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나 야구나 필요한 건 ‘용기’

이유진 기자 2024. 4. 2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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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25년차 야구 기자 김양희의 <인생 뭐, 야구>

2020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프로야구 선수 박용택은 알람 시계를 5개나 맞춰놓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루틴대로 정확히 움직였다. 25년 동안 프로야구 현장을 누빈 ‘야구 전문’ 김양희 <한겨레> 기자의 근면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인생 뭐, 야구>(산지니 펴냄)는 제목부터 엄살 없는 김 기자의 성실함을 떠오르게 한다. 숫자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야구적 순간’을 충실하게 담아낸 이 책은 우아하고 이성적이면서도 감상적인 야구인들의 야구 인생 이야기로 가득하다. 1년에 적어도 144일은 야구에 웃고, 야구에 울고, 야구에 화내고, 야구에 기뻐하는 야구팬들의 팬심도 빼놓을 수 없다.

야구도, 인생도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김원형 전 에스에스지(SSG) 랜더스 감독은 현역 시절 폭포수 커브를 보여줬지만, 그가 던진 공들은 팔꿈치와 어깨를 불태운 결과였다. 김시진 전 롯데 감독 또한 오른팔이 굽었다.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도 왼쪽 팔이 곧게 펴지지 않는다.

저자는 2000년 ‘여성’ 스포츠 기자가 되어 야구를 담당했다. 아침에 더그아웃 취재를 마치고 기자실로 들어오면 어떤 감독은 아침부터 재수 없다며 매니저를 시켜 소금을 뿌려댔다. 비판하는 기사를 쓰면 “야구도 모르는 년”이라는 뒷말이 날아들었다. 사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야구판은 남자들의 세계다. 하지만 이제 야구로 치자면 25년차 선수로 성장했고, 1년차 때 만난 선수들이 단장·감독·코치가 됐으며, 이른 아침부터 여자라고 소금 세례를 받지도 않는다. 야구의 세계는 인생처럼 변화무쌍하다.

하지만 야구도, 인생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이승엽 감독은 국내 최고의 선수였다가 일본 진출 첫해에 좌절을 맛본 이후 하루 450~500번 스윙을 하면서 일본 프로야구의 상징인 요미우리 자이언츠 4번 타자가 됐다. 최형우는 23살 때 삼성에서 방출되고 막노동 등을 전전하다가 경찰청 야구단으로 들어가 왼손 거포로 거듭났다. 삼성과 재계약한 뒤 만 25살로 최고령 신인상을 받았고 2016시즌이 끝난 뒤 자유계약 신분을 얻어 총액 100억원에 계약했다.

“필요한 것은 과감하게 지우고 다시 쓸 용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 또한 예외는 아니었을 테다. 매일매일 타석에 들어서는 독자들에게 잔잔한 위로가 될 문장도 독서의 즐거움을 더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 “그때가 오면 중요한 것은 두 가지뿐이다. 순간을 포착할 준비, 최선의 스윙을 할 용기.”(행크 에런)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이규보 선생님, 고려시대는 살 만했습니까

강민경 지음, 푸른역사 펴냄, 2만원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강민경이 이규보(1168~1241)의 삶을 통해 고려 사람의 삶과 생활을 펼쳐 보인다. 이규보는 못 말리는 술고래, 동네 아재처럼 ‘나 때는 말이야~’를 거듭하던 꼰대, 가족과 백성을 향한 긍휼심을 잊지 않았던 지식인으로 지배층의 수탈을 통렬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세상살이가 팍팍하게 느껴질 때 펴보면 좋을 유쾌함과 정보가 가득하다.

왜 우리는 쉽게 잊고 비슷한 일은 반복될까요?

노명우 지음, 우리학교 펴냄, 1만5800원

사회적 참사, 재난에 관해 사회학자 노명우가 쓴 인문서. 청소년 눈높이에 맞췄지만 내용은 웅숭깊다. 1915년 아르메니아 대학살, 제주 4·3, 이태원 참사, 가습기살균제 참사 등을 검토하며 왜 인류가 참사의 징후를 무시했는지 재난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살폈다. 재해를 재난으로 만드는 불평등, 기억을 은폐·억압하려는 압력과 저항도 함께 짚는다.

느낌과 알아차림

이수은 지음, 민음사 펴냄, 1만8천원

독일에서 중세사를 공부하고 22년간 문학 편집자로 일한 저자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3년4개월 동안 읽고 또 읽으며 유례없는 독서 후기를 썼다. <…시간…>은 민음사 번역본 기준 총 13권, 약 5600쪽에 이르는 방대한 길이, 2천 명에 이르는 등장인물로 악명 높다. 이 웅장한 고전을 파헤친 저자의 만만찮은 시간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신유물론이다

심귀연 지음, 날 펴냄, 1만6800원

생태인문학과 몸에 관한 철학적 문제를 심도 깊게 탐구해온 심귀연 경상국립대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가 브뤼노 라투르, 로지 브라이도티, 제인 베넷, 도나 해러웨이, 카렌 바라드의 사상을 소개하는 신유물론 입문서다. 신유물론은 물질에 관해 새롭게 사유하는 철학으로 ‘인간’ 이외의 것이 가진 능동성·생기·활력을 중시하며 이분법을 해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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