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현 / 부산 해운대 ‘보리문디’[내 이름 걸고 추천하는 맛집](18)

2024. 4. 2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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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남편 웃음’ 완성 시켜준 맛과 향
밖에서 안이 훤히 보이는 보리문디. 주인 김성훈 간판이 걸려 있다.


“처음으로 웃을 수 있는 기일이네.”

결혼 전, 남편의 고향 부산에 처음으로 함께 갔던 2019년 11월. 해운대 선술집 ‘보리문디’에서 청주와 맛있는 음식에 취해갈 때쯤 그가 말했다. 아버님은 내가 남편과 만나기 전 세상과 이별하셨는데, 갑자기 떠난 아버지의 빈자리에 목 놓아 울지도 못한 장남은 기일이 있는 11월엔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침잠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내가 함께여서 5년 만에 아버님 기일에도 웃을 수 있게 됐다며 고맙다고 했지만, 나는 그 웃음을 완성 시켜준 ‘보리문디’가 참 고마웠다.

옛 경상도의 주 재배 곡물인 ‘보리’와 경상도 출신의 사람을 장난스럽게 표현한 ‘문디’를 결합한 ‘보리문디’는 경상도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는 이름이다. 가게 이름만큼이나 크게 ‘주인 김성훈‘이라고 적힌 목조 간판이 눈에 들어온 순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요리하는 셰프에 대한 기대도 높아졌다. 미닫이문을 열자 8석 남짓의 바 자리가 눈에 들어왔고 마치 자주 드나들었던 공간처럼 온기가 느껴졌다. 셰프님 바로 앞 두 자리가 다행히 비어 있었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셰프와 마주 앉는 바 자리가 어색했다. 낯선 이에게 마음을 닫아두었던 나와는 달리, 처음 만나는 상대와도 금세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남편 덕분에 새로운 경험이 시작된 것이다. 남편은 1,000명이 넘는 교육생에게 스쿠버다이빙을 가르쳐 왔는데, 그들의 직업, 나이, 성별이 무엇이든 바닷속에선 탱크 속 기체로 숨 쉬는 다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에 일이 더 재밌어졌다고 했다. 그와 함께하며 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나 경계를 덜어내어 간다.

2019년 보리문디 앞에서 남편(당시는 남자친구)과 함께


아이스크림처럼 녹는 고등어 봉초밥

고등어를 사랑하는 우리는 고등어초회(시메사바)와 고등어 봉초밥을 주문했다. 셰프님이 내게 정겹게 말을 걸어주셨고, 남편을 결혼할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동년배의 부산 사나이 둘은 서로의 공감대를 확인하며 편해져 갔다. 대화를 정겹게 나누면서도 손이 바쁘게 움직이던 셰프님이 완성된 음식을 건네주셨을 때, 자동반사로 우리의 탄성이 터졌다. 원형 접시에 가지런히 꽃처럼 둘린 고등어초회 위에 노란빛의 깻가루가 둥글게 뿌려져 있었는데, 짙푸른 색에서 은빛으로 그러데이션 되는 고등어 등 부분과 선홍빛의 속살, 송송 썬 싱그러운 초록 파가 완성한 아름다운 색 조합이 예술작품 같았다.

고등어초회는 산패가 빠른 고등어를 운송하기 위해 살균력이 있는 식초에 담근 것이 기원이다. 과정이 간단해 보여도 싱싱한 고등어를 선택해 소금과 식초로 제대로 절여 그 특유의 맛과 향을 만드는 것이 정말 어려운 기술이어서 일식 요리 고수를 가리는 척도라고도 한다. 파와 생강을 올린 회 한 조각을 간장에 찍어 입에 넣었는데 고소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 온몸에 퍼지는 풍미가 감동 그 자체였다. 셰프님의 정성이 가득 담긴 우엉 장아찌, 유자 단무지, 직접 담은 보리 된장을 곁들인 오이 등의 반찬을 음미하며 그 감동은 더 증폭됐다.

