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두 개의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베트남 첩보요원”…박찬욱 감독이 전하는 신작 드라마 ‘동조자’ 뒷 이야기

이나경 기자 2024. 4. 2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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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전쟁은 두 번 벌어진다. 첫 번째는 전장에서, 두 번째는 기억 속에서.” (‘동조자’ 1화 中)

지난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진행된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박찬욱 감독은 제작 뒷 이야기를 풀어냈다. 김다희PD

박찬욱 감독이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신작 ‘동조자’로 돌아왔다.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박 감독이 택한 다음 행보는 드라마였다. 7부작으로 구성된 ‘동조자’는 BBC ‘리틀 드러머 걸’에 이어 그가 연출한 두 번째 글로벌 시리즈로 현재까지 1,2화가 공개됐다.

쿠팡플레이 독점 공개의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는 자유 베트남이 패망한 1970년대 미국으로 망명한 베트남 혼혈 청년이 두 개의 문명, 두 개의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겪는 고군분투를 다룬 작품이다.

■ 전세계가 주목하는 박찬욱의 신작, 아시아 이야기 1억 달러 넘는 HBO 투자 글로벌 프로젝트로 탄생

HBO 오리지널 리미티드 시리즈 ‘동조자’ 포스터. 쿠팡플레이 제공

한국과 베트남은 비슷한 역사의 기억을 안고 있다. 강대국에 의한 식민 지배와 독립, 이데올로기 속 서양에 의한 내부 분리. 남과 북으로 분열 후 이념을 두고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쟁. 과정은 비슷했고 결말은 반대였다.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진행된 언론시사회에서 박찬욱 감독은 “우리나라와 동병상련의 역사라는 공통점을 가진 나라에서 그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주인공 ‘대위’의 이야기가 던지는 부조리함과 아이러니는 분명 지금의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라고 말했다.

드라마는 독방을 연상케하는 어떠한 공간에 갇힌 대위가 자술서를 쓰며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대위(캡틴)는 베트남 어머니,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자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인물이다. 파란 눈을 가진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잡종’이라는 소리를 듣고 커왔다.

동시에 그는 공산 정권의 북 베트남 공작요원으로,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미국의 지원을 받는 남 베트남의 비밀경찰로 활동하는 스파이다.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대척점의 세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대위는 스스로를 “스파이, 고정 간첩, 밀정. 두 얼굴의 남자”라며 “나는 모든 일의 양면을 보는 저주를 받았다”고 표현한다.

주인공 '대위' 역을 맡은 베트남계 호주 배우 호아 쉬안데는 두 이데올로기 속 스파이로 활동하는 한 남자의 양면적인 두 얼굴을 표현했다. '동조자' 스틸컷. 쿠팡플레이 제공
주인공 ‘대위’ 역을 맡은 베트남계 호주 배우 호아 쉬안데는 두 이데올로기 속 스파이로 활동하는 한 남자의 양면적인 두 얼굴을 표현했다. ‘동조자’ 스틸컷. 쿠팡플레이 제공

‘동조자’는 퓰리처상 수상작인 베트남계 미국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 작가 비엣 탄 응우옌은 사이공이 함락된 1975년 미국으로 이주, 패배한 남 베트남 진영의 부모와 난민 캠프에서 생활하며 미국 문화와 언어를 습득하며 자란 인물이다. 소설의 매력에 빠진 박 감독은 공동 쇼러너이자 총괄 프로듀서로 작품에 참여하며 제작, 각본, 연출까지 진두지휘했다.

박 감독은 동조자를 통해 ‘양면성’이 주는 비극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떤 사안을 반대되는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능력이자 축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명쾌하게 설 수 없어 결국 스스로 분열되기 쉬운 저주가 아닐까 싶다”고 밝혔다.

극단적인 투쟁을 펼치는 두 집단의 입장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중간에 자리한 개인의 내면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무엇 하나 명쾌하고 명료하게 판단할 수 없고, 단순하게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베트남 배우를 많이 캐스팅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며 “다양한 베트남 커뮤니티에 광고를 내고 배우는 물론 한번도 연기를 접하지 않은 일반인까지 범위를 넓혔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감독이 주인공 외 가장 애착을 가진 캐릭터라고 표현한 ‘장군’역의 배우는 원래 디즈니에서 웹디자이너로 활동한, 연기를 처음 해보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게 장장 8개월 간의 캐스팅 오디션을 거쳐 우리 앞에 ‘대위’로 나타난 배우 호아 쉬안데는 이민자 부모 사이 태어난 베트남계 호주 배우이다. 동조자는 출연진 섭외부터 구성까지가 하나의 드라마였다.

