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당신은 곧 나예요…삶과 죽음 같은 돌봄의 순환 [책&생각]

한겨레 2024. 4. 2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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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막바지를 보내러 코클리코 요양원에 온 노인들은 검버섯이 잔뜩 핀 노쇠한 몸만 가지고 여기 오지 않았다.

즉, 사람은 늙고 병들고 죽어간다는 당연한 명제를 외면하지 않고, 누구나 최종 죽음의 순간까지 삶을 끌어안고 있으며 그 삶은 결코 하찮지 않다는 이해로 돌파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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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거기에 놓아두시면 돼요
캉탱 쥐티옹 글·그림, 오승일 옮김 l 바람북스(2023)

생의 막바지를 보내러 코클리코 요양원에 온 노인들은 검버섯이 잔뜩 핀 노쇠한 몸만 가지고 여기 오지 않았다. 누구는 젊은 시절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을 품고 왔고, 누구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디게 해준 상상 속의 찬란한 삶을 두르고 왔다. 가족을 향한 그리움으로 밤을 지새우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가족과 함께했던 기억을 모조리 지우고 입소한 노인도 있다. 이들 곁에는 진심 어린 돌봄과 위로를 건네는 간호사 에스텔이 있다. 에스텔은 노인들의 식사 수발을 들고 목욕을 시키는 노동을 수행하

면서 동시에 그들의 감정까지 헤아리려 애쓴다. 손녀딸과 닌텐도 게임기로 대화를 주고받는 일을 낙으로 삼는 제르마노 어르신을 위해서는 손녀가 놓고 간 게임기로 손녀인 척 메시지를 보낸다. 또 자신을 어린 시절 연인으로 착각하고 함께 달아나자고 속삭이는 소피 어르신에게는 기꺼이 그의 연인 에바가 되어준다. 평생 공장에서 일했으면서 자신을 ‘프라하 주재 프랑스 대사, 엘리자베트 토마’라고 주장하는 치매 환자 토마 어르신을 진짜 대사처럼 대했을 때는 어머니의 기억을 되돌리고자 절박하게 노력 중인 딸의 항의를 받기도 한다. 토마 어르신의 딸은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우리 가족사에 손대려고 드는 건지 모르겠네요.”라는 차가운 말로 에스텔의 위치를 자각시키지만, 에스텔은 가족사에 손대는 건 자신이 아니고, 자신은 그저 노인들의 이야기 속 단순한 등장인물에 불과하다고 혼잣말한다.

에스텔이 제르마노 어르신의 손녀를 가장해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동료 간호사 소냐는 에스텔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소냐는 어르신들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게 될 사람들이 ‘우리’라면 가족이자 유모, 친구가 되어드리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기가 아무리 쉬워도 그들에게 ‘우리’는 단지 자신의 삶이 끝에 다다랐음을 매일 일깨워 주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쓴소리를 전한다. 그러나 에스텔은 애정을 가지고 돌봤던 사람들의 시신을 벌써 수백구 보는 생활을 몇년째 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괜찮냐는 말 한마디로 ‘우리’를 챙겨준 적 없다고 항변한다.

‘꽃은 거기에 놓아두시면 돼요’는 한밤의 달빛처럼 차갑게 푸르고 흰 색채와 간혹 방점처럼 등장하는 붉은 담뱃불과 입술, 다채로운 꽃밭으로 삶과 죽음의 순환을 냉철하게 그려낸 그래픽 노블이다. 주름과 검버섯으로 ‘리얼하게’ 표현된 노인들의 신체는 다양한 눈빛과 표정으로 죽어감의 생동을 아이러니하게 전달한다. 즉, 사람은 늙고 병들고 죽어간다는 당연한 명제를 외면하지 않고, 누구나 최종 죽음의 순간까지 삶을 끌어안고 있으며 그 삶은 결코 하찮지 않다는 이해로 돌파해 낸다. 에스텔은 자신이 돌보는 노인들의 삶이 사실이든 허구든 모두 소중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고, 삶과 죽음이 돌고 돌듯이 돌봄 역시 순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깨달은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에스텔의 고민을 찬찬히 이해하게 되었다면 이 아름다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만나게 될 다소 충격적인 장면에서 결코 불행과 슬픔만을 목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주혜 소설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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