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채용? 희망 퇴직?…의사 줄사직에 ‘진퇴양난’ 병원들

강윤서 기자 2024. 4. 2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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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협 “출구 없는 의·정 갈등…할 수 있는 게 없다”
“‘전문의 중심’ 구조 개편 시기…병원들, 쌓아둔 준비금 꺼내야” 목소리도
비상진료체계 투입 인력, 이탈 전공의 대비 5% 수준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전국 의대 교수들이 병원과 진료과별 사정에 따라 사직을 시작한 25일 오전 대전시 중구 대사동 충남대학교병원에서 환자 보호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 이탈로 '비상 경영'을 선언한 대형병원들이 2차 위기를 맞닥뜨렸다. 병원의 기둥인 교수마저 사직 행렬에 뛰어들고 주 1회 진료가 중단되는 사상 초유의 '셧다운'이 벌어지면서다. 이른바 '빅5' 병원을 포함해 하루 10억원 이상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대형병원은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한 신규채용이 시급하면서도 의사 외 직군에겐 '반강제' 무급휴가를 권유하고 있다. 그야말로 딜레마에 빠진 상황에서 당장의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전문의 인력을 키워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기형적 인력구조를 개편할 시점이라는 목소리도 커졌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서울성모·서울아산·삼성서울 병원) 중 서울대·서울아산 병원에 이어 나머지 병원도 주 1회 전면 휴진에 동참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공의 이탈로 이미 대규모 적자에 신음하고 있는 병원들의 경영난 역시 악화될 전망이다. 

병원들도 사태 해결을 두고 진퇴양난에 빠졌다. 의료공백으로 인해 입원과 수술이 대폭 줄었지만 인건비는 고정적으로 지출되면서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급한대로 비상진료체계에 투입할 의사 신규채용을 고려하는 동시에 일반직을 중심으로 희망퇴직을 권장하는 움직임도 나온다.

대한병원협회(병협)에 따르면, 전공의 사직 후 지난 2월 말부터 3월까지 수련병원 50곳의 수입은 4238억원 감소했다. 송재찬 병협 상근부회장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병원으로선 현재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경영 측면에선 진료·수술 축소로 수입이 대폭 줄었지만 직원들 급여는 그대로라서 힘든 상황이고, 의료체계 측면에서는 톱니바퀴 몇 개가 빠지면서 의료 수요(환자)와 공급(의료 서비스)이 심각하게 어긋났다"고 토로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의 중심' 인력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전공의 이탈로 병원 전체가 휘청이면서 한국 의료의 비정상적인 인력구조가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전공의는 국내 상급 종합병원의 전체 의사 중 37.8%, 빅5 병원 기준으로는 전체 의사(7042명)의 40%(2745명)를 차지한다. 이는 보건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과 일본의 상황과 비교된다. 미 하버드대학병원과 일본 도쿄대 병원은 전공의 비율이 각각 15%, 10.2% 수준으로 국내 대형병원 전공의 비중의 약 4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저임금·장시간 노동인력인 전공의를 전문의로 대체하기 위해선 병원과 정부의 재정적 논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세 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정 교수는 "우선 병원의 자구책이 선행돼야 하는데 두 가지를 고려해볼 수 있다"며 "첫째는 병원들이 그간 코로나19 펜데믹 등 수입이 좋았던 시기에 쌓아둔 지불유보금 등을 중장기적으로 동원하는 방법을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둘째는 의사 인건비를 조절해 그간 값싼 전공의 인력으로 수입을 올려왔던 병원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건강보험을 통한 수가 조정도 강조했다. 그는 "(앞선 방법을 통해) 병원이 전문의 중심으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 국민도 그에 합당한 재정 부담을 할 것"이라며 "건강보험에서 수가 조정을 통해 그 비용을 보상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세 가지 방법을 종합·장기적으로 실현해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의 비중을 80~90%까지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연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첫 특위 회의를 마친 뒤 향후 특위 운영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규 투입 의사 591명…이탈한 전공의 '5%' 수준

전공의에 이어 교수도 병원을 떠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한 달 전 사직서를 제출한 교수들의 사직 효력이 발생하기 시작하면서다. 과로에 시달린 교수들이 주 1회 진료·수술 중단까지 선언하면서 병원도 신규 인력 확충에 부담이 커졌다.

병원들은 간호사에겐 무급 휴가, 일반직에는 희망퇴직까지 권유하는 모습이다. 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 병원은 비상경영을 선언한 뒤 간호사 등 의사 외 인력을 중심으로 무급휴가를 신청 받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다음달 31일 일반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까지 시행할 예정이며 현 상황이 연말까지 지속될 경우 순손실이 46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정부는 병원의 비상진료체계를 위해 투입된 신규 인력의 인건비를 지원에 나섰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 상급종합병원(38개소)과 공공의료기관(37개소) 총 75개 의료기관이 신규 채용한 의사는 591명, 간호사 878명이다. 복지부는 이에 비상진료 신규 채용 국고보조금 92억원 교부를 마쳤다.

그러나 각 병원이 새롭게 채용한 의사 인력은 이탈한 전공의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달 기준 집단 사직한 전공의(1만1980명) 대비 5%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는 지난 3월부터 개원의의 수련병원 진료 지원도 허용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지부 관계자는 "개원의 중 타 병원 진료를 지원하겠다고 신고된 사례가 많지 않다"며 20건 미만이라고 전했다. 

앞서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22일 "지자체장의 승인 절차 없이 개원의가 타 병원의 진료를 지원할 수 있고 병원 소속 의료인이 의료기관 외에서 진료할 수 있게 된다"며 "한시 허용 대상도 수련병원에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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