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빛나는 밤, 코타키나발루

김진 2024. 4. 25.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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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오래 다니면서 자연이 좋아졌다. 매끈한 길보다 울퉁불퉁한 길, 화려한 인공조명보다는 달빛과 별빛이 좋아졌고, 두리안과 생선 비린내에도 웃음이 난다. 그곳이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라면 더더욱 그렇다.

코콜 힐의 석양

▶사바주 코타키나발루
코타키나발루는 말레이시아 사바주의 주도로, 보르네오 섬의 최고봉인 키나발루산(4,101m)에서 이름을 따왔다(코타는 '도시'라는 뜻). 세계에서 손꼽는 석양 명소 중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사바주는 오랑우탄의 서식지로도 유명하며, 코주부원숭이 보호구역과 바다거북의 서식지인 터틀 아일랜드에서는 동물과 교감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어린 왕자의 마음으로

어린 왕자는 작은 행성에서 의자를 옮겨 가며 하루에 44번이나 석양을 바라보았다. 석양은 어린 왕자의 슬픈 마음을 위로해 주는 친구였다. '어린 왕자가 지구별에 살았다면 아마도 코타키나발루에 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코타키나발루가 가진 확실한 매력은 석양이다.

베링기스 비치의 석양

코타키나발루의 석양. 황금빛에서 와인빛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바다를 넋 놓고 찬미했다. 사실 아름다운 석양을 보려면 약간의 운이 따라야 된다. 아무리 석양 명당을 차지한다고 해도 구름이 덮이거나 비가 내리면 석양은 그 화려한 모습을 쉽게 내 주지 않는다. 코타키나발루엔 석양을 볼 수 있는 명소가 많지만, 잘 알려진 곳은 탄중아루(Tanjung Aru) 비치와 코콜 힐(Kokol Hill) 그리고 베링기스(Beringgis) 비치다. 탄중아루는 시내에서 가장 가깝고, 코콜 힐은 지대가 높아 도시 전체와 하늘,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그중에서 베링기스 비치는 저녁 어스름에 특히 진가를 발휘한다. 해변가에 앉아서 붉게 물든 바다를 바라보니, 어쩐지 플라멩코 무희의 춤처럼 서글픈 아름다움이 전해졌다. 혹은 뜨겁게 타오르다 처연히 스러져 가는 사랑 같은. 이 세상 어디서나 해는 뜨고 진다. 하지만 그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석양이 있다. 그날 오후 6시45분의 석양은 여전히 심장을 따끔거리게 한다.

●더없이 다정한 바다

코타키나발루의 옛 이름인 제셀톤(Jesselton)을 딴 제셀톤 선착장. 가야 섬이나 사피 섬, 마누칸 섬 그리고 옆 나라 브루나이로 가는 배가 출발하는 곳이다. 선착장에서 스피드 보트를 타고 바다를 달리다 보면, 가야 섬 기슭 평화롭게 자리 잡은 수상 가옥 마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집집마다 에어컨이나 벽걸이 TV까지 갖추고 있으며 마을 안엔 모스크와 학교까지 있는, 나름대로 도시화된 수상 가옥 마을이다. 물 위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더없이 정겹고 평화롭다. 나무를 엮어 만든 선착장에서 놀던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눈으로 우리를 구경했고, 우리는 그들을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서로에게 풍경이 되었다.

하늘에서 본 수상 가옥 마을

바다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수상 가옥 마을의 생활상을 대충 훑어보고 10분 정도 더 달리니 가야 섬(Gaya Island)에 도착했다. 코타키나발루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스노클링 포인트라서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하지만 그 북적임이 왠지 싫지 않다. 코로나 시절을 생각하면, 어수선한 북적임에 한없이 감사한 마음이 드니까.

수상가옥마을 사람들, 한없이 순수했다
가야섬의 메인 비치인 빠당 포인트

열대림 사이엔 글램핑 시설이 콕콕 박혀 있는데, 분위기가 이국적이고 아늑해서 캠핑 마니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앞바다는 얕고 잔잔하며, 섬 기슭의 바다는 깊고 맑다. 캠핑족, 다이빙족, 그냥 무념무상족. 모두 즐길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섬을 즐기는 최고의 행위는? 머리를 박고 둥둥 떠서 형광색 열대어, 오이보다 더 큰 해삼, 새파란 불가사리를 구경하며 '바다의 친구'가 되어 보는 일이 아닐까 싶다.

