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유공자법 심사기준·범위 불분명… 사회적 합의부터 이뤄져야”[현안 인터뷰]

정충신 기자 2024. 4. 2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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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안 인터뷰 -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동의대사건 등 논란사안도 보상
토론없이 野 단독강행 안타까워
살아있는 영웅·제복근무자 예우
유가족 종합지원 프로그램 확대
6월에 ‘코리아 메모리얼 페스타’
일상속 살아있는 보훈문화 실현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 집무실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광복 80주년이 국민 통합의 디딤돌이 되도록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며 “일상 속 살아 있는 보훈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윤성호 기자

인터뷰 =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보훈에는 좌우가 따로 없습니다. 독립·호국·민주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가치로서 두루 존중되고 계승돼야 합니다.”

지난해 12월 26일 윤석열 정부 2번째 국가보훈부 수장이자 민간 출신 첫 여성 보훈부 장관이 된 강정애(67) 장관은 취임 4개월째인 지난 22일 문화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내년 광복 80주년이 국민들에게 큰 울림을 드리고 국민 통합의 디딤돌이 되도록 사전준비단을 구성해 청년층을 포함한 온 국민이 함께 즐길 다양한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며 ‘국민 통합’을 강조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이라면 지구 반대편에 계시더라도 찾아가서 모시고 끝까지 예우하는 것이 국가의 당연한 책무”라며 내년 브라질을 직접 찾아 광복군 출신 독립유공자 김기주·한응규 지사 유해 봉환 의지를 밝혔다.

‘일상 속 살아 있는 보훈’을 올해 정책 방향으로 설정한 강 장관은 “살아 있는 영웅, 제복 근무자에 대한 예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오는 6월 현충일 주말에 서울에서 처음으로 대한민국 보훈문화제 ‘코리아 메모리얼 페스타’를 뮤직 페스티벌 형식으로 개최해 “예의와 경건함은 유지하되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떠나 일상 속 즐거움과 창의성이 숨 쉬는 ‘보훈문화의 패러다임’ 변화를 추구하겠다”는 소신도 공개했다. 강 장관 인터뷰는 26일 제1회 순직의무군경의 날을 나흘 앞두고 서울 용산 서울지방보훈청 집무실에서 이뤄졌다.

―장관 취임 4개월째인데 소감은.

“보훈 현장에서 국가유공자와 유족분들을 대할 때마다 지난해 처(處)에서 부(部)로 역사적 승격을 이룬 보훈부에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계신지 피부로 느꼈다. 저는 6·25 참전유공자 자식이자 독립운동 가문 며느리로서, 보훈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경험들을 바탕으로 국가유공자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제가 가진 조직경영의 전문성을 토대로 보훈체계를 개선하고 보훈이 국민 통합의 매개체가 되도록 보훈정책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고, 250만 보훈가족의 명예를 드높이도록 최선을 다해 받들겠다.”

―‘보훈부 장관이 되길 잘했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

“지난 설 명절을 앞두고 호남 지역 유일의 생존 독립유공자인 이석규 지사님을 찾아뵀는데, 작고한 제 시아버님을 뵙는 것 같아 너무 반갑고 존경스러웠으며 장관으로서 앞으로 더 잘 모셔야겠다고 다짐했다. 2월 말 원미산 정자 화재 경위 조사 중 순직한 고 박찬준 경위 배우자분 출산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 축하드렸다. 박 경위가 ‘복(福) 많이 받으라’는 뜻에서 지어준 태명인 ‘복복이’를 불러보며, 아버지를 대신해 국가가 이 아이에게 복을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영웅의 남겨진 자녀가 우리 모두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거대 야당이 주도하는 민주유공자법에 대한 생각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희생, 공헌한 분들을 위한 민주유공자법안이 국회에서 충분한 토론과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야당 단독으로 강행되는 것이 안타깝다. 이 법안이 보상 대상으로 규정하는 민주보상법상 보상사건에는 독재정권 반대운동뿐만 아니라 교육·언론·노동운동, 사회적 논란이 된 부산 동의대 사건, 서울대 프락치 사건, 남민전 등 다양한 사건이 포함돼 있다. 이 중 어떤 사건이 ‘민주유공사건인지’, 그 사건 관련자 중 어떤 사람을 ‘민주유공자’로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심사기준이 법안에 포함돼 있지 않고, 보훈부에서 이를 마련할 법적 근거도 없다. 법률상 민주유공자 인정에 관한 명확한 기준과 범위도 없이 보훈부가 자체 심사기준을 정해 민주유공자를 가려낼 경우 민주유공자로 등록되지 못한 분들의 극심한 반발 및 사회적 혼란이 예상된다. 이 법안은 국가유공자 결정 시와는 달리 민주유공자 결정을 위한 보훈심사위원회의 심의·의결을 임의규정으로 정하고 있어 심사 자체가 형해화될 우려도 있다. 입법 과정에서 충분한 대화와 협의를 통해 법안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와 사회적 합의가 우선 이뤄져야 한다.”

