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화 시대 노인 일자리] 평균 연령 67세, 최고령 87세…“이곳이 인생 2막 출발점이죠”
SPECIAL REPORT
오후 6시. 박연화(63)씨는 오늘도 이 시간에 학원 문을 나섰다. 이달 초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학원에 등록했다. 그는 사실 동년배 사이에서 소문난 ‘고스펙’ 60대 취준생이다. 사회복지사 2급에 간호조무사 자격증도 보유 중이다. 그런 박씨가 최근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간호조무사 실습을 했던 병원에서 “앞으로 3년간 같이 일해 보자”고 제의해 왔기 때문이다. 3년 근무 경력을 쌓으면 요양원 등에서 간호 업무를 할 자격이 생기는 만큼 박씨에겐 절호의 기회다. 박씨는 “진짜 이렇게 ‘인생 2막’이 펼쳐진 건 학교에 다니기로 결심하면서”라고 회고했다.
황정인(61)씨는 처음부터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진형중고 입학을 결심했다. 간호조무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학력 요건이 고졸 이상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다. 이후 황씨는 고졸 학위를 딴 뒤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한 데 이어 병원 취직까지 하게 되면서 간호조무사의 꿈을 이뤘다. 늦깎이로 도전에 성공한 건 홍일순(70)씨도 마찬가지. 진형중고 졸업 후 충주대 영어과에 진학해 학사 학위까지 받은 뒤 현재 초등학교 영어 강사로 활동 중이다.
실제로 진형중고 졸업생의 절반가량이 대학에 지원하고 있고 합격률도 90%에 달한다. 또 졸업생 다섯 명 중 한 명은 취업에도 성공했다. 학교 관계자는 “지난 4~5년 새 졸업생 중 취업자 수가 50% 이상 늘었다”며 “예전엔 못 배운 한을 풀기 위해 입학하는 만학도들이 많았던 데 비해 최근엔 취업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1교시 영어 수업이 끝나자 고윤찬(72)씨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화장실 갈 새가 어딨어요, 컴퓨터 수업 가야죠.” 수업이 시작되자 학생들이 일제히 엑셀 화면을 켰다. 선생님 말을 따라 저마다 마우스를 분주하게 움직였다. 최윤정 부장은 “최첨단 기술 시대가 되다 보니 아무래도 컴퓨터 조작 방법 등을 익히려는 욕구들이 강하다”며 “취업을 위해서도 엑셀 등 기초 지식이 필수라고 여겨지면서 그 어느 수업보다 열기가 뜨겁다”고 말했다.
고씨의 아내 박경복(67)씨도 이렇게 대학에 진학했다. 박씨는 지난해 진형고를 수석 졸업한 뒤 숭의여대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이다. 박씨처럼 졸업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전공 1순위는 사회복지학이다. 초고령화사회를 맞아 돌봄·요양 등의 수요가 크게 늘고 있는 만큼 일자리를 얻기도 상대적으로 용이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처음엔 아무리 외워도 돌아서면 까먹길 반복하니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싶어 눈물도 많이 흘렸죠. 그런데 100번은 외워야 내 것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학원 문을 나서던 박연화씨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진형중고 재학 시절을 떠올렸다. 그러곤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역시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더라고요. 저의 경력 쌓기는 이제 시작입니다. 열심히 쌓고 또 쌓아 원하는 일자리를 꼭 찾을 겁니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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