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나고 구멍 나서 아름다운 식물처럼 [기자의 추천 책]

문상현 기자 2024. 4. 23.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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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건을 취재하다가 우연히 접한 일이었다.

아동학대 혐의로 부부가 경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저자가 아동학대 혐의로 재판을 받는 부부를 변호할 때의 일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누구나 각자 자리에서 할 수 있을 법한 일, 그걸 하지 못해 남을 법한 후회들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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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변호인이 만난 사람들〉
몬스테라 지음
샘터 펴냄

다른 사건을 취재하다가 우연히 접한 일이었다. 아동학대 혐의로 부부가 경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그들은 밥 먹듯이 가출하는 중학생 딸과 다투다 생긴 일이라고 했다. 오히려 딸이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는 탓에 다친 적도 있다고 했다. 속상하고 서럽다고 했다.

아이의 눈은 날카롭고 말은 거칠었다. 한여름인데도 긴팔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소매를 계속 당겨 내렸다. 소매를 걷어볼 수 있냐고 물었다. 머뭇거리다 보여준 손목에는 길게 그어진 흉터가 가득했다.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무섭고 아프다고 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부부는 처벌을 받았다. 아이 소식은 알 수 없었다.

비슷한 이야기가 책에 있었다. 저자가 아동학대 혐의로 재판을 받는 부부를 변호할 때의 일이었다. 부부는 문제 많은 자녀들이, 아동학대로 신고하면 부모와 분리되는 걸 악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셋째 딸은 학대가 없었다는 걸 증언해줄 거라며 증인으로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법정에 나온 17세 셋째 딸은 손목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재판을 마치고 부모가 잠시 화장실에 간 틈에 저자는 아이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자해하지 마. 성인 되려면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무슨 뜻인지 알지?”

뒷이야기는 책에 적혀 있다. 그때 저자가 했던 말과 생각, 그다음의 일을 읽으면서 과거 손목을 보여주며 큰 소리로 울던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책을 읽다 보면 누구나 각자 자리에서 할 수 있을 법한 일, 그걸 하지 못해 남을 법한 후회들이 그려진다. 저자는 사건을 골라 맡을 수 없는 국선전담변호사다. 8년간 기록한 그의 변론기에는 모순과 이해, 희망과 후회로 가득한 삶과 사람이 있다. 잎이 어긋나고 구멍이 났기 때문에 아름다운 식물 ‘몬스테라’는 저자의 필명이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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