당은 일이 서툰 신입 직원이 늦게까지 야근을 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일을 제때 못 마쳐 혼날 줄 알았던 직원이 바짝 긴장해 “일 처리가 늦어 죄송하다”고 횡설수설하는 동안 그는 직원이 하던 일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오늘 중으로 끝낼 필요가 없는 사안이다. 무리해서 해내려고 하지 마라. 지구는 하루아침에 우리 모성의 것이 될 만큼 만만치 않다. 이건 장기전이다. 알아서 심신을 달래지 않으면 몸을 해친다. 내일은 휴일이다. 잘 쉬도록.”
<휴일의 악당>은 왓챠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공감 지수 ★★★★★ 당신이 직장인이라면 아마도?
평온 지수 ★★★★ 도파민 잔뜩인 콘텐츠에 지쳤을 때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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