가야 섬엔 글램핑 시설도 마련돼 있다

●원주민 문화를 가까이서

어딜 가나 그 지역 문화를 알아볼 수 있는 관광지가 있다. 마리마리 컬쳐 빌리지(Mari Mari cultural village)는 사바주의 5대 원주민 부족의 생활 양식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일종의 민속촌 같은 곳이다. '마리마리'는 말레이시아어로 '오라(Come, Come)'는 뜻. 입구에서 구름 다리를 건너면 각 부족들의 가옥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무루트(Murut)족이다. 고대부터 적의 머리를 잘라 모은 관습이 있어 헤드헌팅족으로도 불린다. 남자가 결혼할 때면 적어도 한 명의 머리를 여자에게 선물해야만 결혼을 할 수 있었다고. 이 관습은 당연히 모두 사라졌다. 영국 식민지 시절 헤드헌팅 금지법이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무루트족 마을로 입장하는 방법
전통 음식에서 우리나라 호떡과 비슷한 맛이 난다

무루트족 가옥으로 입장할 땐 족장이 묻는 몇 가지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해야만 했다. 무시무시한 창을 든 족장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갑자기 말을 더듬게 된다. 족장의 표정과 말투는 모두 연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오싹하다. 각 부족의 가옥에서는 전통 음식과 전통주도 맛볼 수 있다. 쌀이나 곡식을 발효시켜 술을 빚는 방식은 우리나라와 매우 유사한데, 맛도 소주와 비슷해서 이질감이 없었다. 원시 방식으로 대나무를 문질러 불을 피우는 광경 앞에선 저절로 환호가 나왔다. 대나무 사이를 뛰며 춤을 추는 '뱀부 댄스'는 마리마리 컬쳐 빌리지의 하이라이트다.

●작고 반짝이는 것들

사진으론 남기지 못했지만, 이번 여행에서 최고의 경험을 꼽는다면 반딧불이 투어다. 코타키나발루에서는 까왕, 봉가완, 스르방 등 여러 곳에서 반딧불이 투어가 진행된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까왕(Kawang)의 맹그로브 숲으로 배를 타고 들어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고요하게 기다리는 시간. 카메라 플래시는 물론 스마트폰의 작은 불빛도 허락되지 않았다. 유일하게 허락되는 불빛은 뱃사공이 흔드는 녹색 손전등. 이 녹색 불빛은 마치 암컷 반딧불이가 발광하는 녹색 빛과 비슷해서 수컷 반딧불이는 착각에 빠져 빛을 내며 춤을 춘다. 정말로 속았는지 반딧불이 떼가 별처럼 반짝거렸다. 이 작디작은 생명체는 이슬만 먹고 살다가 고작 2주면 생명을 다하고 만다.

빨간 석양이 질 때쯤 반딧불이 투어가 시작된다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반딧불이 투어 사진은 거의 다 조작된 사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지나친 상상 대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편이 좋다. 반딧불이는 대형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번쩍번쩍 빛나지 않는다. 절대로 그럴 일이 없다고 했다. 대신 가녀린 생명체의 날갯짓은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손바닥을 간지럽히던 여린 움직임까지도. 너무나 많은 인공 불빛은 진정으로 아름다운 존재들을 가려 버린다는 진리를, 하늘의 수많은 별들도 말해 주고 있었다. 싱그러운 공기, 적당히 선선한 바람, 반딧불이의 몸짓에 터져 나왔던 작은 탄성들. 결코 잊고 싶지 않은 추억이다.

예쁜 카페와 펍이 늘어서 있는 일명 오스트레일리안

●왜 하필 코타키나발루인가요

코타키나발루는 '이게 뭐가 특별한가?' 투덜거릴 수도 있을 만큼 평범하다. 조금 심심한 여행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태국 같은 환대를 기대하기는 힘들며, 가성비를 따진다면 베트남보다 떨어지고, 발리나 치앙마이처럼 노마드를 위한 세련된 인프라도 그저 그렇다. 다국적 회사의 거대한 마케팅도 아직 덜 뻗쳐 있어서 쇼핑할 것도 많지 않다.

