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 떠날 리 없어” vs “당장 내달부터 병원 떠날 것”...의대 교수 사직 진실공방

김명지 기자 2024. 4. 2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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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의사들 인식차 ‘심각’
박민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22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집단행동 관련 브리핑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뉴스1

전국의 의과대학 교수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대하며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힌 지 한 달째에 접어들면서 이들이 진료를 중단하고 병원을 떠나는 시점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당장 일부 교수들은 내달 1일부터 “병원으로 출근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정부는 “대학 본부에 사직서를 제출한 교수가 많지 않아 현실적으로 많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냈다고 해도 병원을 실제 떠나는 시점은 3~4개월 뒤인 올여름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 겸직해제 신청 “사직효력 없어”

26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의 말을 종합하면 최근 한 달간 전국 의대 본부와 대형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한 교수가 800여 명, 대학 본부에 접수된 사직서는 80건 정도로 추정된다. 적게는 전국 의대 교수의 0.7%, 많게는 7% 수준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최근 브리핑에서 “모든 의대 교수들이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며 “현재까지 대학 본부에 정식으로 접수되어 사직서가 수리될 예정인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날 서울대병원과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을 포함한 국내 주요 대형 병원에선 뚜렷한 진료 이탈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았다.

그러나 의대 교수들은 ‘사직서를 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는 ‘접수된 사직서가 없다’고 밝히면서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취재를 종합하면 결과적으로 양측 다 틀린 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의대 교수는 대학 총장으로부터 임명을 받은 대학 본부 소속이 있고, 병원에만 소속된 임상 교수가 있다. 대학 본부 소속 교수는 대학 강의를 하면서 병원 진료를 겸임하고 있다.

이런 경우 대학 소속인 경우에는 대학 본부에 사직서를 제출해야 하고, 병원 소속 교수는 병원장에 사직 의사를 알려야 한다. 그런데 대학에 강의는 하면서 병원 ‘진료’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병원장에게 ‘겸직해제’를 요청해야 한다. 정부는 교수 중에서 ‘겸직해제’를 신청한 경우는, 병원장이 겸직 해제를 수리하지 않는 이상 민법상 사직의 효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3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뉴스1

◇ “환자 인계 작업 석 달 가량 걸릴 것”

의대 교수의 경우 대학 본부에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해도, 곧바로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의대 교수들은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사직하게 되면 ‘신원조회’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례로 범죄에 연루돼 징계를 피하려고 퇴직하는 건 아닌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해도, 병원 진료를 중단하는 시점은 교수마다 다를 수 있다. 대학병원은 주로 중증 희귀질환 환자들을 담당한다. 진료를 중단하려면, 돌보고 있는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의사에게 인계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 작업을 마무리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에서 소아 투석을 맡고 있는 소아청소년과 강희경 교수와 안요한 교수는 지난달 25일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근무 종료 시점을 ‘8월 31일’로 잡았다. 사직의 효력이 발생했다고, 곧바로 병원 진료를 중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료 중단 시점은 개인에 따라 서로 달라진다.

최창민 울산대 의대 교수 비대위원장은 “돌보던 환자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외래환자 예약이 보통 3개월까지 잡혀있으니, 병원을 떠나는 것은 7~8월 여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 비대위 관계자는 “사직을 희망하는 날짜가 다르다”며 “각자의 일정에 따라 병원을 나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비대위가 모아둔 사직서, 유효 여부 확인 필요

정부와 의사들은 제출된 사직서의 효력이 언제 발생하느냐를 두고도 이견을 보인다. 예를 들어 각 의대 교수 비대위가 개별 교수들이 쓴 사직서를 모아서 갖고 있으면서 대학에는 제출하지 않은 사례도 있다. 사직서는 본인이 직접 제출해야 유효하기 때문에, 비대위가 걷은 사직서는 사직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의 해석이다.

교수들이 의대 학장에게 개별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학장이 대학 본부에 전달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사직서를 학장이 갖고 있는 것만으로 제출이 된 것으로 봐야 하는지, 사직의 효력이 발생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사직서는 봉투에 담긴 ‘익명’ 형태인데, 이것이 사직 효력이 발생하느냐 여부다. 다만 방재승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 비대위원장은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무단결근 처리가 된다고 해도 내달 1일부터는 병원에 나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울산대 의대 교수 비대위는 사직서를 의대에 접수한 것만으로도 사직 의사가 전달됐다고 보고 있다. 최창민 비대위원장은 “대학 본부에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은 교수에게 보장된 정년과 사학연금을 모두 포기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이탈한 전공의들의 사직서를 수리해서, 병원으로 돌아올 전공의들은 돌아오게 하고 나갈 전공의들은 생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선택하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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