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멸종 위기에 처한 남자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2024. 4. 2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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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남편들, 집 밖에도 집 안에도 일이 없어… ‘끝난 사람’이 된 느낌
TV에서 남편이 지은 밥 맛본 아내들 눈물 흘려… 아내들의 세월이 읽혀
부엌에 들어가 밥하는 건 혼자서도 건강하게 사는 능력 갖추는 것
일러스트=이철원

요리를 쉽게 잘하는 연예인이 평범한 남편들에게 밥과 찌개 끓이는 법을 가르치는 TV 프로그램을 뒤늦게 봤다. 아내와 함께 출연한 남편들은 61세에서 70세까지 다양했는데 평생 가족을 위해 요리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이유는 이랬다. “할 줄 알아야 하죠.”

그들 인생은 할 줄 모르던 일을 잘할 수 있게끔 애쓴 세월이었을 것이다. 잘하는 일이 많다는 것은 유능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음식만은 잘하려 하지 않고 아내에게 도맡겼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가계(家計)가 돌아갔다.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이들은 이제 평생 잘해온 일을 발휘할 기회가 없다. 집안일이라도 해야겠는데 손이 둔하고 투박해 잘되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하는 데 서툰 가장의 모습을 아내와 자식에게 보여줄 수는 없다. 자연히 싱크대와 세탁기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은퇴한 남편들은 집 밖에도 일이 없고 집 안에도 일이 없다. 무용(無用)한 사람이 된 느낌이다. 남은 일은 숨거나(隱) 물러나는(退) 것뿐이다. 은퇴한 남자 얘기를 다룬 일본 소설 제목처럼 ‘끝난 사람(終わった人)’이 된 것 같다. “할 줄 알아야 하죠”라는 말은 끝난 사람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몇 년 전 은퇴한 선배 K는 멋진 사람이었다. 셔츠 깃은 늘 황새 부리처럼 빳빳했고 바지 주름은 산맥처럼 솟아있었다. 은퇴 후 아내가 친구들과 여행 간 사이 찌개라도 끓여볼까 하고 난생 처음 채소를 썰다가 손가락을 썰었다. 그는 말했다. “피가 철철 나는 손가락에 휴지를 둘둘 말아 병원으로 달려가면서 다시는 부엌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아내 없는 그는 더 이상 멋지지 않았다.

‘부엌에 들어간다’는 말은 부엌을 별개의 공간에 뒀던 한옥 시대 사고방식이다. 아궁이가 있던 부엌은 집의 다른 곳보다 낮았고 신발 신은 채 들어가는 곳이었다. 그 시절 남편들은 부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짐작만 했지 알지 못했다. 남편들은 논밭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지붕을 고치고 외양간의 소를 살피고 새끼줄을 꼬았다.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얹을 나름의 명분이 있었다.

아파트 부엌은 거실과 이어져 있어 들고 나는 공간이 아니다. 남편들은 퇴근해서 집에 와도 딱히 고치거나 손볼 일이 없다. 기껏해야 껌뻑이는 전구를 갈아 끼우거나 TV가 먹통 되면 셋톱박스 전원을 껐다 켜는 정도의 노동을 한다. 아내가 부엌일로 바쁠 때 소파에 누워 TV 보는 남편들 심사가 편할 리 없다. 그러나 이런 남편들에게 부엌은 여전히 ‘들어가는’ 공간이고 (돌아가신 어머니 당부대로)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다.

TV에서 남편이 지은 밥과 된장찌개를 맛본 아내들은 눈물을 흘렸다. 너무 맛있어서 감격스럽다고 했다. 도구와 재료 다 준비해 놓은 스튜디오에서 시키는 대로 만든 음식인데도 그랬다. 그 눈물에서 아내들의 세월이 읽혔다. 감격의 눈물만이 아니었다. 설움과 원망을 견딘 시간이 뒤섞인, 아주 복잡미묘한 감정이 체액의 형태로 흘러나온 것 같았다.

아침밥에 국이 없으면 안 되는 남편 때문에 아내는 새벽마다 황태를 다듬었다. 부부 싸움을 한 뒤에도 아내는 시금치를 데쳤다. 그러면서 혼잣말을 했을 것이다. 저 인간 내가 죽으면 필경 굶어 죽을 거야. TV에 나온 아내들 중 한 명은 남편의 음식을 맛본 뒤 말했다. “이제 아파서 드러누워도 될 것 같아요. 마음 놓고 놀러 다녀도 될 것 같아요.” 남편이 밥과 찌개만 끓일 줄 알아도 아내는 마음이 놓인다.

다들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는 것을 말하면서 밥을 누가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노인도 스마트폰을 쓸 줄 알아야 한다고 목청 높이지만 밥할 줄 알아야 한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밥을 한다는 것은 쌀을 끓여 먹을 수 있게끔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운전하고 산책하고 신문 읽는 것처럼 밥과 빨래와 청소를 할 줄 알아야 은퇴 후에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남편들은 “그러니까 내가 먼저 죽어야지” 같은 말을 농담이랍시고 하는데, 먼저 죽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어떤 이는 “사 먹으면 된다”고 말하지만 사 먹는 일의 즐거움만 알고 추레함을 모른다.

독립에 익숙하고 평등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는 걱정할 일 없다. 그들은 오래도록 건강할 것이다. 중년 이후 남편들 가운데 여전히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 남자들이 문제다. 다른 이들도 모두 자신 같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고립되는 중이다. 논밭도 없고 꼴 먹일 소도 없는 아파트에서 이들은 고스란히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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