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찰들 대학원 진학 5배 급증…퇴직 걱정에 “주경야독”

2024. 4. 24.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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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업 능력 제고·퇴직 후 재취업 가능성 여는 ‘일거양득’
3년간 취업제한 받지만 석박사 학위 있으면 예외 적용
“60세 퇴직하면 아파트 경비…불안 속에 공부만이 살길”
100세 시대, 60세 정년 퇴직 후 남은 40년간의 인생 후반기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게티이미지]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경찰공무원은 정년이 60세다. 문제는 계급정년에 걸리면 50대에도 옷을 벗는다는 점이다. 계급정년은 일정기간 승진이 안될 경우 자동퇴직되는 제도다. 경찰들이 ‘승진’에 목을 메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는 일찌감치 ‘제 2의 생’을 준비하기도 한다. 최근엔 퇴직 후 여생을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경찰에게 ‘공부’만이 살 길이 됐다.

24일 경찰청에 따르면 국비 지원을 받아 (야간)대학원 석사 과정에 진학한 경찰 공무원의 수는 최근 2년간 5배 넘게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경찰 공무원 가운데 대학원 진학자는 지난 2022년 28명이었으나 2023년에는 176명, 2024년에는 175명(예정)이나 됐다.

경찰 가운데 대학원 진학자가 이처럼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은 2023년부터 인사혁신처로부터 ‘위탁 교육 예산’을 받아와 경찰청 자체적으로 교육 일정을 운영할 수 있게 되면서다.

경찰청 관계자는 “원래는 정부에서 부처마다 (장학금 수여)인원을 배분해줬는데, 경찰은 14만명의 거대 조직인 점을 감안하면 여타 부처에 비해서 불리하다고 설득해서 지난해부터 자체 예산을 받고 배정된 예산 내에서 자율적으로 인원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찰청 제공]

심사 기준은 일률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현재 맡고 있는 직무와 연관이 있거나, 과거 수행했던 직무, 또는 관련 학과를 졸업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는 설명이다.

대학원 진학 지원 규모는 학비에 대한 개인 부담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알려진다. 대학원 한 학기 등록금이 평균 600만~700만원일 때, 통상 자비부담이 10~20%대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현직 경찰은 “4학기 석사과정을 마치는데 자비로 250만원이 들었다”고 말했다.

경찰들이 주로 진학하는 과는 경찰행정, 사이버(Cyber), 보안(안보) 등이 대표적이다. 경찰은 대학원에 진학한 경찰들이 주로 본인 업무의 전문성을 높이고, 인적 교류를 활성화하는 차원에서 조직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수사관들은 디지털포렌식 등 수사 실무에 필요한 자격증 취득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안팎에선 대학원 학위 취득과 자격증 확보는 당장의 업무 능력 배양과 함께 경찰 퇴직 후를 대비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경찰은 경사(순경, 경장 다음 직급) 이상만 되어도 퇴직 후 3년간 취업제한을 받는다. 취업가능여부확인심사를 요청하면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해당 경찰관의 퇴직 직전 5개년 동안 근무, 담당했던 직위를 따져서 직무연관성이 있는지를 들여다 본다. 이 과정에서 평균적으로 20~30%는 불승인될 정도로 심사는 엄격하게 진행된다.

예컨대 교통경찰을 하다 보험사 조사원(SIU)으로 취업하거나, 사이버수사를 맡았다가 보안업체로 옮기는 것은 기본적으로 제한된다는 설명이다. 이럴 때 석사·박사 학위와 전문 자격증은 취업 심사 제한을 우회하는 통로가 된다.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제34조(취업승인) 3항에서는 9가지 예외규정을 둔다.

이 가운데 아홉 번째 규정은 대학원과 관련된 내용으로, ‘취업하려는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자격증·연구성과 등을 통해 그 전문성이 증명되는 경우로서 취업 후 영향력 행사 가능성이 적은 경우’라고 정해두고 있다. 여덟 번째 조항은 ‘취업하려는 기관(기업)은 직전 5년간 업무와 관련성이 있더라도 내부에서 맡게 될 구체적인 업무는 결이 다르다’는 점을 증명하면 취업승인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

경찰 관계자는 “대부분 이 8, 9번째 예외조항에 본인이 해당한다면서 예외심사를 신청하는 편”이라며 “사실 퇴직 후 3년이 지나면 아무런 취업제한이 없지만 생활인으로서 그렇게 오래 쉬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수사관은 “저연차든 고위직이든, 모든 경찰은 퇴직 후가 불안하다. 오죽하면 경찰 퇴직하면 아파트 경비된다는 말이 나오겠느냐. 뿐만아니라 정년까지 채우고 퇴직해도 연금은 5년 뒤에나 받는다”면서 “그래서 다들 공부하는 거다. 일은 일대로 하고 야간, 주말에도 공부해야 해서 피곤하지만 정말 ‘공부 말고는 할 게 없다’는 말이 딱 맞다”고 언급했다.

또 다른 경찰 간부도 “경찰대생들이 로스쿨 많이 간다고 욕을 먹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는 정말 어쩔 수가 없는 선택일 수 있다”며 “변호사 자격증은 ‘무적(無敵)’이라서 취업하려는 기업과 직접적인 직무 연관성이 있더라도 변호사로 취업하는 것이면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3년간 매년 70~80명의 경찰대 출신 경찰이 로스쿨로 진학했다. 경찰대를 졸업한 뒤 임용되는 인원이 통상 100~110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졸업생의 20~30%는 로스쿨행을 택한다는 뜻이다.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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