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 제노사이드 이후 국제개발 30년… "한 번 지원하면 30년 간다"

문일요 객원기자 2024. 4. 2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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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르완다 카모니주에서 진행된 농업학교(Farmer’s Filed School) 수업을 마친 주민들./굿네이버스

1994년 4월부터 7월까지 약 100일.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르완다 국민 100만명이 학살당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그해 4월 6일 수도 키갈리 상공에서 다수 부족인 후투족 출신 쥐베날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이 탄 전용기가 미사일에 격추당했다. 암살 공격이었다. 일부 정치 엘리트 집단은 소수파 투치족을 배후로 지목했다. 무자비한 학살이 일어났다.학살의 피해자는 대부분 투치족이었지만, 학살에 반대하는 온건파 후투족도 희생됐다. 캄보디아 킬링필드와 독일 나치의 홀로코스트에서도 수백만명이 희생됐지만, 르완다 대학살은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사건으로 기록됐다.

르완다에서 벌어진 집단 학살이 30주기를 맞았다. 굿네이버스가 국내 NGO로는 처음으로 전문 의료진을 포함한 긴급구호팀을 파견한 지도 30년됐다. 당시 굿네이버스는 르완다 인근 국가인 콩고민주공화국 고마의 유엔난민기구(UNHCR)에 정식 NGO로 등록해 5개월간 총 8차례에 걸쳐 97명의 구호팀을 현지에 보냈다. 이듬해 르완다 난민촌에 상설사무소를 설치하고 르완다 지부를 열었다. 일회성 지원이 아닌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구호사업을 위한 작업이었다.

30년이 흐른 지금도 현지에서는 취약계층 아동과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는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긴급구호를 넘어 사회를 재건하고 지역사회 자립을 돕고 있다. 김민정 굿네이버스 르완다 대표는 “르완다에서는 인구의 대다수가 35세 미만이라 대량 학살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들을대상으로 교육과 추모의 중요성을 무척 강조한다”며 “특히 굿네이버스에서는 소외계층 어린이들의 교육 기획 강화와 지역사회 소득을 증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지역사회의 필요를 담기에는 여전히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994년 4월 르완다 긴급구호 의료봉사단모습./굿네이버스

◇긴급구호를 넘어 재건사업으로

다시 30년 전. 한국에서 긴급의료구호 경험이 드물 때다. 현장에서 직접 부딪쳐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굿네이버스는 글로벌 NGO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작은 캠프인 루가리캠프로 갔다. 의료진은 난민촌에서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콜레라와 이질 등 수인성 질병을 치료하는 데 집중했다. 다른 구호 활동가들은 매일 1만명의 난민에게 식량을 배분했다. 그해 9월에는 캠프 내 카탈레와 키붐바 지역에 난민학교를 열고 현장에서 교사를 채용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급식을 제공했다. 긴급구호 초기에는 현지 사정에 밝은 한국 선교사들의 도움이 컸다.

이후 1996년 내전이 진정되고 난민들이 본국으로 돌아갔다. 굿네이버스는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 다시 한번 긴급구호의료팀을 파견해 임시 진료소를 운영하고, 초·중등 교육과 급식사업을 진행했다. 당시 도움을 받은 실베스터 무린다뷰마는 현재 고등법원 회계사로 일한다. 그는 “카키색 조끼를 입은 활동가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필요한 것을 물어보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자고 했다”며 “특히 우리가 안전한 식수와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2000년대 들어 구호 활동은 재건사업으로 확대됐다. 중장기적 지원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기획하고 수행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기존 활동과 더불어 심리 상담, 교육, 중장기 관점의 주거 확보, 보건위생, 전염병 예방, 커뮤니티센터, 다리 공사를 포함한 인프라 복구 등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제한적인 긴급구호에서 지역사회의 복구와 재건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확대된 것이다. 인도적 지원사업이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면서 사업 대상을 재난 피해자와 난민으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아동 등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계층에 대한 별도 지원을 마련한 것도 큰 특징이다.

현재 르완다는 여러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인종, 종교, 민족 차별을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 여성 의원 할당제가 있는 나라. 국가 예산의 17%를 교육에 투입하는 나라. 의무교육이 12년인 나라. 전국민 의료보험을 의무화한 나라. 2000년 들어 경제성장률 연평균 7%를 유지하는 나라. 김민정 굿네이버스 르완다 대표는 “아프리카에서 르완다가 안정적으로 경제 성장을 이뤄낸 요인은 정부의 전략적 정책과 투자 증가도 있겠지만, 지난 30년간 꾸준히 지역사회와 호흡하면서 주민 역량을 끌어올린 국제개발사업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1996년 미국 UN본부에서 ‘포괄적 협의지위’ 획득 심사를 마친 후 정해원(왼쪽) 굿네이버스 명예이사장(당시 국제본부 회장)과 UN 사무부총장.
▲2007년 브라질 룰라 대통령으로부터 UN새천년개발목표(MDGs)상을 전달받고 있는 이일하 이사장.
▲2007년 케냐 지라니교육센터에서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
▲2020년 코로나19 긴급구호로 잠비아주민들이 ‘푸드 패키지(Food package)’를 전달 받고 있다.

◇지원 끝나면 협력 관계로

굿네이버스는 지난 30년간 해외사업장을 43개국 209개로 확장했다. 르완다 긴급구호 활동을 계기로 주요 국제기구와 네트워크가 이어졌고, 1996년에는 유엔경제사회이사회(UN ECOSOC)로부터 NGO 최상위 지위인 ‘포괄적협의지위(General Consultative Status)’를 부여받았다. 올해 1월 기준 전 세계 43개국에서 굿네이버스 지원을 받는 지역 주민 수는 430만명에 이른다. 결연 아동도 21만명을 넘는다.

최근 주력하는 분야는 경제적 자립이다. 주민들이 협동조합 형태의 조직을 결성해서 직접 의사결정하고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굿네이버스에서 지원하는 주민 주도의 지역개발위원회는 소위원회를 포함해 전 세계 760개에 이른다. 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위원만 8800명 수준이다. 긴급구호 활동이 조기 복구와 재건, 중장기 관점의 지역개발로 이어진 결과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이티 지원 활동이다. 2010년굿네이버스는 규모 7.0 강진을 겪은 아이티에 긴급구호팀을 파견했다.당시 지진 발생 25시간 만인 1월 14일이다. 탐색 구조 팀과 사전 조사팀 파견 이후 4개월간 총 14차례에 걸쳐 구호 인력과 전문 의료진을 보냈다. 이때 굿네이버스는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UN OCHA)과 공식 협력하게 됐다. 긴급구호를 마무리한 6월에는 지역개발사업장을 설립해 학교와 임시거주시설을건축하고, 아이티 전역에 퍼진 콜레라 치료 및 예방을 위한 의료 활동과 위생교육을 실시했다. 2012년부터는 지진 피해 가구를 위한 영구주택을 짓고, 식수 공급을 위한 우물 개발,급식 지원 등 재건복구 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김선 굿네이버스 국제사업본부장은 “한 번 지원한 지역에서 가급적 떠나지 않고 계속 영향력이 확대되도록 한다”라며 “경제적 자립 구조를 만들고 주민들에게 이양하는 방법도 있지만, 때로는 규모의 경제를 이뤄 인근 지역사회에 영향을 주는 것도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궁극적으로는 현지 정부와 지역주민의 주도 하에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필요에 따라 협력하는 관계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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