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사랑하기에…잊혀지지 않는 질문 [책&생각]

한겨레 2024. 4. 2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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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자 꿀벌이 조금 더 행복해졌다.

나는 지난 18일 경남 함양의 사과 농장에서 갓 핀 사과 꽃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사과나무 꽃 핀 그늘 아래 호밀과 보리가 자꾸 생각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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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l 마음산책(2024)

봄이 오자 꿀벌이 조금 더 행복해졌다. 나는 지난 18일 경남 함양의 사과 농장에서 갓 핀 사과 꽃을 보고 있었다. 사과 꽃잎 속으로 벌들이 파고들어 갔다. 벌들의 통통한 엉덩이가 금빛으로 빛났다. 벌과 하얀 사과 꽃을 지켜보는 동안 시간이 평화롭고 나른하게 흘러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참 좋았다. 그러나 나는 눈이 어두운 사람이다. 사과나무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보지 못했다. 사과나무 아래에 내 허리 높이까지 호밀과 보리가 자라고 있었다. 누가 왜 사과나무 옆에 지난가을 호밀과 보리 씨앗을 뿌린 걸까?

이 호밀과 보리의 존재를 이해하려면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 농장을 지키는 농부 마용운은 2011년부터 사과 농사를 지었고 그사이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여름, 기상 관측 이래 최장 장마, 기상 관측 이래 최대 태풍, 냉해 등을 사과와 함께 겪었다. 날씨는 사과의 빛깔, 크기, 맛, 질병, 가을 수확과 가격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올봄을 강타한 금사과 논쟁은 특히 그를 더 답답하게 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건 기후위기 문제인데 바로 수입 과일로 대체해 버리는구나. 뉴스에 우리 농민들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구나. 사과 가격 폭등을 가져온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이 너무 적구나. 지난가을 저 아랫마을에 사는 내 친한 동생은 백 개 열매가 매달릴 나무에서 달랑 여덟 개를 수확했어. 그는 큰 손실을 겪었어. 나는 작은 농부에 불과하고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대단치 않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뭐라도 해보고 싶어. 나는 사과나무를 기르는 것만으로도 탄소를 흡수 중이야. 그러나 욕심 같아서는 조금만 더 해보고 싶어. 조금만 더. 그런데 어떻게 해야지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흙이 탄소를 더 붙잡아 둘 수 있는지 알아야 말이지.’

어떻게 해야 흙이 탄소를 더 붙잡아 둘 수 있을까? 이 질문이 그에게 많은 일을 하게 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탄소 농업’ 같은 제목이 달린 책들을 찾아 읽었다. 그러나 그 책들 안에서 농부가 뭘 해야 하는지 해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다음에는 인터넷을 뒤졌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도 봤고 외국의 논문도 찾아서 읽어봤다. 이 질문과의 씨름이 그를 10월 초순 사과 농장에 호밀과 보리 씨앗을 뿌리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책 제목에 나오는 바로 그 호밀이에요. 이 애들은 겨울에도 푸름을 유지해요. 푸름을 유지한다는 것은 숨을 쉰다는 것이고 겨울에도 성장하면서 탄소를 붙잡아 둔다는 것이고. 내가 봄에 애들을 베어서 땅으로 돌려주면…”

우리가 호밀밭의 파수꾼이 아니라 호밀밭이 우리의 파수꾼 같다. 그는 흙과 자연의 순환을 믿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용운의 일기예보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날씨와 사과 모두에 열정을 보였고 인내심을 가지고 추이를 지켜봤고 둘을 연결할 줄 안다. 사과나무 가지가 무슨 말이라도 하면 그가 제일 먼저 알아들을 것 같다. “내일은 비가 옵니다. 그런 날은 꿀벌 한 마리도 보기 힘듭니다. 수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가치 있는 질문이란 것이 있고, 그 질문을 가지고 씨름하는 시간 자체가 가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시인 메리 올리버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나는 세상을 사랑하기에/ 풀을 생각하지,// 잎사귀들을,/ 대담한 태양을 생각하지,”(‘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 중 ‘봄’ 부분) 나는 아무래도 세상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들이 잊혀지지 않나 보다. 그래서 사과나무 꽃 핀 그늘 아래 호밀과 보리가 자꾸 생각나나 보다.

정혜윤 CBS(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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