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김영하도 한강도 이 남자를 거쳐 책을 '수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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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이 남자는 한 국제도서전에서 외국인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2016년 맨부커상 수상 직후 홍대 북카페 카페꼼마에서 열린 한강 기자회견장은 언론 200개사가 군집하는 진풍경을 이뤘는데, 그날 이 남자도 회견장 귀퉁이에 조용히 서 있었다.
소설의 한국어판이 나오지도 않은 이른 시점에, 그는 책의 시놉시스를 만들어 미국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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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이 남자는 한 국제도서전에서 외국인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그날 그가 '세일즈'했던 건 다름 아닌 소설이었다. 작품 제목은 '채식주의자'. 모두가 아는 바로 그 책이다.
한강 작가를 2005년 한 문학상 시상식에서 처음 본 그는, 멀리서 일면식뿐이었던 한강의 책을 차례대로 넘기면서 '인간의 근원에 자리 잡은 어둠'을 발견했다. 그는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다.
"한강이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될 수 있겠다"고.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한강의 세계문학사적 위상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목격 중이다. 2016년 맨부커상 수상 직후 홍대 북카페 카페꼼마에서 열린 한강 기자회견장은 언론 200개사가 군집하는 진풍경을 이뤘는데, 그날 이 남자도 회견장 귀퉁이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날 그는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채식주의자'의 강력한 배후자였다. 이 남자의 역할이 없었다면 세계문학장 속에서의 한국문학의 영예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도래가 더 늦어졌을 것이다.
책 '소설 파는 남자'는 문학 에이전트인 저자의 '문학 수출기'다.
김영하 작가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도 그의 '수출품'이었다. 책은 이 소설의 판권 계약에 담긴 비화를 소개한다. 중국집에서 만난 김영하는 그의 열정에 동화돼 해외 진출과 관련한 모든 작품을 맡기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20일 뒤 저자는 뉴욕 맨해튼의 식당에서 미국 에이전트 바버라 지트워를 만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건넸다. 책은 11개국에 판매됐다. 조경란 작가의 '혀' 해외 판권 계약도 그의 작품이었다. 이 남자는 작가에게서 소설 내용을 전해 들었다. 소설의 한국어판이 나오지도 않은 이른 시점에, 그는 책의 시놉시스를 만들어 미국으로 보냈다. 책이 정식 출간되자 미국, 프랑스, 폴란드, 네덜란드, 헝가리, 이스라엘, 이탈리아에 판권이 팔려나갔다.
저자가 이 책을 쓰던 2010년 당시, 미국 출판시장에서 외국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1%에 불과했다고 한다.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는 확률보다야 높겠지만, 성공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그러나 그는 쓴다. "세계 독서 시장에 한국 소설가가 나가면 그는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인정하기 싫어도 한국문학은 변방의 문학이다. 80억 인구 가운데 한국어를 모국어로 소통하는 사람은 '소수자'다. 그렇다고 한국문학의 정신까지 협소한 것이 아님은 누구나 안다.
언어의 옷을 갈아입으면 문학은 벽을 넘는다. 누군가는 가지 않은 길을 가면서, 한 인간이 쓴 골방의 언어를 독자의 정신에 안착시킨다.
이 남자의 표현처럼, 문학 에이전트란 '한 세계와 한 세계를 연결하는 자'다. 그것은 독자가 모르던 한 세계와의 조우다.
그 만남만큼 아름다운 것도, 성스러운 일도 없어 보인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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