―지난달 22일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서 천안함 고 김태석 원사 막내딸 김해봄 씨가 편지를 낭독한 영상이 천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정부기관이 만든 영상 중 역대 최고 조회 수인데, 행사장 분위기가 어땠는지.

“김해봄 씨가 편지를 낭독할 때 크나큰 감동을 느꼈다. 낭독 초반부에 해봄 씨가 ‘아빠 벌써 봄이네’ 이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는데, 이미 행사장은 눈물바다가 돼 있었다. 전사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진심이 절절하게 담긴 한마디 한마디에 윤 대통령은 물론 모든 참석자들이 눈시울을 붉혔고, 국민의 공감을 얻어 보훈부 인스타그램에 게재된 해봄 씨 영상이 천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온 국민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해 준 해봄 씨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밝은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올해 주요 정책 추진계획에서 ‘일상 속 살아 있는 보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국가안보와 국민안전을 지키고 있는 군인·경찰·소방관 등 ‘살아 있는 영웅’을 더 잘 살피고 예우하며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보훈의 가치에 역점을 두고 관련 정책을 발굴·추진하겠다는 의미다. 살아 있는 영웅에 대한 책임과 존중,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웅에 대한 기억을 통해 국가보훈이 국민 통합을 이루는 매개체 역할을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히어로즈 패밀리 프로그램 확대 방향과 내용은.

“히어로즈 패밀리 프로그램은 순직한 제복영웅의 어린 자녀를 지원하는 일을 한다. 유가족 및 자녀들에게 전사·순직한 부모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자긍심을 가지고 성장하도록 돕는 종합 지원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사업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지난해 신규로 반영된 정부 예산으로 사업을 실시할 방침이다. 올해 정부 예산은 6억1700만 원을 편성했다. 지난해는 민간(우미희망재단)이 6억 원을 출연했다. 같은 아픔을 겪은 히어로즈 패밀리 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나아가 외국의 전사, 순직 영웅의 자녀와 교류하도록 캠프·탐방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국방부, 경찰청, 소방청 등 8개 기관을 만나 관계부처 간 힘을 합쳐 이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영웅과 그 자녀들을 끝까지 예우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겠다.”

―보훈위탁병원을 최고 규모로 확대하겠다고 했는데 얼마나 늘어나는가.

“고령의 보훈 대상자분들이 거주지 인근에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올해 위탁병원 176개소를 신규 지정하려 한다. 이는 단년도 기준 역대 최대 폭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현재 730개소인 위탁병원을 연말까지 920개소로 늘려 시군구 평균 4개소 이상의 위탁병원을 운영할 계획이다. 운영 중인 730개소 외에 기존 위탁병원 해지에 따른 교체 등으로 14개 의료기관을 공모 중이다. 앞으로도 위탁병원을 지속적으로 늘려 2027년까지 시군구별 평균 5개소인 1140개소의 위탁병원을 운영할 방침이다.”

―‘대한민국 보훈문화제’ 행사 일정과 계획을 말해달라.

“대한민국 보훈문화제 ‘코리아 메모리얼 페스타’를 올해 현충일 주말인 6월 8∼9일 서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최근 젊은 세대 문화 트렌드가 된 뮤직 페스티벌 형식으로 개최해 가족·친구들과 함께 하루 종일 잔디밭에서 쉬면서 보훈의 메시지를 담은 음악을 듣고 살아 있는 보훈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행사로 준비 중이다. 특히 이번 행사를 위해 지난달 26일 우리나라 외식산업을 선도하는 백종원 대표의 더본코리아와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보훈의 역사를 반영한 신메뉴를 개발해 국민 참여형 먹거리 시장을 통해 메모리얼 페스타 행사장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코리아 메모리얼 페스타’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축제이자 일상 속 살아 있는 보훈문화를 실현하는 구심점으로 자리 잡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내년이 광복 80주년의 해인데 어떤 계획이 있나.

“광복 80주년은 여섯 분의 생존 애국지사님들과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10주기 행사로, 분야별 독립운동의 가치와 선열들의 희생 및 헌신이 후손에게 올바르게 기억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준비를 추진 중이다. 보훈부 내 사전준비단을 구성해 광복 80주년에 대한 기본 구상 및 청년층을 포함한 전 국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기념사업을 구상 중이다. 국민제안 공모를 진행한 결과, 국민의 큰 관심 속에 총 246건의 제안이 접수됐다.”

―보훈병원도 최근 의료계 집단행동으로 전공의가 근무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은 유공자분들이 불안해하실 것 같다.

“의사 집단행동 이후 보훈병원 전공의 대부분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보훈병원을 이탈했다. 기존에는 5개 보훈병원에 전공의 총 139명이 근무했으나 현재는 9명만 근무 중인 상황이다. 우선 전문의 당직 근무를 확대하고 진료 지원 간호사를 추가 배치함으로써 전공의 공백에 따른 진료 차질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전공의 비중이 큰 중앙보훈병원에는 지난 3월 25일부터 군의관 2명과 공보의 1명을 배치해 응급실과 외래 진료를 지원하고 있다.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보훈병원 의료진의 피로도가 올라가는 등으로 진료 차질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유공자에게 가게 돼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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