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애니 첫 오스카 후보 ‘오페라’ 높이 6m 미디어 아트로 재탄생
5분이라는 시간, 6m 높이의 피라미드에 인류의 역사가 압축됐다. 2분 30초의 낮과 밤이 순환하는 동안, 수천 명의 작은 캐릭터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얼굴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억압당하던 유색 인종이 테러를 일으키고,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인류의 흑역사가 쳇바퀴 돌 듯 반복된다.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오른 단편작 ‘오페라’(2020)가 미디어 아트로 만들어졌다. 25일부터 제주 애월읍에 개관하는 복합문화공간 ‘하우스 오브 레퓨즈’에서 상설전 ‘O : 에릭 오 레트로스펙티브’가 열린다. 에릭 오(40) 감독은 ‘도리를 찾아서’ ’인사이드 아웃’ 등에 참여한 픽사 애니메이터 출신으로 대표작인 ‘오페라’는 오스카는 물론 세계 4대 애니메이션 영화제에 모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오페라는 픽사를 그만두고 만든 첫 작품이다. 4년 동안 오 감독과 30여 명의 애니메이터가 CG 없이 수작업으로 세공했다. 21일 만난 에릭 오 감독은 “보는 사람에 따라 30분짜리, 1시간짜리 영화가 될 수도 있다. 볼 때마다 새로운 요소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힘들어서 멈추고 싶을 때마다 아시아 혐오 범죄가 벌어지고, 총기 사고로 아이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더라고요. 사람들이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어요.” 작품이 완성되자 픽사를 시작으로 디즈니·드림웍스 등에서 상영 요청이 쇄도하며 업계에서 먼저 입소문이 퍼졌다.
이번 전시에선 ‘오페라’를 비롯해 미공개 신작들을 선보인다. 모든 작품이 5분이라는 시간에 맞춰 동시에 시작되고 끝난다. 관람객은 수많은 낮과 밤을 지나며 인류의 시작과 끝을 경험하게 된다. 그의 작품에선 원이 자주 등장하며, 모든 것이 순환한다. “거대한 역사의 순환 속에서 인간의 삶도 끝없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란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지 질문하고 싶었죠.”
한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영어 한마디 못하던 소년에게 그림은 유일한 소통 수단이었다. “그림을 그리니까 친구들이 와서 말도 걸어주고, 영어도 조금씩 배울 수 있게 됐죠. 오래전부터 그림은 제 삶의 버팀목이었어요.” 고등학교 때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그는 “두 나라에서 살면서 양면을 바라보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제 작품에선 선과 악, 삶과 죽음, 추악한 것과 아름다운 것이 동전의 양면처럼 달라붙어 있다”고 했다.
척박한 한국 애니메이션의 토양에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영화는 촬영 기간도 짧고 시대를 빠르게 반영하는 반면, 애니메이션은 굉장히 노동 집약적이고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죠. 변화를 빠르게 포착하고 흡수하는 것은 한국의 장점이지만, 축적하고 인내해야 하는 시간을 기다려주진 않는 것 같아요.” 그에게 애니메이션은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애니메이션 하면 흔히 만화 영화를 떠올리시지만, 근본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이런 것도 애니메이션이구나’ 새로움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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