‘동조자’에는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가 미국으로 망명한 ‘대위’의 주변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소피아 모리’ 역을 소화하며 극에 사실감을 더했다. ‘동조자’ 스틸컷. 쿠팡플레이 제공

■ 박찬욱이 선물하는 블랙 코미디…무겁고 어두운 이야기 ‘유머’에 담아

‘동조자’를 하나의 단어로 표현한다면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를 계속해서 강조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원작 소설에서 꼭 가져오려고 한 것이 바로 ‘부조리성’”이라며 “이 작품은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겉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의미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감독이 소설과 영화, 그 사이 드라마를 택한 이유는 무얼까. 그는 “문학 작품에는 한 편의 영화로 표현하기 어려운 풍부함이 있다”며 “원작 소설 속 인물들을 최대한 작품에 등장 시켰고, 각각의 인물이 가진 매력과 개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각색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각각의 캐릭터는 단순하지 않고 다면적이다. 대위의 상관인 ‘장군’은 수많은 죽음을 이끈 공포의 대상이지만 대위에게는 남 베트남에서의 정착을 이끌어준 존재다. CIA 요원 클로드 역시 무서운 인물이지만 대위에게는 미국의 문화를 알려주고 그를 아버지처럼 챙겨주는 존재이다. 여기에 주인공이 내레이션 형식으로 중간 중간 상황을 설명하거나 배경을 그려내는 영화적 장치를 적절히 결합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극 중 CIA 요원, 교수, 국회의원, 영화감독의 1인4역을 맡았다. 쿠팡플레이 제공

우리에게도 익숙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CIA 요원부터 오리엔탈리즘을 표방하는 동양학과 대학 교수, 국회의원과 영화감독 등 1인4역의 다역을 소화한 것 역시 “권력을 가진 백인 남성의 모습은 결국 미국의 자본주의라는 하나의 시스템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며 이를 시청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한 박 감독만의 영화적 표현이기도 하다.

박찬욱 감독의 말처럼 동조자는 주제와 배경은 심오하지만 이를 풀어내는 방식은 유쾌하고 때로 우스꽝스러우며 코믹하다. 그에 따르면 말도 안되는 이상한, 논리적이지도 않고 불쌍하기도 한 비극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씁쓸한 유머가 있다. 박 감독은 “원작에도 문학적인 표현을 통해 재치 있고 냉소적이며 흥미로운 비유가 등장하는데 드라마에서 부조리함을 드러내는 유머, 코미디를 많이 넣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묘미는 감질맛 나는 엔딩이다. 주인공이 ‘사느냐, 마느냐’ 중차대하고 손에 땀을 쥐게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대위가 말을 멈추거나, 영상이 뚝 끊긴다. 다음 화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동조자는 매주 월요일 저녁 8시에 공개(방영)된다. 어린 시절 드라마를 챙겨보던 재미를 떠올리며 작품을 만들었다는 박 감독은 “절정의 순간에 끊어버리는 ‘클리프 행어’에 대해 누군가는 저렴한 트릭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시리즈물의 강점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국내 시청자에게 모습을 드러낸 박찬욱 감독을 향한 취재진의 열기는 뜨거웠다. 이날 박 감독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동조자’를 향한 애정을 나타냈다. 이나경기자

마지막으로 박 감독은 두 가지를 당부했다. 감독은 “요즘은 시청자들이 한꺼번에 몰아보는 걸 좋아하는 시대이지만, 그럼에도 어린 시절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방영날만 손꼽아 기다렸던 것처럼 ‘동조자’를 통해 매주 1화씩 공개되는 드라마를 기다리는 재미를 느껴보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유머가 많은 작품이다. ‘과연 여기서 웃어도 될까?’라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는데, 마음껏 웃어 달라”며 “웃으라고 만든 작품이니 유머를 잘 음미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김다희 PD heeda@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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