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마지막 골든타임" LG-롯데 '화학 빅딜' 4년만에 재논의 [공멸 위기의 석유화학③]

차준호, 박종관, 하지은 2024. 4. 2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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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2위 LG화학과 롯데케미칼, 생존 위한 합종연횡 검토
중국발 위기의식 확산한 석화업계…범용 제품 설비 통합 나서나
공정위 독과점, 세금 등 장벽도 뚜렷..."정부 지원 이어져야"
이 기사는 04월 19일 08:2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중국의 부상으로 도래한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위기를 누구보다 먼저 체감한 곳은 현장에서 뛰는 기업들이다. LG화학은 2조원을 투입한 NCC 2공장을 가동 2년여만에 시장에 내놓았고, 롯데케미칼은 해외 진출의 상징인 LC타이탄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부진한 업황 속 제값을 받지 못하더라도 대거 자산 정리에 돌입한 건 지금의 위기가 결코 단기에 끝나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하지만 이런 수준의 자산 매각만으로 구조적 산업 변화에서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건 모두 직감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에선 결국 '빅딜' 카드가 해법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내 1, 2위 업체인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을 중심으로 합종연횡 논의가 4년여 만에 다시 감지된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무분별하게 늘린 에틸렌·프로필렌 등 범용 석유화학 생산 설비를 일원화하고, 더 나아가 양사 간 석유화학부문의 통합을 위한 인수합병(M&A)까지 추진하겠다는 행보로 풀이된다.

2020년 불씨 피운 '빅딜' 초기 단계 스터디 

18일 투자은행(IB) 및 화학업계에 따르면 LG화학과 롯데케미칼 내부에선 적자가 이어지는 범용 NCC설비를 양사가 통합하는 방안에 대해 초기단계 스터디가 진행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진 실무진 차원의 논의 단계로 그룹 최고경영진까지 보고되진 않은 사안으로 알려졌다.

두 회사가 여수와 대산에 각각 세워 경쟁하고 있는 대형 NCC 설비를 한 데 모으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예를 들어 롯데케미칼 여수NCC 공장을 LG화학이 인수하고 LG화학 대산 공장은 롯데케미칼이 인수해 '1지역 내 1대형사'를 만드는 구조다. 같은 설비를 운영하는 공장이 두 지역에 나뉘어 있으면서 불거지는 비효율을 최소화하고 양사 간 제 살 깎아먹기 구조에서 탈피하자는 취지다. 이 과정에서 일부 중복 설비를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 설비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의 범용 NCC 설비 통합 논의는 2020년에도 한 차례 물밑에서 논의됐었다. 당시에도 중국 기업들의 자급률이 궤도에 오르고 고유가로 인한 스프레드 축소로 불황을 겪던 시기다. 양사 실무진 사이에선 당시 산업 구조 변화가 단기에 회복될 사이클이 아닌 국내 화학산업 전반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번지면서다.

두 회사는 4년 전 지역 내 구조조정을 마치면 추후 양사 간 범용 화학부문의 M&A, 조인트벤처(JV) 설립 등 구체적인 통합도 논의해가기로 했다. 당시에도 두 회사의 M&A 실무진에서 활발한 논의가 오갔지만 LG화학 측이 최종 반대의사를 밝히며 논의는 무산된 것으로 전해진다.

日 벤치마킹해 '제살 깎아먹기' 멈춘다

두 회사가 검토해온 지역별 과잉 설비를 통폐합하는 방향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일본 석유화학 업계를 살려낸 선제적 구조조정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각 석유화학사들은 대형 정유사들의 원유 컴플렉스를 중심으로 지역별 다수의 NCC 설비를 운영하고 있다. 여수엔 롯데케미칼·LG화학·여천NCC 세 곳의 설비들이 집중돼있다. 이들 기업은 수조원을 들여 설비 증설에 집중해왔다. 근래엔 LG화학이 2조6000억원을 투입해 여수 NCC 2공장을 증설했고 롯데케미칼은 생산량을 연간 20만톤 늘리는 투자를 단행했다.

대산엔 롯데케미칼과 LG화학 설비가 중복돼 있다. 울산엔 롯데케미칼과 대한유화 설비에 이어 에쓰오일은 지난해부터 9조원대 대규모 석화단지 투자인 '샤인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업계에선 에쓰오일이 본격적인 투자에 앞서 대한유화 설비 인수를 제안했지만 불발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범용 NCC 제품인 프로필렌을 생산하는 여천NCC는 공급과잉으로 막대한 손실을 봤지만 여천NCC에서 프로필렌을 공급받아 다운스트림 스페셜티 제품을 만드는 DL케미칼과 한화솔루션은 불황에도 3~4%대 영업이익을 올렸다"며 "범용단계의 NCC 공급사가 과잉경쟁하다보니 일부 통폐합해 효율화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과점 문제 등 넘어야할 산 많아…정부 지원 관건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두 기업이 모두 범용 석유화학에서 비중을 줄이려 나선 상황에서 성장 둔화가 뚜렷한 범용 설비를 인수해오는 합의를 이루기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국내 1, 2위 NCC 생산업체 간 통합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독과점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합작사(JV)를 세워 당분간 부담을 함께 지더라도 양사가 사업부문을 분할해 합작사로 자산을 양도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에 직면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각 기업 주도로 자율적 구조조정을 진행하되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적기에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본 정부는 NCC 구조조정 과정에서 석유화학 분야에선 일부 품목을 정해 한시적으로 공정거래법 적용을 유예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도 석유화학산업이 처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기업들과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달 초 LG화학, 롯데케미칼, SK지오센트릭, 금호석유화학 등 주요 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 간담회를 열고 석유화학산업의 위기 극복 방안을 논의했다. 정부와 기업들은 산학연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석화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협의체'도 만들기로 했다. 이 협의체를 발판으로 국내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에선 국내 기업들이 자율적인 구조조정으로 공급량을 줄임과 동시에 국내 기업들의 기술력을 눈여겨보는 중동 등 외부 자금을 추가로 유치해 경쟁력을 키우는 방안도 거론된다. 해외 정유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글로벌 얼라이언스 체계를 구축하는 식이다. LG화학이 쿠웨이트석유공사(KPC)에 지분 매각을 추진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KPC가 LG화학 지분 일부를 사가 피를 섞으면 LG화학은 싼값에 나프타를 공급받아 에틸렌을 생산할 수 있고, 이 에틸렌으로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할 수도 있다. 아울러 지분 매각 대금으로 배터리와 바이오 등 성장 산업에 투자할 수 있다. 

차준호 / 박종관 / 하지은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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