관광객들이 한 번쯤은 찾는 워터프론트

하지만 여행에 대한 고정관념 두 가지를 버리면 코타키나발루의 순수한 매력이 느껴질 것이다. 하나는 눈이 뒤집힐 만한 대단한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소비하는 여행자로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자세다.

결론은 하나. 석양은 코타키나발루 최고의 여행 상품이다

현지에서 만난 코디네이터 필립도 그런 코타키나발루의 분위기를 닮은 사람이다. 처음 본 사람도 오래된 친구처럼 대하는 그의 모습에 누구나 매력을 느낀다. 인스타그램에서 'philip_nature'란 아이디로 코타키나발루와 사바주의 자연을 멋진 사진과 영상으로 소개하는 디지털 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제주도에서 한라산을 빼놓을 수 없는 것처럼 코타키나발루에서는 키나발루산이 대표적이에요. 그런데 패키지 일정은 워낙 짧으니 경험할 엄두를 내지 못하죠." 그가 말했다. 언젠가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때는 키나발루산이다.

▶FLIGHT
에어아시아

올해 3월5일부터 에어아시아가 인천-코타키나발루 직항 노선 운항을 시작했다. 코타키나발루행 항공편은 오전 1시5분에 출발해 오전 5시35분에 도착한다. 귀국편은 오후 6시5분에 출발해 다음 날 오전 12시5분에 도착한다. 하루 일정을 다 소화하고 비행기를 탈 수 있어 효율적인 여행이 가능한 것이 에어아시아 노선의 장점이다. 비행 소요 시간은 5시간 30분. 이번 신규 노선에 도입된 기종은 에어버스 A320neo다. 기내 좌석은 총 186석으로, 일반석과 핫시트(Hot Seat)로 구성됐다. 핫시트는 기체 앞쪽 및 비상구열 좌석으로, 일반석에 비해 공간이 좀 더 넉넉하다.

▶IMMIGRATION PROCESS
2024년부터 말레이시아로 입국하는 외국인은 온라인 입국 카드(MDAC, Malaysia Digital Arrival Card)를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작성은 출국 3일 전부터 가능하다.

▶CURRENCY
말레이시아 화폐 단위인 1링깃(MYR)은 약 280~290원이다(2024년 4월 기준). 말레이시아의 물가는 한국의 70~80% 수준. 말레이시아 전체 인구의 6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는 만큼 술은 비싼 편(캔맥주 약 3,500원)이다.

▶TRAVEL SPOTS

리카스 모스크 

리카스 모스크 Likas Mosque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푸른색의 리카스 모스크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로 꼽힌다. 네 개의 미나렛(첨탑)이 푸른색이라 블루 모스크라고 흔히 알려져 있다. 멀리서 외관만 감상해도 되고, 추가 요금을 내고 복장을 갖춰서 모스크 안으로 들어가 구경해도 된다.

필리피노 마켓에선 우리나라에서 비싼 망고스틴과 망고를 매우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필리피노 마켓 Filipino Market
르 메르디앙 호텔 바로 뒤엔 과일, 채소, 해산물 등을 구입할 수 있는 로컬 시장인 필리피노 마켓이 있다. 필리핀 이주민들이 모여 장사를 시작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지금은 나이트 마켓으로도 불린다. 필리피노 마켓의 명물은 인스타그램으로 유명해진 '망고 소년'의 가게다. 다른 과일 가게와 별 다를 것 없지만 친절함은 그만의 무기다. 유독 한국인들이 줄을 선다.

사바주 청사

사바주 청사
강철과 유리로 만들어진 30층 높이의 원형 타워로, 자연재해에도 끄떡없는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보통의 여행자들은 멀리서 기념사진만 찍지만, 청사 건물 18층엔 회전식 레스토랑이 있어 데이트를 목적으로 온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다.

글·사진 김진 에디터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에어아시아, 말레이시아 사바주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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