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유전 둘러싼 셈법 복잡…“농지소유, 뚜렷한 규제원칙 필요”

양석훈 기자 2024. 4. 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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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 60년, K-농업을 말하다] 농지 소유 다양한 공론…어떤 목소리 나오나
농지법 손질 ‘규제 완화’ 일변도
기업 아닌 농민 사이서도 찬성
“거래 힘들어 재산권 침해” 이유
주거시설·태양광 설비 설치 등
농업생산 외 타용도 활용 주장
당국이 제도개선 기준 세워야

누더기 ‘농지법’이 위축되는 농업 현실과 맞물리면서 다양한 공론이 농지 위에 벌어진다. 경자유전 원칙을 폐기하고 농지 소유 규제를 풀자는 목소리가 기업은 물론 재산권 침해를 호소하는 농민 사이에서도 나온다. 농지를 농업생산 이외 용도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한데, 최근엔 농업과 농촌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이 덧입혀져 눈에 띈다. 농막 규제를 풀어 농촌을 활성화하자거나 영농형 태양광으로 농가소득을 높이자는 주장이 그렇다. 이처럼 농지 수요가 복잡다단해질수록 농정당국이 분명한 농지 관리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농업계에서 제기된다.

◆흔들리는 경자유전=헌법과 ‘농지법’은 실경작자만 농지를 갖도록 하는 경자유전 원칙을 명시했지만 현실에선 이 원칙이 점점 사문화하고 있다. ‘농지법’이 제정된 후 줄곧 농지 소유 규제를 완화하는 쪽으로만 손질되면서다.

1994년 제정된 ‘농지법’은 농지를 농민만 소유할 수 있도록 규정하면서도 농지 소재지 거주 요건을 폐지해 도시에 사는 사람도 농지를 가질 수 있게 했다. 이농과 상속의 경우 자경을 하지 않아도 1㏊(3000평)까진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했다.

1996년엔 통작거리 제한이 없어졌고, 2003년에는 농업법인과 주말·체험 영농을 목적으로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됐다. 이후 농업을 연구하는 바이오·벤처 기업 연구소와 직업 탐색을 하는 대학생이 농지를 점유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이런 흐름에 한차례 제동이 걸린 적 있는데, 2021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땅 투기 사태 때문이었다. 이때 주말·체험 영농을 목적으로 한 농지 취득이 농업진흥지역에서 제한되고, 농지취득자격증명 심사요건이 엄격해지는 동시에 농지관리위원회가 설치되는 등 사실상 처음으로 농지 취득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농지법’ 개정이 이뤄졌다.

그럼에도 경자유전 원칙이 흐지부지되는 대세적 흐름은 막지 못했고 최근에는 외려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공격을 받는 형국이다. 지난해 경남도의회가 농촌경제 활성화를 위해 농지 소유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건의문을 채택했는가 하면, 경자유전 원칙을 폐기하자는 보고서가 국무조정실에 제출돼 농업계가 술렁인 일도 있었다.

농지 소유 규제를 풀자는 목소리는 개발 진영뿐 아니라 농민 사이에서도 제기된다. 농지는 원칙상 자유로운 거래가 불가한 데다 농업진흥지역에 엄격한 이용 규제까지 더해지면서 지가가 하락, 농민 재산권이 침해된다는 주장이다. 실제 GS&J인스티튜트에 따르면 농업진흥지역 내 농지가격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지정된 관리지역 농지의 25~50% 수준이다. 정부가 이를 감안해 농업진흥지역 내 농지에 대한 공익직불금을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했지만 단가가 관리지역 농지의 1.15∼1.89배 수준에 그친다.

한 농지 전문가는 “농민이 농지를 지킨다는 이유로 일부 재산상 손해를 보는 건 사실”이라면서 “농업진흥지역에 있는 농지에 대한 직불금 단가를 인상하는 등 과거 국채보상운동처럼 농가 손해를 보상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주거·소득 시설로 농지 활용 요구↑=농지를 농업생산에만 이용하지 말고 다양한 활용 가치를 찾자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농막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달라는 요구가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도시민이 농촌으로 유입되도록 촉진하자는 것인데, 농막은 법령상 주거가 불가한 시설로 농막 거주는 농지의 불법 전용에 해당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농촌 체류형 쉼터’를 농지 전용 없이 농지에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을 내놨다. 농막은 농사용 창고라는 목적대로 쓰이게 하되 농촌에 임시로 체류하고자 하는 도시민 수요를 반영해 새로운 제도를 구상해낸 것이다.

농업현장에선 체류형 쉼터보다 더 농업생산과 밀접한 외국인 근로자의 숙소를 농지에 설치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가 나온다. 현재 농지 내 가설건축물을 외국인 근로자 숙소로 활용하려면 지방자치단체의 신고필증이 필요한데, 여러 법이 충돌하면서 농가가 신고필증을 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요구에 관해 농식품부는 농지 위에 외국인 근로자 숙소를 설치할 수 있도록 법에 명시하는 대신 농업인주택을 외국인 근로자 숙소로 활용하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농지를 농가의 부수적 소득 창출에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다. 최근 일각에선 영농형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하기 위한 농지 타 용도 일시사용 기간을 현행 8년보다 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법에선 농업진흥지역 바깥이나 농업보호구역 내 농지에 한해 최장 8년까지만 태양광 설비를 이용할 수 있는데 이 요건 때문에 경제성이 담보되지 않아 실증을 위한 시범사업 정도로만 추진되고 있다.

이처럼 농지 소유와 이용을 두고 다양한 목소리가 맞부딪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농정당국이 뚜렷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농지가 농업에 쓰일 수 있도록 규제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지는 국민 먹거리를 생산하는 터전이지만 국민 이익을 위해 다양하게 활용될 때 그 가치는 더욱 빛날 것”이라면서 “우량농지는 체계적으로 보전하되 그 외에는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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