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많게는 13번”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韓에서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 [인터뷰]
25일 독주회로 쇼팽ㆍ류재준 초연곡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하루 평균 수면 시간 6시간. 스케줄이 적은 날 기준, ‘수업 2시간, 연습 5시간, 산책과 휴식 시간’.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40)의 시계는 매일 정확히 움직인다.
“스케줄이 별로 없는 날도 6시간 이상 피아노를 치진 않아요. 육체적으로 한계가 있으니까요.”
협연, 솔로, 반주까지 한 달에 많게는 13번. 러시아 출신의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는 한국에서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다. 이번 달에는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와 한 무대에 섰고, 솔로 리사이틀(4월 25일, 예술의전당)도 앞두고 있다. 하루에 두 번 무대에 설 때도 있다. 오는 6월 29일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과 함께 하고, 오후 7시엔 부천아트센터에서 라프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개를 연주한다. 그를 만날 수 있는 시간도 리허설과 연주회 사이, 잠깐의 짬이 났을 때다.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는 “피아노를 치는 일은 내게 에너지를 쓰는 해로운 일이 아니고 오히려 생기를 줘 건강에 좋다”며 웃었다.
그는 한국 클래식 음악계 ‘열일’의 아이콘이자, ‘반주왕’이다. 수많은 연주자들이 피아노 반주가 필요할 때 라쉬코프스키에게 S.O.S를 보낸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클라리넷, 색소폰 등 모든 악기를 섭렵하며 한 무대에 섰고, 심지어 솔리스트들의 음반 발매 간담회에서도 라쉬코프스키를 만나게 된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소프라노 박혜상,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등 쟁쟁한 솔리스트들이 그를 찾는다.
이전엔 자신에게 찾아오는 모든 반주 요청을 승낙했다고 한다. 그는 “존 케이지(1912~1992)가 모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잡으라는 말을 했다”며 “그들이 유명하지 않더라도 만약 내게 찾아온 기회를 거절한다면 특별한 경험을 잃었다는 생각에 후회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은 워낙 요청이 많아 개인 연주와 연습 시간을 고려해 선택하고 있다.
그의 반주 영역은 장르와 악기를 가리지 않는다. 관악, 현악, 성악을 아우른다. 무수히 많은 ‘반주 요청’ 중 압도적으로 많은 악기군은 바이올린. 가장 많이 연주한 곡은 세자르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다.
“각각의 악기와 연주자마다 성향이 다르고 곡에 접근하는 방식도 달라 서로의 음악을 잘 들어가며 연주하는 것이 중요해요. 너무 자연스럽지 않아도, 테크닉에 있어 기량이 부족해도 힘들긴 해요. 아예 다른 음으로 연주하는 경우는 난감하죠.(웃음) ”
라쉬코프스키는 현악기 중 첼로와의 만남을 ‘어려운 연주’로 꼽았다. 음역대가 낮은 데다 첼리스트의 등을 보고 연주해야 하기에 커뮤니케이션이 쉽지 않아서다.
그가 ‘반주왕’이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무수히 많은 무대에 오르면서도 ‘연주의 기복’ 없이, 한결같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게 그 비결이다. 적절한 ‘치고 빠지기’도 일품. 함께 하는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면서도, 자신을 적당히 드러내니 모두가 원할 수 밖에 없다. 성격 역시 까다롭지 않다. 그는 “처음 반주를 할 때는 내가 생각한 방향과 상대가 해석한 방향이 달라 맞춰가는 것이 힘들었는데, 이젠 연주자들에게 맞춰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들이 편하게 연주할 수 있도록 한다”고 귀띔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연주자가 즐겨야 관객도 즐길 수 있다는 거예요. 두 사람이 하든, 세 사람이 하든 서로 즐기며 하나가 돼 연주하도록 하는 것이 반주자의 덕목이에요.”
솔리스트로 무대에 오르는 이번 공연에선 라벨, 쇼팽, 류재준의 초연 곡으로 관객과 만난다. 특히 류재준 작곡가의 인연은 특별하다. 2011년부터 류재준의 피아노협주곡, 피아노 소나타, 애가 등의 작품을 연주해 온 것. 2017년부턴 성신여대에 출강하며 한국에 머물고 있다. 그는 류재준에 대해 “집 열쇠도 줄 만큼 가까운 가족 같은 친구”라고 했다.
공연에서 연주할 류재준의 ‘피아노 모음곡 2번’은 그가 2020년 발표한 2인 가극 ‘아파트’에서 발췌해 구성한 모음곡이다. 라쉬코프스키는 “류재준의 곡은 그만의 특성과 문법이 담겨 쉽게 알아볼 수 있다”며 “바흐의 영향이 많이 느껴지는 곡“이라고 말했다. 류재준의 난곡과 어우러질 곡은 쇼팽이다. 그는 쇼팽의 ‘24개 프렐류드’에 대해 “바흐에 감명을 받아 쓴 작품이라는 점에서 류재준의 곡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고 봤다.
반주자로서 여러 연주자와 함께 할 때와 피아니스트로 홀로 무대에 설 때의 그는 같지만 다른 자아다. 그는 “피아니스트로 연주할 때는 불안하고 초조한 감정을 가진다”고 말했다. 암보 연주가 ‘관행’이기 때문이다. 이에 하나의 곡을 온전히 체화하기 위한 준비 과정을 거치고 매 공연 긴장하며 기다린다. 물론 페이지 터너와 함께할 때도 있다. 그는 “페이지 터너는 가장 가까운 청중”이라며 “그를 위해 연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함께 한다”고 말했다.
일 년에 무려 70여회. 한국의 클래식 연주회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라쉬코프스키의 삶은 온전히 음악으로 채워져 있다. 피아노를 치지 않을 때도 악보를 분석하고, 음악을 듣고, 끊임없이 공부하며 영감을 충전한다. 그는 철저히 ‘현재형 인간’이다.
“전 늘 그리 먼 미래를 계획하진 않아요. 지금 이 상태가 좋아요. 이 곳에서의 삶과 일에 만족하고 있어요. (웃음)”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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