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들의 피츠로이 등반] 바람의 장벽에서 2주…그 감옥에 또 갇히고 싶다

이형윤 부산빅월클럽 회장 2024. 4. 23.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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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빅월클럽 회원들이 지난 1월 남미 파타고니아 피츠로이 프랑코-아르젠틴 루트 등반을 마치고 돌아왔다. 본지 주민욱 사진기자가 원정대원으로 참여했다. 이들의 원정기를 싣는다.

페라돈 델로스 콘도레스peradondeloscondores의 로 데자모스 아이Lo dejamos ahi 루트(6a, 4피치 150m) 꼭대기에 선 이형윤. 그 앞으로 엘찰텐 마을이 펼쳐져 있다. 멀리 보이는 산군은 피츠로이다.

히말라야의 남체바자르, 알프스의 샤모니, 그리고 파타고니아의 엘찰텐!!! 모두 세계 트레킹 마니아의 성지인 동시에 등반가들의 베이스캠프 같은 마을들이다. 나는 이곳들 모두에 다녀왔다. 운 좋은 사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파타고니아 원정에서 본 엘찰텐이라는 마을은 남체와 샤모니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남체보다는 편리한 일상(그렇다고 도시에 비할바는 못 됨)을 보낼 수 있고, 샤모니보다는 인공구조물이 덜하다. 자연친화적인 관광마을이라고 할까? 칼라파테에서 220km 떨어진 이 황량하고 작은 마을은 오직 피츠로이와 세로토레를 등반하고, 주변을 걷기 위해서 만들어진 마을 같았다.

엘찰텐의 단독주택 같은 숙소에서 파타고니아 여정을 이어갔다.

터미널, 카페, 숙소, 도로 등이 잘되어 있고 대형견들의 천국이었다. 도로와 골목에서 돌아다니는 개들이 사람을 무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정도로 마을 분위기는 여유로웠다. 12월부터 3월까지가 이 마을 성수기다. 따라서 우리가 찾은 날 마을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숙소를 잡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40번국도 Ruta40, 하지만 피츠로이산군 방향에서 불어오는 강력한 바람은 그 아름다움을 잊게 했다

우리는 마을에 도착해 처음 3일간 5명이 다인 도미토리에서 생활했다. 불편한 게 많았다. 그래서 피츠로이 등반을 다녀온 다음, 숙소 담당자와 조율했다. 담당자는 직원들 숙소를 우리에게 내주었다. 욕실과 주방, 침실이 함께 있었고 출입구가 별도로 있었다. 단독주택처럼 생긴, 우리에겐 아주 좋은 아지트였다. 등반실패의 아쉬움 속에서도 편안한 숙소에서 몸과 맘을 추슬렀다.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기에 안성맞춤인 마을과 숙소였다!

페라돈 델로스 콘도르 벽에 가려면 엘찰텐 마을에서 이 다리를 반드시 지나가야 한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 등반이 안 되는 상황과 마주하면 과감하게 등반을 접고 휴양이라도 잘하고 오자고 계획했다. 날씨 때문에 산에 올라가지 못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40번국도Ruta40로 눈길을 돌렸다. 자전거를 빌려 하이킹을 가기로 했다. 이날도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게 아니라 오토바이를 타고 하이킹을 하는 것 같았다.

페라돈 델로스 콘도르 벽 위에 올라가면 멋진 초원이 펼쳐진다. 이 길과 연결된 트레킹 루트도 있다.

바람, 바람, 지긋지긋한 바람!

원정기간 내내 우리는 우리 인생에 다시는 오지 않을 한량 생활을 누렸다. 모두가 바람 덕분(?)이었다. 숙소에서 기다리는 일이 지겨워지면 세로토레 마에스트리전망대까지 왕복 20km를 걸어 '똥바람'을 맞으러 갔다 오기도 했다.

세로토레 등반을 하려면 반드시 이 강을 건너야 한다.

피츠로이 등산로 입구는 메인 스트리트에 있고 세로토레 등산로 입구는 그보더 더 뒤쪽, 위편에 있다. 메인 스트리트가 외지인들 위주의 관광지라면 윗동네는 현지인이 주거하는 빈촌 느낌이다. 하지만 여기도 세로토레 입구여서 작은 술집들이 몇 개 있었는데 나의 개인 취향에 따르면 메인 스트리트보다 더 정감이 갔다.

페라돈 델로스 콘도르 벽 로 데자모스 아이 루트 마지막 4피치 구간.

바람의 신은 우리의 남은 일정 내내 바람을 불어댔다. (어쩜 저리 지치지 않을까?) 우리는 결국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표현대로 동네 '잡바위'를 등반하기로 했다. 우리는 잡바위 앞에 도착했다. 높이가 150m나 됐다. 규모가 상당했지만 이곳 파타고니아에서 잡바위 취급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 등반가와 루트가 겹쳤다. 등반 내내 그들과 마주치면 서로 서툰 영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들은 한국과 등반에 엄청난 호기심을 보였다.

이 벽은 페라돈 델로스 콘도레스peradon de los condores라고 불린다. 로 데자모스 아이Lo dejamos ahi 루트(6a, 4피치 150m)를 등반했다. 인기 있는 루트인지 앞뒤로 많은 팀이 있었다. 우리와 같이 바람의 피해자인 우석주, 이지은씨와 엘찰텐을 떠나기 전에 같이 줄을 묶었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달랬다고 해야 하나? 이곳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좋았다. 큰 위안이 됐다.

4피치 출발점, 우석주·이지은 등반가 부부를 파타고니아에서 만났다. 그들과 식구처럼 보냈다. 이 부부의 등반 열정은 최고였다.
파타고니아에서 각자 인생 최고의 추억을 만들었다.
등반을 마치고 야외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 이곳은 소고기와 와인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우리는 등반을 일찍 마치고 숙소에서 마지막 밤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 이곳의 '아사도' 바비큐 맛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등반 전 루트파인딩을 하는 김건씨와 이상용씨.

나에게 엘찰텐은 아쉬움과 미련과 아름다움이 뒤범벅된 곳인 동시에 감옥 같은 마을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또 그곳에 갇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다시 오리라!' 다짐만 더욱 견고해졌다.

트레킹을 마치고 선술집에서 맥주 한 잔, 곳곳에 축구선수 메시의 사진이 붙어 있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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