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다리 5분의 골든타임..'자살'을 '살자'로 뒤집는 이들은?

이창명 기자 2024. 4. 23.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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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소방서장]①권태미 서울 용산소방서장
[편집자주] 119안전센터 신고접수부터 화재진압과 수난구조, 응급이송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이 위기에 처한 현장엔 언제나 가장 먼저 달려온 소방대원들을 볼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이들을 진두지휘하는 리더가 소방서장들이다. 그런 만큼 소방서장들이 그간 축적해온 경험과 경륜은 국민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소중한 자산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역 곳곳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24시간 출동준비에 여념이 없는 소방서장들을 만나봤다.

권태미 용산소방서장의 현장 지휘 모습/사진제공=용산소방서

'1만3770명'.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의 숫자다. 단언컨데 용산소방서가 없었다면 이는 훨씬 더 많아졌을지 모른다. 용산소방서 대원들이 관할 5개 한강다리(한강대교·원효대교·동작대교·반포대교·한남대교)에서 벌어진 투신 소동이나 의심 행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건수를 보면 놀라울 정도다. 2022년 439건, 지난해 215건에 이어 올해도 지난달까지 석달간 92건에 달한다.

모두 자살 시도자들이거나 의심되는 경우다. 거의 매일 이런 신고가 1건 이상 들어오는 셈이다. 통상 신고를 받고 5분 안에 출동해야 투신 직전에 구조할 수 있다. 그래서 신고가 들어오면 필사적으로 달려나가고, 구조 보트를 띄운다. 이렇게 안간힘을 쓰고도 구해내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나온다. 2022년 4명, 2023년 7명이 관할 내에서 투신해 숨졌다. 그때마다 대원들의 마음은 무거워진다.

"어느 날 후배대원이 같은 사람을 세 번째 봤다고 하더라고요. 두 번째 구하고 세 번째 봤을 땐 숨져 있었는데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건가'란 생각이 들더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고가 오면 끈질기게 구해내는게 우리의 숙명인 것 같아요."

지난 17일 용산소방서에서 만난 권태미 용산소방서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날 오전에도 한강대교에 올라 소동을 벌인 50대 남성이 체포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용산소방서 구조대원들이 한시라도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는 이유다. 그럴 때마다 권 서장은 후배들에게 "모든 구조자가 우리 가족일 수 있다고 생각해달라"고 강조한다.

그에겐 잊지 못할 사연이 있다. 현장 구급업무를 맡던 당시 7살인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을 뻔했다. 하늘에 모든 걸 맡기고 있었지만 동료 구조대원들의 신속한 응급처치 덕분에 아들을 살려낼 수 있었다. 이때부터 권 서장은 "내가 구하는 사람이 결국 내 가족"이란 다짐을 마음에 새겨뒀다.

이후에도 격무로 유명한 자리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실제로 권 서장은 24시간 현장출동이 잦아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만 근무하는 서울소방재난본부 현장대응단에 2년이나 몸을 담았다. 누구보다 현장 대원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는 권 서장은 그간 업무 현장 개선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고 동료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왔다. 응급환자 소생율을 높이는 구급품질관리체계 운영을 최초로 추진하거나, 구조헬기 조종사들이 원했지만 아직도 국내에 딱 1대 있는 'AW-189헬기' 도입도 그가 고집을 꺾지 않은 덕분에 가능했다.

권태미 용산소방서장/사진제공=용산소방서

올해 26년차 베테랑인 권 서장도 최근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현장 상황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피해 상황도 달라지고 있어서다. 그는 "가령 2018년 11월 KT 아현지사 화재 사건은 인상적"이라면서 "인명피해가 있었던 사건은 아니지만 화재로 인해 국가의 정보망이 무력화된 현장을 앞에서 지켜봤다"고 말했다. 당시 화재로 인해 휴대폰과 카드결제가 마비되면서 시민들이 큰 혼란을 겪었다.

매년 잦아진 기록적 폭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2022년 폭우로 서울 반지하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속수무책으로 숨진 경우는 산전수전 다 겪은 저도 처음 봤다"며 "현장 변수가 많은 수난구조가 가장 어렵기 때문에 앞으로도 폭우엔 예측범위를 넘어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권 서장은 "대원들의 팀워크가 재난현장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확신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AI)이나 로봇의 시대가 온다고 하지만 소방현장에 적용되기까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한 뒤 "결국 현장대원들이 팀워크를 높이기 위한 꾸준한 훈련를 비롯해 팀원간 서로 믿을 수 있는 체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기를 수밖에 없다"며 "현장에서 함께 있는 최후까지 이런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약속했다.

이창명 기자 charmi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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