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계몽기 이해조가 그린 ‘독립투사 워싱턴’의 초상 [책&생각]

고명섭 기자 2024. 4. 2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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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지식인들에게 독립투사의 이상형으로 다가온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위키미디어 코먼스

화성돈전
이해조 번역, 정금 번안, 김은숙·김태주·손하누리·안재원 역주 l 독도도서관친구들 l 2만8000원

구한말 중요 문헌의 비판정본을 만들어온 ‘독도도서관친구들’과 ‘독도글두레’가 ‘화성돈전’을 펴냈다. 안중근이 감옥에서 쓴 ‘동양평화론’(2019), 안중근의 자서전 ‘안응칠 역사’(2020)에 이은 세 번째 비판정본이다. 고전문헌학자 안재원을 비롯해 김은숙(한국 현대사), 김태주(한문 고전), 손하누리(서양고전학)가 정본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화성돈전’(1908)은 신소설 ‘자유종’으로 유명한 애국계몽운동가 이해조(1869~1927)가 번역한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화성돈, 1732~1799) 전기다. 이해조는 중국의 지식인 정금(1879~1958)이 한문으로 번역한 ‘화성돈’(1903)을 저본으로 삼아 국한문혼용체로 번역했다. 또 정금이 ‘화성돈’을 번역할 때 저본으로 삼은 것이 일본의 지식인 후쿠야마 요시하루의 ‘화성돈’(1900)이었다. 후쿠야마는 여섯 종의 영문 전기를 바탕으로 삼아 이 번역서를 완성했다. 후쿠야마의 ‘화성돈’이 정금의 ‘화성돈’으로 옮겨지고, 다시 이해조의 ‘화성돈전’으로 옮겨진 것이다. 당시 한·중·일 삼국 지식인들이 각자의 처지에서 워싱턴이라는 인물을 소개할 이유가 있었음을 이 번역 계보는 알려준다.

특히 이해조의 ‘화성돈전’은 나라가 일본의 반식민지로 떨어져 자주독립이 가장 큰 민족적 과제가 된 상황에서 나온 책이다. 워싱턴의 삶이 독립의식 고취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음 직하다. 이해조가 일본어판이 아닌 중국어판을 옮긴 것도 이 시기에 고조되던 반일 정신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비판정본은 이해조의 ‘화성돈전’과 그 저본이 된 정금의 ‘화성돈’을 좌우에 나란히 배치해 각각 원문을 싣고 번역문을 달았다. 또 책 뒤에 긴 해제를 실어 두 번역본과 그 저본이 된 일어판 ‘화성돈’을 비교해 문헌학적 의미를 상세히 밝힌다. 여러 언어를 거쳐 중역된 탓에 그 과정에서 빚어진 오역의 양상도 자세히 살핀다. 또 해제는 이해조 번역본과 정금 번역본의 내용상 차이에도 주목한다. 정금의 번역본은 일본어판의 내용 가운데 미국 문화를 설명하는 복잡한 부분을 과감히 생략하고, 정금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 메시지를 강화했다. 번역이라기보다는 번안에 가깝다. 반면에 이해조 번역본은 정금의 의견에 해당하는 부분을 대폭 걷어내고 신소설의 선구자답게 이야기의 극적인 진행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애국계몽과 자주독립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는 책인 만큼, 이해조와 정금의 번역본은 미국의 독립쟁취와 그 과정을 이끈 워싱턴이라는 인물을 최대한 높이려는 뜻이 뚜렷하다. 그런 서술이 독자에게 남긴 인상을 안중근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안중근이 두 번역본 중 하나를 읽었음이 거의 확실한데, ‘안응칠 역사’에서 워싱턴을 “미국 독립의 주역”으로 받들며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만약 훗날에 일을 이룬다면 반드시 미국으로 달려가서 특별히 워싱턴을 추억하고 숭배하며 마음이 같았음을 기념하리라.”

불세출의 위인이라는 워싱턴의 이미지는 두 번역본의 머리말 첫 문단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내가 미국사를 읽어 천추에 길이 빛날 영웅을 찾다가 한 사람을 얻으니, (…) 옛날과 지금의 세계에서 첫째로 빼어난 인물 워싱턴이 아닌가! 워싱턴은 호걸 중의 군자요, 군자 중의 영웅이로다.”

두 번역본의 본문에는 워싱턴과 나폴레옹을 비교하는 대목도 나온다. “나폴레옹은 풍운의 기회를 타고 시세의 조류에 응하여 자신의 영광을 희구하였다. 워싱턴은 역경에 처하여 국가를 위해 힘을 다하고 인민을 위해 마음을 수고롭게 하면서도 정의를 지키고 공평한 도리를 행하였다. 나폴레옹은 ‘불가능한 일은 없다’라는 말을 마음에 새겨 온갖 장애를 타파하고, 워싱턴은 ‘길은 정의에 있다’라는 한마디를 가슴에 새겨 자기 한몸을 돌아보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이해조와 정금의 번역본이 동일하다. 그런데 정금 번역본에는 이해조 번역본에 없는 문단이 덧붙여져 있다. 정금은 자신의 의견을 담아 이렇게 서술한다. “한 사람은 ‘기백’으로 일컬어지고, 한 사람은 ‘박애’로 일컬어진다. 한 사람은 비바람 치는 골짜기에 큰 바다의 파도가 내달리고 솟구치는 것과 같아서 듣는 사람은 귀를 막는다. 한 사람은 봄날의 온화한 바람에 뭇 양들이 즐거워하고 푸른 풀이 돋아난 긴 둑에 노니는 사람이 돌아갈 것을 잊은 것과 같다. 누가 크고 누가 작은가?”

워싱턴이 더 큰 지도자라는 얘기다. 이런 판단에는 나폴레옹이 공화제를 무너뜨리고 황제가 된 것과 달리 워싱턴은 대통령직을 마치고 스스로 물러났다는 사실에 대한 평가도 깔려 있다. 공화혁명을 꿈꾸던 정금이 워싱턴을 민주공화제라는 시대의 새 조류에 어울리는 지도자로 보았다고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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