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IT구루]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이타심으로 생태계와 함께 한다”

문보경 2024. 4. 23.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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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회장의 40여년 업력을 표현하는 단어는 '이타심'이다. 벤처·소프트웨어(SW)산업을 먼저 일궈낸 그에게 국내 1호 타이틀은 차고 넘친다. 대학생 창업 1호, SW업체 설립 1호, 테헤란밸리 원조 등 처음 개척해 얻은 열매를 조 회장은 생태계에서 같이 나누고자 했다. 비트교육센터를 설립해 최고 실력을 갖춘 IT인재를 양성해 왔으며 사재를 털어 장학재단도 세워 미래 인재들을 키워냈다. 최근들어 조 회장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조현정재단 장학생들의 성장과 성공이다. 장학생 중에는 장성해 회사를 창업하고 매출 2000억원 대의 기업으로 키워낸 벤처기업인도 있다. IT 정책 관련 쓴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이 모든 역할을 아우르는 '대한민국IT구루'의 1호 타이틀도 자연스럽게 조 회장에게 돌아갔다. 구루(GURU, 대가)는 한 분야의 권위자이면서 후배들에게는 스승이 되는 대가(大家)를 뜻한다. 조 회장은 창업 30년이 지난 시점부터는 소프트웨어 SW구루가 되고 싶다고 밝혀오기도 했다.

40여년의 그의 업적과 구루(대가)로서 역할에 대한 의견을 인터뷰에 담았다.

17일 서울 우면동 전자신문 본사에서 대한민국 IT구루로 선정된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이 본지 문보경 부장과 인터뷰

-창업을 하고 40여년동안 생태계를 키우며 사업을 해 오셨다. 그러면서 SW구루가 되고 싶다는 뜻을 자주 보이셨다. 대한민국 첫 IT구루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신가?

▲구루라는게 외래어이기도 하지만, 선생님이나 훈장은 가르치는 정도의 단어라 대체하기가 어렵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야할 방향을 제안해주고 동기 부여도 해 주고 잘못이 있으면 야단도 칠 수도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따르는 사람이 많으려면 업을 오래 했어야 되고 또 실적이 있어야 되고 평판도 좋아야 되고 평소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 왔던 것이 다 망라된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사람을 선정해 기회가 될 때 무대를 만들어주면 평소 자기 소신에 맞게 싫은 소리도 하고 이끌어주기도 하고 할 것이다. 그 숫자가 산업별로 수백명은 있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구루로서 역할을 해주는 사람들이 많을 수록 산업이 단단해지고 잘못가는 길이 작아지고 할 것이다.

2005년일이다.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시장을 막 열어 가는데 비트의 계열사를 포함해 메이저 3개 회사가 다 적자였다. 이들을 설득해 한 데 모으고 조금씩 희생해서 합병까지 추진한 일이 있었다. 지금은 이제 잘 나가는 회사다. 당시에 조정 역할을 했던 것이 딱 구루가 할 일이다. 각자 희생이 크지만 이걸 모으자라고 제안을 했을때 누군가는 그 말을 들어줘야 의미가 있는 결과가 있다.

- 40년 사사를 담은 화보집의 제목도 '이타심으로 생태계와 함께 한 비트컴퓨터 40년'이다. 생태계를 함께 생각하는 것이 경영 철학이 된 배경은 무엇인가?

▲아버지는 고향에서 학교를 세워 기부하셨을 정도로 어찌 보면 지역사회에서 구루 같은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가 여섯살에 돌아가시고, 이후 집안이 몰락해 나는 중학교 졸업조차 하지 못했다. 사춘기 때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존경이 함께 있었다. 학교 세울 돈을 우리에게 줬으면 이런 고생은 안했을텐데 하는 원망도 있었지만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컸다. 사실 생태계, 지역사회공헌 이런 것들이 망라되어 있는 집안이었다. 얼마 전에 그 학교에서 아버지를 기리는 공적비도 세워주셨다. 인재양성에 뜻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의 선한 뜻이 DNA에 있었던 거라 생각한다. 이스라엘이나 인도 구루를 봐도 모두 검소한데, 나도 그래야 된다고 보고 실천하려고 한다.

-사재 20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장학재단의 성과가 놀랍다.

▲형편은 어렵지만 성적이 우수한 고교 2학년을 선발해 대학교 2학년까지 4년동안 1인당 총 1300만원씩을 준다. 조장생(조현정재단 장학생) 중 서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도 나왔다. 지난 해 5월 대통령실 주최 기업인 행사에서 대통령 옆에 앉았던 MZ 사장이 우리 장학생이다. 형편 때문에 공부를 포기할 뻔 했던 학생들이 꿈을 이뤄가고 있다. 성공한 장학생들은 또 학생들의 멘토가 되고 본보기가 된다. 창업, 의사, 판검사, 공학 기술계, 금융감독원 이런 곳에도 있고. 무엇보다 숫자가 계속 업그레이드 된다. 그래서 너무나 고맙다.

또 노력했던 것 중에 하나는 군대를 '끌려가는 곳'이 아니라 국가인재양성소로 만들어 보고자 했다. 공군·해군·육군 참모총장 찾아다니면서 설득했지만 잘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들들은 군에 가서 교육받고 오도록 했다. 시력 때문에 4급을 받안 아들은 눈에 인공렌즈까지 넣어 정상시력 만들어 입대하기도 했다. 9시 뉴스에도 나올 정도로 화제가 됐다.

