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자본 최초의 지역상생 프로젝트 영주 ‘STAXX’

박선하 객원기자 2024. 4. 2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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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스타트업 10곳이 이전
지역소멸 막기 위한 비즈니스 활발

최근 10년 전국 곳곳에서 도시재생사업이 이뤄졌지만 성공사례를 찾기 어렵다. 전국 488곳에서 약 30조원을 투입한 것치곤 아쉬운 결과다.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주민 체감도가 낮고 지역경제 활성화와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많았다.

정부 주도의 도시재생에서 벗어나 민간 자본으로 추진한 최초의 지역상생 프로젝트가 경북 영주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역에 연고를 둔 대기업과 지방자치단체, 임팩트투자사가함께 고민한 결과다. 변화의 움직임은 3년 전 시작됐다. 2021년 ‘영주, 경제속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시작한 ‘STAXX(스택스) 프로젝트’로 영주와 인연이 없던 청년 스타트업 10곳이 영주로 이전했고 지역소멸을 막기 위한 비즈니스를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영주지역활성화에는 영주시, SK머티리얼즈, 임팩트스퀘어 등 세 곳의긴밀한 협력 구조로 진행됐다. SK머티리얼즈의 자회사이자 경북 영주에 생산 공장을 둔 SK스페셜티가 자금을 대고, 영주시가 선발한스타트업을 액셀러레이터인 임팩트스퀘어가 지원과 육성을 담당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지원금을 주고 지역 정착을 조건으로 내건 사업이아니다. 3년간 꾸준한 모니터링과 공공, 민간 등을 넘어선 자원 연계와 지속적인 소통이 이어진다는 게 특징이다.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는 “보수적인 공공의 업무 방식과 혁신적이고 자유로운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연결하는 작업은쉽지 않다”면서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중간자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협의체를 통해 사업 추진의 고충이나 애로사항을 공유하면서 공공과 민간의 간극을 줄여 나갔다. 일종의 ‘소원수리반’ 역할을 하는 셈이다. SK그룹 역시 전문가 프로보노를 통한 지원사격에 나섰다.

지난해 영주 곳곳을 둘러볼 수 있는 '악어트레일' 참가자들이 트렉킹을 즐기고 있다. /백패커스플래닛

◇청년 창업가들이 지역 강점 찾는다

지자체가 인증한 스타트업이라는 타이틀은 지역 연고가 없는 청년 대표들이 자리 잡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소나무 부재료를 활용한 친환경 화장품을만드는 여성기업 ‘피노젠’은 영주 산림조합과 협약을 맺고 지난해부터 영주시에서 제품 원료로 쓰일 솔잎을수급하고 있다. 신별 피노젠 대표는 “소나무는 전통적 상징성도, 환경적 효과도 뛰어나지만 수익성이 낮아 임업인들로부터 외면받아 온 비운의 나무”라며 “솔잎을 유상으로 수거하고지역 일자리까지 창출하기 때문에 한 번 일을 진행하면 지역 만족도가 높지만, 외지인에 배타적인 지역 특성상 첫 물꼬를 트기가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맨몸으로 지역을 찾아가도 만나주지도 않는 경우가 많았다. 신 대표는 “영주시에선 시장님과 대기업 이름이 적힌 협약서를 보여주니 쉽게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고 했다. 피노젠은 제품을 영주솔잎 버전으로 리뉴얼하고 신제품도 내놨다.최근에는 화장품과 원재료를수출하는 계약까지 마쳤다.

새우 양식장을 만드는 ‘한국수산연구원(KOF)’은 바다와 접하지 않은영주를새우 양식지로 정했다. 육상 양식은 해양 오염에 노출된 수상 양식과 달리 운영자가 철저히 환경을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교통 인프라가 중요하다. 수산 전문가인 김민수 KOF 대표는 " 영주는 서울에 KTX로 2시간이면 갈 수 있고, 대구도 자동차로 쉽게 갈 수 있어 대도시와 접근성이 좋은 편”이라며 " 영주는 육상 양식에 최적의 위치” 라고 강조했다. KOF는 첨단 인공지능 설비를 갖춘 육상 양식장 건설을 허가받았다. 김 대표 역시 “사업 초기에 환경 오염을 우려한 지역 주민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줘서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23일 경북 영주에서 진행된 노지(露地) 캠핑 프로그램. 지역상생 프로젝트 '스택스' 선정 기업 백패커스플래닛이 주최했다.

유휴공간 활용 아웃도어 스타트업인 백패커스플래닛은 영주시와 협력해 2023년 한 해 동안 4곳의 시 소유 유휴 캠핑 부지에서 10번 이상의 캠핑 행사를 진행했고 총 421명의 외부 관광객을 유치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영주를 재방문하고, 지역 맛집이나 숙박 등을 연계 관광하는 시너지 효과를 냈다.

