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33] 마라케시 광장의 스토리텔링
‘신의 땅’이라는 뜻의 마라케시(Marrakech)는 모로코의 아틀라스산맥 밑자락에 자리 잡은 도시다. 오아시스에서 시작, 11세기부터 왕국을 건설하며 번영하였다. 옛 시가지 메디나(Medina) 앞에는 ‘제마 엘 프나(Jemaa el-Fna)’ 광장이 있다. 이른 아침 과일 주스 노점상들로 시작되는 이곳은 하루에 세 번 그 모습을 바꾼다. 오후가 되면 코브라 쇼 등의 볼거리와 베르베르(Berber, 북아프리카 원주민) 음악가, 점성술사, 헤나 문신을 해주는 여인들, 시(詩)나 동화를 읽어주는 사람들의 퍼포먼스가 열린다. 그리고 저녁 무렵이면 ‘세계 최대의 포장마차 촌’이라는 야시장의 연기가 피어오르며 각종 야채와 양고기, 생선이 숯불에 올려진다.
각종 볼거리가 즐비하지만 하이라이트는 광장 군데군데 포진한 이야기꾼들이다. 사하라사막의 관문 도시였던 만큼, 사막으로 드나들며 유목민들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보따리를 이곳에서 풀던 전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둥근 무대와 객석이 만들어진다. 구경을 하다가 사진을 찍으니 팁을 요구한다. 1불을 줬더니 작은 의자를 주며 둘째 줄에 앉으라고 권한다. 보니까 2불 이상 건넨 관객은 맨 앞자리에 앉히고 민트차도 준다. 아랍어여서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발성과 억양, 제스처, 그리고 장단을 맞추는 피들 연주자의 배경음악까지, 공연 속으로 흠뻑 젖어드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다분히 음악적이고, 연극적이고, 또 종교적인 경험이다.
극장 역할을 하는 이 광장은 활발한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과 더불어 사회활동과 대중문화의 핵심 장소다. 이 열린 공간의 풍경, 소리, 냄새가 만드는 에너지가 대단하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지만 이 광장 역시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등재되어 있다. 전 세계에서 공공 디자인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벤치마킹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흔히 서커스를 표현하는 “지상 최대의 쇼(Greatest show on earth)”가 이 광장에서는 백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일 밤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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