눈물 나게 맛있다며 셰프님 앞에서 열광하는 중에 고등어 봉초밥이 등장했다. 젓가락으로 집기 좋게 사각 김 안에 쏙 안긴 고등어 초밥이 사이좋게 꼭 붙어 일렬로 자리하고 있었다. 밥과 김이 어우러진 통통한 고등어살이 입안에서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음식을 만들어 준 고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음식을 맛본 마니아의 생생한 반응을 볼 수 있는 바 자리. 나는 그 진짜 매력을 보리문디에서 처음 알게 됐다.

보리문디는 메뉴판의 제일 앞 장이 매일 달라진다고 한다. 그날의 가장 싱싱한 식재료를 손님에게 내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음식을 다 먹어버린 우리는 어느새 메뉴판을 다시 정독하고 있었고, 청주 한 병을 다 비운 후 하이볼을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올해로 스쿠버다이빙 강사 10년 차가 된 나는 2019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스쿠버다이빙 단체인 PADI의 글로벌 홍보대사가 되었는데, 임명 후 첫 행사였던 필리핀 세부의 수중 촬영 대회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우리 커플의 이야기를 셰프님이 즐겁게 들어주셨다. 남편과 내가 직접 촬영한 바다 생물 영상도 보여드리고, 이 맛있는 음식을 자주 먹고 싶다며 서울로 오시라는 농담 섞인 진담도 건넸다. 그렇게 우리는 보리문디의 열혈 팬이 되었고, 지난 5년 동안 부산에 갈 때마다 우리의 저녁 한 끼는 항상 보리문디였다. 쌓여온 시간 속에 셰프님과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응원하게 되었다.

왼쪽 김성훈 셰프님, 글에서 이야기한 1층 바 자리


개업 10년 이후의 꿈도 응원

올해 초 내 인생 첫 에세이 <이제 내려가 볼까요?>를 출간했다. 스쿠버다이빙을 소재로 한 인생과 사랑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을 우리 부부와 바다 이야기를 소중하게 함께 나눠주신 김성훈 셰프님께도 꼭 드리고 싶어 지난 3월 부산을 찾았다. 아쉽게도 고등어 금어기라 고등어초회를 맛볼 순 없었지만, 덕분에 줄무늬 전갱이와 단새우회를 참 맛있게 즐겼다. 더 오르려는 계획대로 되지 않아 상처받았던 마음을 놓고, 내려가도 좋다는 마음으로 삶을 대하기 시작하니 소소한 행복을 자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내 책의 이야기가 보리문디에서도 펼쳐졌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아쉬움이 더 멋진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지는 기회가 될 수 있다니! 삶의 오묘한 흐름에 마음이 놓인다.

하루에도 수많은 식당이 개업하고 폐업하는 요즘, 셰프님은 처음 보리문디를 열었을 때 이 가게를 10년 동안 유지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올해로 11년째가 되어 이미 그 꿈을 이루셨으니 혹시 다음 꿈도 있으신지 여쭸다. 새로 오픈한 덮밥 전문 일식당 ’하데나‘를 잘 성장 시켜 서울에도 매장을 내고 싶다고 하셨다. 5년 전 서울에 개업하시라는 농담에 수줍게 반응하셨던 셰프님이 이 대단한 음식 맛을 서울 사람들에게도 보여주실 맘을 갖게 된 것이 참 감사했다. 다음 날 점심, 시어머님을 모시고 하데나를 찾았다. 아귀 간 덮밥, 참치 덮밥, 연어 덮밥을 주문했는데 모든 메뉴에 ’아! 제발 서울에도 오픈해주세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사장님의 다음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이제부터 부산에서 우리 부부의 저녁은 보리문디, 다음 날 점심은 하데나로 고정이다.

단새우회


줄무늬 전갱이 사시미


고등어봉초밥


고등어초회(시메사바)


필자 최송현


연어덮밥을 맛있게 먹는 필자. 애견동반이 가능한 식당이라 반려견 레오와 함께 했습니다.


필자는 2006년 KBS 아나운서로 방송 생활을 시작했다. 2008년 퇴사 후 연기자로 다수의 드라마, 영화에 출연했고, 다양한 방송 활동 중이다. 수중 영상을 촬영하고 수중 전문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2024년 1월, 에세이 <이제 내려가 볼까요?>를 출간했다.

최송현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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