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계산기' 두드리다 2년 방치…국민에게 연금개혁 떠넘겨

설지연 2024. 4. 2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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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혁 공론화 과정에 참여한 시민대표단이 지속가능성이 떨어지는 '소득보장안'에 더 많은 표를 던진 것을 두고 공론화 과정이 애초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설계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국민연금 개혁 1·2안 응답자별 분포에서 10·20대 다수가 '조금 더 내고 많이 더 받는' 1안을 선택한 것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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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간 연금개혁
시민대표단 설문조사 결과 후폭풍
정부-국회, 총선 앞 핑퐁게임
개혁 방향 못 정하고 특위 구성
"공론화부터 하자" 대표단 꾸려
"연금개혁 아예 처음 들어봤다"
전문성 부족한 시민에 설문조사
포퓰리즘에 넘어간 시민들
기성세대보다 혜택 더 준다에
논의할수록 '소득보장'에 쏠려
23일 서울 충정로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사옥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강은구 기자


“500명 시민대표단 중에선 ‘연금개혁’이라는 말을 사실상 처음 들어본 사람도 있었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 관계자)

국민연금 개혁 공론화 과정에 참여한 시민대표단이 지속가능성이 떨어지는 ‘소득보장안’에 더 많은 표를 던진 것을 두고 공론화 과정이 애초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설계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복잡한 재정계산과 고도의 전문성을 토대로 이뤄져야 할 국민연금 개혁이 납부자인 시민 500명의 손에 넘겨지면서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냐는 얘기다. 정부와 국회가 서로 ‘핑퐁 게임’을 하며 1년 반 동안 방치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대통령실, 주무부처, 여야 모두 총선을 앞두고 인기 없는 개혁 과제를 주도하는 데서 오는 부담을 떠안지 않으려고 정치적 계산기만 두드렸다.

 정부·국회 책임 방기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5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연금·노동·교육개혁을 더 미룰 수 없다”며 정부의 3대 개혁 과제 중에서도 연금개혁을 첫 순위로 제시했다. 그해 10월 말 국회에서 연금특위가 출범했다.

당초 이듬해 1월 말까지 연금개혁 초안을 내놓겠다고 했던 특위는 일정을 미루더니 작년 2월 논의를 잠정 중단했다. 석 달간 민간자문위를 통해 국민연금의 모수(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개혁 등을 논의해 왔는데, 갑자기 여야가 “국회는 모수개혁은 손을 떼고 구조개혁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모수개혁은 5년마다 정부가 재정 추계를 통해 하게 돼 있다”며 공을 정부에 떠넘긴 것이다.


당시 정치권에선 총선을 1년여 앞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다. 대통령실이 총선 전 개혁에 난색을 보였다는 얘기도 들렸다.

정부 역시 개혁안을 내놓지 않았다. 작년 10월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수치는 뺐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 속에서 국회는 특위 출범 당시 예고한 대로 공론화위를 꾸렸다. 구조개혁을 할 건지 모수개혁만 할 건지 개혁의 방향성조차 정해지지 않았지만, 주호영 연금특위 위원장은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마무리하겠다”며 공론화 작업에 속도를 냈다. 올 1월 말 출범한 공론화위는 두 달여 만에 시민들의 최종 결정까지 받아냈다.

 “서민들 희롱한 포퓰리즘”

하지만 공론화 과정에 대해 뒤늦게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40대 이상이 70%에 달하는 시민대표 표본 구성’ ‘이해당사자들이 만든 선택지’ ‘3주라는 짧은 학습 기간’ 등을 두고 타당했는지에 대한 지적이다. 위원회 측은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 때의 절차와 방식을 참고해 진행했다”고 하지만 납부자와 수급자가 명확한 연금개혁이 원전 폐기 결정 방식과 같아도 되는지 비판이 제기된다.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국민연금 개혁 1·2안 응답자별 분포에서 10·20대 다수가 ‘조금 더 내고 많이 더 받는’ 1안을 선택한 것도 주목된다. 연금특위 관계자는 “처음에 중립적이거나 1안에 부정적이었던 청년층이 학습을 거치며 ‘윗세대가 받은 혜택을 청년 세대에게도 더 많이 주는 것’이라고 하니 1안으로 기우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2061년 납부해야 할 보험료율이 월 소득의 35.6%, 2078년엔 43.2%에 이르는데도 2065년께 받게 될 연금의 소득대체율이 50%라는 말에 더 설득됐다는 얘기다.

다른 공론화위 관계자는 “평생 보험료율 9% 이하로만 내온 중장년층 중 상당수는 처음에 ‘더 받는’ 안에 부담을 느꼈지만, ‘어차피 많이 받는 건 자녀들’이라는 말에 넘어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경준 연금특위 여당 간사는 “경제와 민생의 어려움에 지친 서민을 교묘하게 희롱하는 포퓰리즘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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