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요즘 제일 친한 어린이

2024. 4. 26.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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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결혼식에 참석할 때면 문득 내 나이를 체감한다.

어릴 땐 이모나 삼촌들의 결혼식에 갔는데, 어느새 내 또래 친구들이 결혼하는 시기를 지나 이제는 나보다 훨씬 어린 동생들이 결혼하는 모습을 본다.

어린이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 '언니'나 '누나'에서 '이모'로 변했을 때 어린이를 대하는 내 태도나 마음도 사뭇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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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언니'보단 '이모'로 불리지만
그시절 친했던 아이들도 자라
아이와 쌓은 순간의 기억이
훗날 가슴 따뜻하게 만들기도

이따금 결혼식에 참석할 때면 문득 내 나이를 체감한다. 어릴 땐 이모나 삼촌들의 결혼식에 갔는데, 어느새 내 또래 친구들이 결혼하는 시기를 지나 이제는 나보다 훨씬 어린 동생들이 결혼하는 모습을 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숫자를 더해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나와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이 체험하는 삶의 의례들을 함께 통과한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는 듯하다. 늘어가는 흰머리도 나에게 노화의 징후를 알게 하지만,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이 겪는 크고 작은 인생의 단락들이 나의 나이 듦을 넌지시 일러준다. 그중에서도 무럭무럭 커가는 어린이야말로 세월의 흐름을 깨닫게 해주는 가장 반가운 지표가 아닐까. 돌이켜보면 내가 지나온 시절마다 제일 친한 어린이들이 있었다. 어린이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 '언니'나 '누나'에서 '이모'로 변했을 때 어린이를 대하는 내 태도나 마음도 사뭇 달라졌다.

나를 처음으로 '이모'라고 부른 어린이는 애인의 조카들이었다. 유달리 맑고 또랑또랑한 눈매에 마음씨가 고운 첫째 아이와 하얀 얼굴에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가 매력적인 둘째 아이가 나의 이삼십 대에 가장 친한 어린이였다. 그 아이들은 이제 훌쩍 자라 변성기와 여드름의 시기를 맞이한 중·고등학생이 되었지만, 애인과 나는 지금도 그 아이들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웃곤 한다. 세 살배기 둘째 아이가 형과 공원에서 놀다가 엄마에게 새침하게 내뱉은 말이나, 딸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들고 잇몸이 드러나도록 활짝 웃는 사진은 우리에게 하나의 전설로 남은 추억이다. 이 아이 좀 보라고, 정말 사랑스럽지 않냐고, 당시 나는 아이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공룡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공룡 다큐멘터리를 틀어줬더니 아이가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을 때, 내 얼굴을 그려준다면서 아이가 내 이마에 완구 스티커를 붙여놓고서 그 스티커만 정밀묘사로 그렸을 때, 나는 내 예상을 벗어나 자기의 방식대로 느끼고 표현하는 아이의 모습에 매번 감탄했다. 이제 그 아이는 성인의 평균치보다 키가 큰 청소년이 되었고, 뭘 먹을 때가 아니면 자기 방에서 도통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 애 인생에서 최고의 귀여움은 그때 다 이뤘나 봐."

우리는 종종 그 아이와 만든 추억을 떠올리며 그때 아이가 우리에게 선사했던 기쁨에 감사한다. 그리고 요즘 나와 가장 친한 어린이는 단연 내 언니의 아이다. 이제 세 살이 되었으니 한창 나를 이모라 부르며 내가 사준 소소한 선물들을 기억할 시기다. 아이가 좋아해서 사준 만화 속 캐릭터 가방은 아이가 늘 베고 자는 폭신한 베개가 되었고, 내가 사준 새파란 점프슈트는 아이의 세 살 무렵 사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옷이 되었다. 아이는 하루하루 인생 최대치의 모험과 배움을 거듭하며 자라고 있다. 생일 케이크만 보면 후! 하고 초를 끄고 손뼉을 치는 걸 좋아하던 아이가 최근엔 이웃집 어른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는데, 그날은 무턱대고 자기가 먼저 초를 끄지 않는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뾰로통한 얼굴로 생일을 맞은 주인공이 촛불을 끄길 묵묵히 기다리는 표정이 어찌나 기특하고 깜찍한지 나는 몇 번이나 그 모습이 찍힌 사진을 들여다봤다. 가까이 살지 않아 주로 영상 통화로 아이를 만날 때면 나는 만사를 제쳐두고 아이와 대화하려고 노력한다. 아이와 쌓은 순간순간의 기억이 훗날 내 가슴을 더 따듯하게 물들인다는 것을 알기에.

내가 한 살씩 더해간 나이는 그 시절 가장 친한 어린이들에게 받았던 기쁨으로 채워졌다. 그러니 한 사람이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쑥쑥 자라나고 있다는 성장의 표시가 아닐까.

[김멜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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