건축사무소에서 시작한 빈집재생 스타트업 ‘블랭크’는 영주시내 유휴 건물을 리모델링해 관광 자원으로 만들었다. 이번 사업으로 시작된 ‘유휴 하우스 영주’는일주일 이상 장기 투숙객을 위한 숙박 서비스다.영주시의 특성을 반영해 소백산 조망이 가능하고 대형 데크가 설치된 아웃도어 친화형 주택으로 꾸몄다. SK 측에서도 힘을 보탰다. SK매직은 블랭크와 MOU를 체결하고 유휴하우스 영주에 정수기, 공기청정기, 비데 등 6개 가전을 제공했다. 엄성진 블랭크 디렉터는 “장기 휴가를 즐기려는 단순 관광객 고객도 있지만 단독주택이나 귀촌 생활을 꿈꾸고 미리 체험해 보려는 젊은 부부, 시끄러운 대도시에 지친 유명 여행 유튜버 등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했다”면서 “대형 관광도시처럼 볼거리, 먹거리가 많지는 않지만 조용하고 편안한 풍경에 오히려 느리게 쉬며 일하는 ‘워케이션’에 안성맞춤이라는 평이 많다”고 했다. 유휴하우스 영주는 내년 1월 말까지 이미 예약이 마감됐다.

◇식당 열었더니 관광객이 오더라

관광이 아닌 산업과 제품 생산에 나선 곳도 있다. 국내 수제 맥주 1세대인 ‘세븐브로이’ 공동창업자인 김교주 대표와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출신 박진성 대표가 함께 창업한 ‘리쿼스퀘어’가 대표적이다. ‘편의점 품절 대란’을 일으킨 ‘곰표맥주’와 함께 ‘강서’ 등 지역성이 담긴 맥주를 만들어온 팀이다. 영주 특산물을 활용한 브랜디를 만들어 영주를 살려보겠다는 포부로 참여했다. 이들은 관광객을 찾아보기 힘든 영주 구도심의 ‘중앙시장’에 양조장 등 샵을 차리고, 친분이 있는 스타트업을 끌어오는 등 ‘스타트업이자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나서서 수행했다. 리쿼스퀘어 박진성 대표는 “원재료로 지역 특산품을 사용해 농가와 상생할 뿐아니라 로컬에 기반한 술을 통해 자연스레 지역을 브랜딩하고 알리는 것이 목표”라며 “최근 상승세가 가파른 브랜디로 종목을 확정하고, 내부 개발은 완료했으며 행정 절차 등을 마치는 단계”라고 했다. 실제 리쿼스퀘어는 지난해 10월 중앙시장 내에서 술과 음악, 지역과의 조화를 주제로 한 ‘영주 어반 버스킹 2023′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도 했다.

‘동아식당’ 등을 성공시키며 대구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진 피키차일드컴퍼니는 아예 영주에 식당을 열었다.피키차일드컴퍼니는 ‘영주에 불시착한 성수 식당’이라 불리는 텍사스 바비큐 전문점 ‘미트필드’를 열었고, 미트필드를 찾아 영주에 오는 관광객이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대구에서 쌓은 노하우로 영주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 핵심 인력인 공동창업자 3인이 지난 2년간 영주에 머물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다. 대표적인 문제가 인력 채용이다. 스택스 선발 기업은 프로젝트 추진과 동시에사업을 확장하고 인원도 늘려야 했지만, 영주에서 일할 직원을 구하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 구인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표적인 게 피키차일드컴퍼니 사례다. 핵심 인력인 공동창업자 3인을 영주로 파견시킨 후 현지 인력을 채용하고, 이들은 빠진다는 계획이었으나 채용이 되지 않아 지난해 말까지 꼬박 2년간 이들이 영주에 상주했다. 이들의 빈자리를 메꾸고 늘어난 주거비 지원 등 유무형의 부담은 고스란히 기업 몫이었다. 성주현 피키차일드컴퍼니 대표는 “우스갯소리로 ‘한국어로 주문받고 접시만 나를 수 있어도 채용해 가르치자’고 했는데도 지원자 자체가 없었다”고 했다. 성 대표는 “영주 내 대학과 연계한 채용 홍보 지원이나 이주 청년에 대한 주거 공간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주 생활을 지속하게 할 문화 인프라 확충도 시급하다. 영주 프로젝트 총책임자로 파견된 엄성진 블랭크 디렉터는 “운동을 하고, 단골 식당을 만들어 사장님과 친해지는 등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며 “정주나 이주를 꿈꾸는 청년층이 즐길 수 있는 문화 인프라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로선 이를 기업이나 직원 개인의 희생이나 선의에 기대 해결하고 있는 구조인 셈이다.

스택스 프로젝트는 3년간의 실험을 마치고 더 큰 도약을 준비 중이다. 대부분 기업이 영주에서 3년 전 약속한 실험을 이행했고, 시장에 ‘영주’ 이름을 단 서비스나 제품이 출시됐다. 영주 솔잎을 활용한 화장품(피노젠), 영주시의 고즈넉한 매력을 살린 유휴하우스(블랭크), 영주시 대표 브랜디(리쿼스퀘어) 등이 대표적이다. 임팩트스퀘어 측은 스택스의 성과를 확인하고 이러한 프로젝트를 전국 각지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는 “비슷한 프로그램에 대한 문의가 다양한 지자체에서 오고 있다”면서 “각 지역의 특색에 맞는 스타트업 연계 활성화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영주시 역시 청년 정주, 이주를 위한 지원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박남서 영주시장은 “영주가 청년들이 기업하고, 살기 좋은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SK머티리얼즈 역시 스타트업과 지역에 대한 지원을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SK머티리얼즈 관계자는 “지역 상생은 우리 기업의 가장 큰 미션 중 하나”라며 “스택스 프로젝트가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는 대표적 지역상생 프로젝트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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