17일 서울 우면동 전자신문 본사에서 대한민국 IT구루로 선정된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이 본지 문보경 부장과 인터뷰

-IT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센터에 대한 계획은?

▲비트교육센터는 SW업계가 절실히 원하는 고급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1990년 설립한 곳이다. C를 대중화하겠다고 한대당 600만~700만원하는 워크스테이션을 들여놨다. PC는 100만원이면 되는데 PC에서는 C가 제대로 안돌아갔다. 제대로 교육시킨다고 비싼 장비를 사 놓은 것이다. 지금이야 C가 대중화됐지만 당시에는 95% 개발자가 코볼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이름도 C교육센터였다. 전국 C 개발자가 100명이 안되던 시절이다. 이런 것이 구루가 할 일이다. 우리 돈 들여서 하이엔드 개발자를 양성하겠다고 하고 경쟁률이 높은데도 아무나 뽑지 않았다. 소수 정예로 했다. 1990년부터 지금까지, 얼마 전 입단식을 한 신입생까지 합치면 9150명을 선발해 교육했다. 2000년 비트 10주년 행사를 했는데, 1400명이 모였다. 그 당시 비트 출신이 3900명일 때다. SKY 대학들 동문이 수십만명인데 연말 총동창회하면 한 800명 모인다고 하더라. 비트는 동문이 3900명인데 동문회를 하니 1400명이 모인 거다. 당시 아셈 회의를 위해 만든 코엑스 그랜드 볼룸을 처음으로 사용한 곳이 비트였다. 그만큼 교육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곳이었다고 생각한다. 교육생들의 수준은 기업에서 인정한다. 입사 후 몇년 배운 직원보다 수준이 높다고 한다.

그렇게 하이엔드 교육생만 키우니 인력 양성이 소수에 한정되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불특정 다수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 소스코드를 공개해 책으로 출판했다. 지금이야 인터넷 오픈소스가 많지만, 오픈소스가 활발해진 것은 15~20년에 불과하다. 우리는 1992년부터 책을 출판했다. 얼마 전에 국내 굴지 기업의 AI연구원장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 책으로 공부했다고 고맙다는 이야기를 두번씩이나 했다.

여전히 하이엔드 IT개발자에 대한 수요가 높다. 요즘 대학에서 강의를 해달라고 해서 가면 재미가 없다. 열정을 갖고 듣지도 않고 출석 체크 때문에 앉아있는 경우도 많다. 소수를 선택해 집중하고자 한다. 구루도 필요하지만, 구루가 이끄는 것을 받아들여주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기술 창업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자주 하신다. 기술 창업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도전을 독려하면서 하는 이야기가 '실패도 자산'이다. 하지만 모든 실패가 자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 워낙 많아서 아이디어만 가지고도 쉽게 창업을 할 수 있다. 아이디어만으로 하는 창업은 다른 아이디어에 의해 쉽게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기술 창업은 중도에 포기를 하거나,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도 오래 남는다. 한번에 반짝하는 것보다 오래 가는 사업을 하라는 이야기다. 기술 창업을 하면,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이 남을 수도 있고, 기술을 매각할 수도 있다. 그것이 또 생태계에 기여하는 바도 크다. 정책도 기술 창업을 지원하고 독려하는 방향으로 가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IT구루 선정 인증패 전달식이 17일 서울 우면동 전자신문 본사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강병준 전자신문 대표,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김동욱기자 gphoto@etnews.com

◇조현정 비트 컴퓨터 회장은...

벤처 1호 창업가다. 대학생 1호 창업가이기도 하다. 대학교 2학년이던 1982년 국내 최초의 패키지 SW인 '의료보험청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그 이듬해인 1983년 자본금 450만원으로 '비트컴퓨터'를 창업했다.

이후 40년동안 의료정보 분야 발전에 기여했다. 비트컴퓨터는 의원용 전자의무기록(EMR), 처방전달시스템(OCS), PACS, 병원용 EMR 등을 개발하며 이 분야 시장을 개척해 왔다.

벤처 1호 창업가로서 생태계를 꾸리는 역할을 잊지 않았다. 교육센터를 통해 고급 인력을 양성해 왔으며,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와 한국벤처기업협회 등의 설립도 주도했다. 현재 판교테크노밸리 역시 조 회장을 비롯한 한국벤처기업협회 회장단의 제안이 단초가 됐다. 당시 협회는 경기도지사를 찾아가 판교에 벤처단지 100만평을 요청했으며, 부처와 정치권의 이견으로 성사되지 않았지만 지속적인 활동으로 판교테크노밸리가 조성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런 공로로 2019년 SW분야에서는 처음으로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2000년 벤처유공자로 동탑산업훈장을, 2010년 소프트웨어 유공자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아 금은동 훈장을 모두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대한민국IT구루선정위원회는 △해당분야에서 수십년동안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산업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점 △ 국가 산업발전과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점 △대가로서 존중받아 마땅한 점 △향후 최소 5년 이상 해당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이 기대되는 점 등을 종합해 조현정 회장을 IT구루로 선정했다.

문보경 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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