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제2이재학 PD 사건' 춘천MBC PD 부당해고 판결

김예리 기자 2024. 4. 2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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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MBC가 지휘·감독, 긴밀 협력…방영 일정에 출퇴근 구속, 직원 PD들과 같아" 김남헌 PD, 해고무효 확인 승소…해고 2년 3개월만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Gettyimages.

춘천MBC에서 11년여간 이른바 '무늬만 프리랜서'로 일하다 계약만료를 이유로 해고된 예능·교양 PD가 법원에서 부당해고를 인정 받았다. 지난 2021년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2심 판결 이후로 프리랜서 PD의 부당해고를 인정한 새로운 판례다.

서울남부지법 13민사부(재판장 최정인)는 지난 12일 김남헌 PD가 춘천MBC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 전부 승소 판결했다. 김남헌 PD가 2022년 1월 회사로부터 카카오톡으로 계약연장 불가 통지서를 건네받고 해고를 통보받은 지 2년3개월 만이다.

재판부는 “김남헌 PD(원고)는 2011년 4월 이래 줄곧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 관계에서 춘천MBC(피고)에 근로를 제공했으므로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근로자”라며 “이 사건 통지(계약만료 통보)는 부당해고에 해당하여 무효”라 밝혔다. 또한 춘천MBC에 해고 기간 임금을 모두 지급하라고 했다.

김남헌 PD는 2011년부터 11년간 일해온 춘천MBC에서 지난 2022년 2월 '계약만료 통보'를 받았다. 그는 조연출을 거쳐 2014년부터 8년간은 편성제작팀 예능·교양 AD·PD로 일했다. '맛깔세상' '신나군' '나이야가라' 등을 연출·조연출했고, 메인 PD 지시에 따라 아이템 선정과 현장 진행, 완제(광고 편성에 맞춰 방영분 편집), 시사, 메인PD 지원 등 프로그램 제작과 행정업무를 했다.

▲김남헌 PD가 해고 전 일한 강원 춘천 삼천동 춘천MBC 사옥 2층 편성제작팀 편집실 책상.

재판부는 판결문 전반에서 김 PD가 춘천MBC에 종속돼 다른 직원과 긴밀하게 협업했다고 거듭 판시했다. 재판부는 먼저 프로그램 제작 과정 관련 “김 PD가 관여한 주요 프로그램은 춘천MBC 직원이 기획한 방향에 따라 제작됐는데, 김 PD는 계획 단계에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촬영 전 진행되는 회의에 PD 및 작가와 함께 참석한 후 직접 프로그램 촬영·연출 업무를 맡았으며, 송출을 위한 편집까지 수행했다”며 “계획, 촬영, 편집 단계 전반에서 춘천MBC 소속 직원인 PD, 촬영감독, 오디오감독 등과 긴밀하게 협력했다”고 밝혔다. 주요 프로그램 외 업무에 대해서도 “직원(PD)들의 부탁 또는 지시에 따라 수행”했다며 “완제 또는 수출을 위한 편집업무는 춘천MBC 소속 직원들과 배분해 담당”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또한 춘천MBC가 김 PD의 업무 내용을 정하고 지휘·감독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춘천MBC가 방영 프로그램을 결정했고 회차별 기획도 직원인 메인 PD가 담당했다”며 촬영·편집 업무도 “메인 PD의 기획 의도나 방침에 따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가 연출한 일부 코너에 대해선 “정해진 전체 기획 방향을 준수해 한정된 범위의 재량하에 수행됐다”고 했다. 김 PD가 춘천MBC 지시에 따라 회사 행정업무를 수행한 사실도 인정했다.

이어 춘천MBC의 지휘·감독 근거로 △엔딩크레딧 연출로 기재되거나 촬영협조 대외공문에 담당 PD로 기재 △대내외적으로 춘천MBC 직원인 것처럼 표시 또는 인식된 점 △양측 사이 계약서는 모두 춘천MBC가 지정하는 업무를 수행할 것을 전제로 하는 점 등도 들었다.

▲춘천MBC 나이야가라 프로그램 엔딩크레딧에 연출로 기재된 김남헌 PD 이름.

재판부는 김 PD 출퇴근이 춘천MBC 방영 일정에 묶인 점도 정규직 PD와 같다고 했다. “김 PD가 임의의 장소나 시간을 정해 업무를 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며 “비록 춘천MBC가 정한 출퇴근 시간에 구속되진 않았으나 이는 업무 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춘천MBC 직원인 PD들도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방송제작의 특수성에 비춰봐도 노동자성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가 맡은 업무가) 촬영지나 편집실이란 일정 장소에서 공동 목표 아래 통일된 기획 방향에 따라 상호 밀접한 관련을 갖고 실시간 결합해 수행되는 것이 보통”이라며 “실제로 (정규직 메인PD가) 김 PD에게 촬영·편집 업무를 분배하고, 실시간으로 김 PD에 구체적 사항을 지시함과 동시에 즉시 업무상황을 보고 받았다”고 했다. 김 PD 업무가 사실상 대행 불가하다는 점에서도 그가 '프리랜서'라는 주장을 배척했다.

김 PD가 취업규칙을 적용받지 않았고, 사내 전산망 접속 권한이 제한적이며,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고, 사업소득세를 냈음에도 근로자성을 인정한 대목도 있다. 재판부는 “이들 사정은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임의로 정할 수 있으므로, 이를 이유로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김 PD가 소득 활동을 전적으로 춘천MBC에 의존해왔다”는 점도 언급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김 PD가 2011년경 춘천MBC의 기간제 근로자로 근무를 시작했더라도, 늦어도 2014년경부터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전환됐다”며 “이 사건 통지는 해고에 해당하는데 춘천MBC가 해고 사유와 시기를 서면 통지하지 않은 사실이 인정되므로 무효”라고 했다.

▲고 이재학 청주방송 PD 부당해고 2심 판결문에 나타난 이 PD의 노동자성 인정 근거와 김남헌 춘천MBC PD의 근무 양식 비교. 김 PD 노동위원회 구제신청 이유서 참고, 미디어오늘 보완. 그래픽=안혜나 기자

이 사건은 김 PD가 오랜 시간 계약서 없이, 또는 '프리랜서' 형식으로 회사 지시에 따라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다 해고 통보를 받았고, 춘천MBC가 재판에서 청주방송의 노동자성 부정 논리(1심 당시)를 답습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고 이재학 PD 사례와 닮은꼴 사건으로도 알려졌다.

김 PD를 대리한 정일호 변호사(법률사무소 시선)는 “회사를 위해 일한 이가 근로자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판단이 법원을 거쳐 나왔다”며 “회사는 빠른 시일 내에 김남헌 PD에게 다른 정직원들과 같은 정당한 대우를 하고 복직시켜야 할 것”이라고 했다. 윤아무개 춘천MBC 경영국장은 판결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검토 중이라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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