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위기설, 세심한 경계심이 필요하다

이학렬 금융부장 2024. 4. 23.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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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중 한때 1400원을 넘은 원/달러 환율 / 사진=뉴스1

인앤아웃 버거는 LA(로스앤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서부 여행의 필수 코스로 꼽힌다. 미국 동부엔 영업점이 없어 서부 여행에서만 맛볼 수 있다. 우리 입맛에 맞을 뿐만 아니라 저렴하다. 하지만 '가성비갑'인 인앤아웃 버거도 인플레이션을 이길 순 없었다. 2021년 인앤아웃의 대표버거인 '더블더블'은 4.95달러였으나 지금은 10% 이상 오른 5.85달러라고 한다. 버거뿐이겠는가.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이 지난 16일(현지시각) "미국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의 목표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했다"라고 말한 건 자신도 물가 상승을 느끼고 있어서다. 물가가 잡히질 않으니 금리 인하도 늦어지고 있다. 파월 의장은 "조만간 금리 인하가 이뤄질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고 했다.

그래도 미국은 경제 상황이 좋다. 같은날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1월 전망치)에서 2.7%로 대폭 상향했다. 미국 경제를 반영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3.1%에서 3.2%로 높였다.

반면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는 2.3%로 유지했다. 세계경제 성장률을 높인만큼 사실상 한국 경제를 그렇게 좋게 보진 않는 셈이다. 경제 규모가 우리나라보다 10배가 넘는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더 높게 성장하지만, 인플레이션은 미국과 비교해 절대 낮지 않다.

통계청이 발표한 3월 물가상승률은 3.1%다. 숫자가 높을 뿐만 아니라 체감은 더 심하다. '금사과' 대신 다른 과일을 봐도 비싸긴 마찬가지다. "점심값이 너무 비싸다"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다. 도시락을 싸오고 투잡을 뛰는 직장인들도 흔하다. 최근엔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찍으면서 물가 상승 압력은 더욱 거셀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금리 인하에 주저하니 한국은행이 먼저 금리를 낮추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시중금리는 되레 오르고 있다. 3년물 국고채 금리는 지난해말 3.145%(5개 평가사 평균)였으나 지난 19일 3.477%까지 올랐다.

고금리가 유지되면서 대형 은행은 표정 관리 중이다. 금리가 높으면 은행 요구불예금 잔액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요구불예금이 많으면 은행 입장에서 비용인 이자비용이 줄어들어 이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보험사도 금리가 높으면 좋을 수밖에 없다.

반면 2금융권 등 중소형 금융사는 서민들이 고금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듯이 고금리에 시름시름 앓고 있다. 고금리 예금으로 돈을 끌어모으는 저축은행이나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여신전문회사는 어려움을 호소한다. 우는소리를 하는가 아니냐는 생각도 들지만 어려움이 눈에 보인다.

실제로 일부 저축은행은 지난해에 이어 1분기에도 적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고유 업무인 대출을 중단하기도 했다. 2022년과 지난해 대규모 증자에 나선 저축은행도 적지 않다. 그나마 증자할 수 있는 든든한 대주주를 둔 저축은행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증자에 나서지 못하는 체력이 좋지 않은 저축은행들이 위기의 발원지가 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금융권 고위 인사의 "위기때 증자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라는 말이 사실이어서 무섭다.

총선이 끝났으니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구조조정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공사가 멈춘 곳을 다시 돌려야 경제에도 활력이 돈다. 하지만 구조조정 과정에서 돈을 떼일 수 밖에 없는 기존 금융사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위기설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정부 얘기대로 위기설이 '설'에 그칠 수 있다. 과장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경계심을 늦추면 진짜 '위기'가 올 수 있다. 위기에서 고통받는 건 돈 없는 서민이다. 물가가 오르고 환율이 올라 힘든 이들도 서민이다. 서민들의 마지막 '돈줄'이 될 저축은행, 여전사 등까지 어려워지면 서민들의 고통은 배가 될 수 있다. 서민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세심하고 꼼꼼한 경계심이 필요하다.

이학렬 금융부장 tootsi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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