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이·조 보다 윤 대통령이 더 싫다"는 총선 민심

이정민 2024. 4. 2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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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칼럼니스트
192 대 108.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든 여권의 앞길은 칠흑 같은 어둠이다. 대통령 임기는 아직 반환점(12월) 도 돌지 않았다. 궤멸적 참패가 초래할 혼란과 국정 난맥이 벌써 아찔하다.

역대 정부에서도 여소야대는 있었다. 하지만 이번 같은 야당 싹쓸이 구도는 이례적이다. 도덕적 우위나 국민 신뢰가 높아서 야당이 이긴 건 아니다. 제1야당 대표는 대장동 등 여러 형사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법정을 들락거리는 처지고, 12석을 얻은 제2야당(조국혁신당)엔 형사 사건 피고·피의자가 즐비하다. 그 옛날 공권력이 닿지 않아 범죄자들의 해방구 같았다던 삼한시대 소도(蘇塗)가 이런 모습일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지역구 의원 투표의 절반(50.5%)을 민주당에, 비례대표의 24.5%를 급조된 신당 조국혁신당에 몰아줬다.

「 ‘이·조 심판’ 내건 국민의힘 참패
피의자 즐비한 조국당은 제3당
김건희 특검법 등 난제부터 해소
대통령이 변했다는 믿음 줘야

선데이칼럼
국민들이 별안간 이성을 잃어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비호감 야당’을 선택한 민심의 기저에 깔린 메시지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그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올바른 처방을 내릴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이재명·조국 대표의 잘못을 알고 있지만 윤 대통령이 더 싫다. 이 대표는 재판 받고 조국은 부인이 구속됐는데 윤 대통령은 뭐냐는 여론이 여당 응징 분위기로 퍼졌다”는 수도권 낙선자의 발언(총선 참패 원인 분석 토론회)은 핵심을 간파했다. 서울 도봉갑의 김재섭 당선인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은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고 당에서 내려오는 현수막은 한 번도 안 걸었다”고 했다. 당의 방침과 거꾸로 했더니 당선됐다는 고백인데, 이는 윤 대통령의 독불장군식 국정운영, 야당 심판을 총선 캠페인의 핵심 모토로 들고나온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총선 전략이 얼마나 민심과 동떨어지고 비루한 것이었는지 말해준다.

현직 검사이던 윤 대통령이 정계 입문 1년여 만에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위선을 심판하고 공정·정의로운 사회를 열어달라는 기대와 열망 때문이었다.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가 정점을 찍었다. 이처럼 남의 허물엔 추상같던 윤 대통령이 권력자가 된 뒤엔 열망을 저버리고 주변의 허물에 눈감았다. 잘못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고 주변을 ‘언터처블’의 성역으로 만들어버렸다. 국민 70%가 거부권 행사에 반대했음에도 끝내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 행사로 특검법을 폐기시켰고, “독소조항 제거후 조건부 특검 수용”(한동훈 전 위원장) 발언은 ‘대통령 격노’ 기사가 나온 후 폐기됐다. 디올백 수수엔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게 문제”라며 아예 다른 잣대를 끌어다 댔다. 도이치모터스 사건으로 기소된 핵심 피고인들 대부분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는데, 김 여사는 4년이 넘도록 소환조사 한번 받지 않았다. 그러니 이재명 대표 내외와 조국 대표 일가가 검찰 수사로 탈탈 털리고 ‘적폐’로 몰린 박근혜 정부 인사들에게 내려진 가혹한 징벌을 기억하는 국민들은 이제 윤 대통령에게 상식·공정·정의란 무엇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사실 조국당의 급부상이 아니었다면 192 대 108이라는 궤멸적 타격에까지 이르진 않았을 수도 있다. 조국당의 반전이 쏘아올린 국민의힘의 참패라 할 만하다.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총선 참패 후 윤 대통령은 반성 모드다. “국민 뜻을 받들지 못해 죄송”, “제 부족함에 대해 깊이 성찰” 발언이 이어졌다. 투명인간 취급하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회담을 제의했고, 하루에 두 차례 기자실을 찾아가 정진석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선임을 직접 설명했다. 도어스테핑(기자와의 즉석 문답)을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점으로 내세우던 윤 대통령은 취임 100일(2022년 8월) 기자회견 이후 여지껏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변화라면 변화다.

그러나 국민들의 의구심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총선 전에 비해 10~11%포인트 떨어진 23%(19일, 한국갤럽 조사)~24%(26일)를 보이는 건 대통령이 진짜 반성하고 변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용산 대통령실 주변에선 “대통령이 전국을 다니며 민생토론회를 열어 당을 도우려 했는데 한 전 위원장이 자신을 앞세워 ‘이조 심판’을 들고나와 선거를 망쳤다”며 ‘한동훈 책임론’을 주장하는 참모들이 있다고 한다. 이게 대통령의 생각인지는 확실치 않다. 총선 패배에 관한 윤 대통령의 발언은 대부분 무슨 회의나 모임을 통한 간접화법이어서 진의를 아는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과 4시간 심야 만찬을 한 홍준표 대구 시장이 SNS에 한 전 위원장을 힐난하며 ‘배신자’ ‘주군에게 대들다 폐세자’라는 글을 올렸고 대통령실이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걸 보면, 대통령 인식과 영 무관하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한 전 위원장이 건강을 이유로 대통령 만찬에 불참한 것도 이런 관측에 힘을 보탠다. 한 전 위원장을 두둔할 생각도,윤-한 갈등을 걱정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대통령과 여당이 총선 민의를 제대로 수용해 국정 기조를 확 바꾸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지 못하면 남은 임기 3년 여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건 쉽지 않을 게 불 보듯 뻔하다.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양자 회담이 29일 열린다는 소식이다. 김건희 여사, 해병대원 순직 관련 이종섭 전 국방장관 문제 등 껄끄러운 이슈부터 털고 가는 게 좋다.

이정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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