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6일 전 여론조사 공표 금지, 이의 있습니다 [박성철의 ‘새 법 다오’]

박성철 2024. 4. 26.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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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밴드왜건 효과, 언더독 효과가 나타나더라도 그것 또한 유권자의 선택일 수 있다. 무엇보다 유권자들은 여론조사는 여론조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한다.
4월10일 저녁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출구조사를 지켜보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여론조사 결과 공표를 금하는 조항이 선거법에 있다. 선거일 6일 전부터 선거일 투표 마감 시각까지 금지한다. 언론인만 지켜야 하는 법은 아니다. 누구든지 적용 대상이 된다. 위반하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2년 이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선거일을 앞두고 이른바 ‘블랙아웃 기간’을 둔 까닭은 무엇일까. 흔히 밴드왜건 효과를 이유로 든다. 여론조사가 공정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졌더라도 결과가 알려지면 투표자들이 승산 높은 쪽으로 더 쏠리게 된다는 뜻이다. 반대로 언더독 효과를 말하기도 한다. 불리한 편을 동정해 열세자 쪽으로 기울게 된다고 걱정한다. 어느 경우든 여론조사 결과가 투표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유권자들의 진의가 왜곡되고 선거 공정성이 저해된다고 우려한다.

선거일에 가까워질수록 여론조사 결과 공표로 생기는 부정적 효과가 더 커진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특히 불공정하거나 부정확한 여론조사 결과가 공표되었을 때 선거의 공정을 해칠 위험성이 높은 데에 비해 선거일이 임박할수록 그 내용을 시정할 수 있는 여지는 점점 줄어든다고 한다. 헌법재판소도 이런 이유를 들어 세 번이나 합헌 결정을 했다.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이 반복됐지만 굳이 블랙아웃 기간을 두어야 하는지 논란은 그치지 않고 있다. 우선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온 지 시간이 꽤 지났다. 세 번의 결정은 1995년, 1998년, 1999년에 있었다. 20년이 더 흘렀다. 더구나 헌법재판소도 금지 여부는 입법자의 재량이라고 했다. 그때그때의 시대적 상황과 선거문화, 국민 의식 수준 등을 두루 고려해 입법부가 정책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라고 보았다.

경청할 만한 반대의견도 있었다. 이영모 재판관은 위헌성을 인정했다.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 자유로운 여론 형성을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선거는 대의민주제의 근간이다.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의견 교환을 필수 불가결한 조건으로 한다. 여론조사는 선거권자들의 의견을 서로 알 수 있는 수단이다. 주권자가 민주정치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려면 다양한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규제되는 정보는 헌법상 보호할 가치가 높은 정치적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 관련 중요 정보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조치는 대의민주제의 근본을 뒤흔들 만큼 알권리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보았다.

당시 헌법재판소의 소수의견에 동의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거의 소수의견이 미래의 다수의견이 되는 일은 적지 않다. 지금과 같은 여론조사 결과 공표금지 조항을 더 이상 둘 필요가 없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법안이 여럿 발의되었다.

2021년 4월23일 정청래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선거일 2일 전부터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할 수 없도록 했다. 2023년 8월14일 민형배 의원 대표발의안은 금지 기간을 선거 1일 전부터로 더 단축했다. 2020년 6월19일 기동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도 선거일 전일과 당일만 금지하는 내용이다. 2023년 2월1일 박성준 의원 대표발의안은 한발 더 나아가 여론조사 결과 공표금지 조항을 아예 삭제했다.

4월8일 선거 이틀 전 서울 동작구 지원 유세에 나선 이재명 민주당 대표. ⓒ시사IN 박미소

미국·영국·독일·일본 등에는 없는 규제

외국 사례를 보면 미국·영국·독일·스웨덴·스위스·일본과 같은 나라에서는 공표를 금지하는 규제를 찾아볼 수 없다. 프랑스가 선거일 전일과 당일 금지하고 있다. 영국 BBC가 선거 당일에 여론조사 결과를 방송하지 않는 건 자체 규정에 따른 자율적 판단이다.

우리 선거 문화와 의식 수준을 고려할 때 금지조항의 폐해가 더 크다는 데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뜻을 같이했다. 중앙선관위는 2023년 1월17일 국회에 폐지 의견을 제출했다. 선거 여론조사 공표·보도 금지 기간 조항을 삭제하는 방안이다.

중앙선관위도 언급한 것처럼 금지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클 수 있다. 현행법상 공표와 보도가 금지될 뿐, 여론조사 자체가 금지되는 건 아니다. 조사를 의뢰한 정당과 후보자 또는 여론조사기관과 언론사 내부 관계자들은 조사 결과와 지지도 변화를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여론조사 결과라면서 SNS와 메신저, 대화방, 문자 등으로 일부 정보가 전파되기도 한다. 검증되지 않은 사적 유통이다. 조작된 정보, 가짜뉴스, 왜곡된 수치가 소수만 알고 있는 고급 정보인 양 둔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셈이다.

설령 밴드왜건 효과, 언더독 효과가 나타나더라도 그것 또한 유권자의 선택일 수 있다. 무엇보다 유권자들은 알고 있다. 여론조사는 여론조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한 표를 행사한다. 오늘날 유권자들의 의식 수준에 비춰볼 때 굳이 법으로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새로운 여론을 반영한 다수 법안이 꾸준히 제출되었다. 그럼에도 국회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지 못하고,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다음 국회에서는 개정이 가능할까. 규제가 없는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선거가 민주주의의 축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성철 (변호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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