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의 편에서…‘0.33%’의 변호사들이 바꾼 세상

오연서 기자 2024. 4. 23. 08: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20주년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구성원 12명 전원이 한자리에 모여 사진을 찍고 있다. 공감 제공

2004년 3월,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아름다운재단’의 공익변호사그룹(공감)에서 일하던 염형국 변호사는 장애인 거주시설인 서울 강서구 화곡동 ‘교남 소망의집’(원장 황규인)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시설의 인권규정을 만들려는데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염 변호사는 6개월가량 시설 직원들과 연구 끝에 △감금장치가 있는 시설물 폐지·개선 △장애인 목욕 장면 타인에게 노출 금지 등 조항을 담은 규정을 만들었다. 또 기관장 직속 위원회를 만들어 매년 인권 실태조사를 하고 인권 침해가 발견되면 기관장에게 행정조처를 권고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첫 시설 생활자를 위한 인권 규정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졌고, 2017년에는 장애인 거주시설에 인권 침해 상황을 감독하고 교정하는 ‘인권지킴이단’을 둬야 한다는 장애인복지법 조항이 처음 제정됐다. 지적장애인 72명이 모여 살던 ‘소망의집’에서 시작한 한 공익변호사의 날갯짓이 법 개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제 공감은 장애인 시설 내 인권 개선을 넘어 탈시설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우리나라 첫 공익변호사 사무소인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창립한 지 올해로 20년이 됐다. 2004년 1월 사법연수원 33기 동기인 김영수·소라미·염형국·정정훈 변호사가 초대 멤버로 아름다운재단의 공익변호사그룹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이 첫걸음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공익소송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다. 1987년, 마침내 군부독재는 마무리되었지만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과 국가 권력의 인권 침해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약자 및 소수자의 권익 보호, 국가 권력으로부터 침해된 시민의 권리 구제 등을 통하여 불합리한 사회 제도를 개선하고, 권력의 남용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소송’(2005년 대법원 사법개혁위원회), 즉 ‘공익소송’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20년 동안 공감에서 공익변호사의 길을 걸은 황필규 변호사는 “민주화 운동 시절에는 시국 사건 등 큰 틀의 인권을 대변해왔다면, 지금은 장애·이주민·성소수자 등 구체적인 소수자 인권을 변호하는 영역으로 변호사들의 활동이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 변호사의 말처럼 공감은 더 넓고, 더 전문적인 영역에서 사회적 약자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11년 지적장애인 여성 노숙인 방화사건을 맡은 공감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사법절차에서의 차별금지 조항’을 근거로 형사재판에서 최초로 의사소통 조력인을 법정에 배치했다. 모든 사람에게 보장된 ‘재판받을 권리’를 그동안 장애인들은 제대로 누리지 못해왔음을 사회에 알리고, 고쳤다.

정부의 난민 차별 움직임에 처음 이의를 제기한 것도 공감이었다. 난민 신청 불허에 대한 이의신청 소송 자체가 거의 없던 2006년 공감은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전·현 활동가들을 대신해 난민인정 불허결정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해 승소 판결을 받았다. 한국 변호사가 난민을 대리해 승소한 첫 사건이었다. 공감은 이 밖에도 난민에게 차별적인 각종 제도 시정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23년에는 동성 사실혼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을 위한 행정소송을 진행해 1심을 뒤집고 2심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공익변호사의 규모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는 없다. 다만 사단법인 두루와 법률신문이 공감처럼 공익변호만을 전담으로 하는 재단이나 공익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공익변호사의 수를 세어보니, 지난해 12월 기준 모두 117명이었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전체 변호사 3만4660명 중 0.33% 수준이다.

하지만 공익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많다.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난민들이 대표적이다. 한해 평균 난민 지위 신청자는 1만1천명이 넘지만 난민 인정률은 1∼2%에 그친다.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난민 신청자들이 소송을 통해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공익변호사의 도움이 절실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익변호사들은 지난 20년 동안 영역을 조금씩 확장해왔다. 2004년 공익변호재단은 ‘공감’ 하나였지만 지금은 ‘공익법센터 어필’(난민),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기후솔루션’, ‘법조공익모임 나우, ‘오픈넷’(정보인권),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 동행’, ‘장애인권법센터’ 등 그 수가 늘고 분야도 다양해졌다. 변호사 4명으로 시작한 공감 역시 현재 변호사 9명과 간사 3명으로 규모가 늘었다.

대형 로펌도 공익변호 전담 법인을 만들고 있다. 2009년 법무법인 태평양이 재단법인 동천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김앤장의 사회공원위원회, 율촌의 사단법인 온율, 세종의 사단법인 나눔과이음, 광장의 공익활동위원회 등이 생겨났다.

공익변호사들은 여전히 현장에서 마주하는 장벽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대표적인 어려움이 민사소송 등 재판에서 질 경우 상대방의 소송 비용을 진 쪽이 부담하는 규정이다. 이런 규정이 공익을 위한 소송에도 적용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공감의 김지림 변호사는 “우리나라에 공익변호사단체 수가 적고, 로펌에 비해 낮은 보수 때문에 공익변호사라는 직업에 진입장벽이 있다”며 “우리 사회 인권 향상을 위한 시민들의 의지가 모여 공익변호사가 지속가능한 직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창립 20주년을 맞은 공감은 ‘법의 날’인 4월25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동문회관에서 2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지난해 2월21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 앞에서 동성 부부인 소성욱씨와 김용민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달라며 낸 행정소송 항소심에서 승리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