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깃든 집

김현지 2024. 4. 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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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커다란 캔버스 삼아 직접 만든 가구와 예술 작품으로 차곡차곡 채웠다.

이정배, 이진주 작가 부부는 집이라는 무대에서 한없이 자유로운 예술혼을 펼치며 살아간다.

갤러리나 쇼룸을 떠올리게 하는 3층은 부부의 놀이터나 다름없다. 박공지붕을 선택해 넓은 개방감이 느껴지며 가구들을 벽에 붙이지 않고 자유로이 배치한 점이 재미있다.
입체적으로 동양화를 구현해내는 이정배 작가와 화가이자 홍익대 동양화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이진주 작가는 부부이자 예술적 동지다.
직접 수집한 돌과 나무를 조합해 만든 조명. 망에 담긴 돌이 스탠드 조명의 추 역할을 한다.
나무 조각으로 인천의 해안선을 표현한 작품.

“시각적으로 예민한 예술가들에겐 전형적인 아파트 구조가 어쩌면 고통 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공간이든 물건이든 더없이 편안함과 안락함을 주어야 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동양화를 전공한 이정배, 이진주 작가 부부의 집은 매일같이 살결에 닿고 매만지는 것들을 직접 만든 합동 작품 같았다. “언젠가 집을 지어야겠다고 늘 꿈꿔왔어요. 6년 전, 파주에 421 ㎡의 목조 주택을 지었어요. 우리는 둘 다 지독하게 그림을 그리는 미술가거든요. 작업실에 머무는 시간이 굉장히 길기 때문에 집 안에 작업실이 따로 있어야 했어요. 일과 생활, 혹은 노동과 여가의 구분이 뒤섞여 있는 우리의 생활 특성을 무시할 수 없었어요. 우리에겐 작업 또한 놀이이기에 작업실 딸린 집을 만들기로 했어요.” 부부는 일심동체로 세운 규칙들이 있었다. 커다란 작품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1층은 무조건 작업실이어야 할 것. 그리고 2층은 가족과 함께 향유할 수 있는 넓은 거실이 딸린 생활 공간으로 만들 것. 마지막으로 3층은 오롯이 부부만을 위한 놀이터로 계획했다. “각 층마다 개성이 있었으면 했어요. 주인이 모두 다른 아파트처럼 각 층을 오갈 때 다른 집에 온 것 같은 재미를 줬음 했어요. 어쩔 수 없이 일과 삶이 얽혀 있지만 그 안에서 공간 구분을 확실하게 해줘야 좀 더 효율적이고 분명해질 것 같다고 판단했어요.” 이정배 작가가 말했다.

의자를 제외하곤 모두 이정배 작가가 직접 만든 것이다. 특히 기다란 나무 막대기를 꽂아 만든 책꽂이의 형태가 매우 조형적이다.

부부의 집은 일반적인 집의 모습보다는 갤러리나 작가의 쇼룸 같은 느낌이 강하다. 곳곳에 범상치 않은 가구와 작품들이 놓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문턱이나 몰딩 등 시각적으로 거슬리는 요소가 하나 없는 화이트 큐브 갤러리 같다. 마치 새하얀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넣듯 가구와 소품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갤러리에 익숙한 우리 부부에게 하얀 벽은 아주 일상적인 것이었어요. 벽은 온통 하얗게 칠하고 직접 만든 가구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밝은 나무 바닥을 깔았어요. 덕분에 구조와 조형적인 것들이 더 잘 보이죠.” 이 집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가구들은 모두 동양화를 전공한 이정배 작가가 독학해 직접 만든 것이다. 이진주 작가가 첫아이(지금은 중학생이 되었다)를 임신했을 때, 배가 불러 의자에 앉아 책 읽기가 어려워지자 남편 이정배 작가에게 낮은 테이블과 의자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집 근처 목공소에서 가구 만들기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천부적인 재능이 있을지 몰랐어요. 현대미술을 작업하다 보면 몸에 좋지 않은 물성을 많이 다루게 되잖아요. 가구 공방에선 자연적인 나무의 물성을 만지고 다루어내는 게 좋았나 봐요. 아주 즐거워하더군요. 나무를 만지며 얻는 정서적 안정감 혹은 향이 이정배 작가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이진주 작가는 그때 느낀 설렘을 되새기며 말했다.

섬세한 묘사가 인상적인 이진주 작가의 작품.
인견을 씌운 조명은 달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정배 작가는 가구를 하나의 조각이라 여기며 작업한다. 조형적 아름다움에 한국적 요소를 가미한 예술가적 방식으로 접근한다. 예를 들어 탁자 다리를 동그랗게 마감해 버선을 신긴다든지, 용마루의 양 끝 장식인 치미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대들보, 한복 저고리, 팔각 등 동양적인 곡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또 삼베, 인견, 한지 같은 소재를 즐겨 쓰며 나무와 돌의 궁합도 즐긴다. “동시대 미감으로 옛것을 끌어낸다는 것이 굉장히 힘들어요. 그런 부분을 연구하는 것이 예술인의 숙명이기도 하고요.” 이정배 작가가 만든 가구에서 탁자의 아래나 뒤 부분, 끝선 등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세심히 신경 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의 뻔하지 않은 미감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드러날 수 있도록 노력한 것. “북유럽풍하면 가구나 분위기가 단번에 읽히잖아요. 그런데 과연 외국인이 한국의 집을 방문했을 때 ‘한국적이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 생각해봤어요. 한국 전통의 것들을 계속해서 적용하고 발견하고 싶어요. 기성 제품도 좋지만 우리 생활에 맞춰 공간을 만들어나가면서 우리 부부가 생각하는 성격과 방향을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는 거예요.” 아직 부부 침실의 침대와 화장대도, 3층에 달 조명도 만들지 못했다. 이 집에 산 지 벌써 6년이 지났지만 군데군데 손봐야 할 곳이 남아 있다. 부부는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집이라는 무대 안에서 정성을 다해 진정으로 삶에 필요한 것들을 채워가고 있다.

기하학적인 형태가 돋보이는 이정배 작가의 작품.
아내를 위해 직접 만든 테이블. 이진주 작가는 이 자리에 앉아 책 읽는 시간을 즐긴다.
한지를 덧댄 문과 나무 손잡이 모두 이정배 작가가 직접 만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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