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없던 70~80년대 학생들의 지식 창고… 전 30권짜리 ‘세계대백과사전’

채민기 기자 2024. 4. 2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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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대사 보물] 경기 고양시 독자 박재은씨의 보물
/박재은씨 제공

‘르네상스 3대 거장의 이름을 쓰시오.’

경기 고양시 독자 박재은(44)씨가 중학교 3학년 때 치른 미술 시험의 주관식 문제였다. 라파엘로, 미켈란젤로까지 쓴 뒤에 답안지 공간이 부족해 다빈치라고 적었다. 100점을 자신했지만 선생님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적지 않았다며 97점을 줬다. 박씨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을 미리 다 알았을 정도로 미술을 좋아했기 때문에 눈물이 날 만큼 억울했다”고 했다.

박씨의 미술 지식은 백과사전에서 얻은 것이었다. 집에 있던 동아세계대백과사전에서 유명 작가들과 작품을 찾아보며 달달 외다시피 했다고 한다. 백과사전을 지식의 보고 삼아 책장에 꽂아 놓던 시절이다. 19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박씨는 “모르는 것이 있을 때마다 뒤적거렸기 때문에 큰돈을 주고 전집을 구입한 어머니도 후회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지금도 미술 월간지와 함께 책장에 보관 중인 보물이다. 그는 “책장에 차곡차곡 꽂아 넣으니 저축이라도 한 것처럼 든든한 느낌”이라고 했다.

동아세계대백과사전은 참고서 시장의 강자였던 동아출판사가 1984년 130억원을 들여 총 30권으로 발간했다. 총 1만9200쪽. 19만 항목 중에서 7만 건을 국학 관련 내용으로 채워 ‘우리 백과사전’을 표방했다. 후에 두 차례 보유편(빠진 것을 채워 넣은 책)을 내서 총 32권이 됐다. 완간을 앞둔 1983년 출판사는 선착순 예약자 3만 명에게 ‘특별 봉사가(價)’ 60만원에 판매한다는 광고를 냈다. 그해 말 봉급 생활자 79%가 월평균 30만원 이하의 급여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기사가 실렸으니 웬만한 직장인 두 달치 월급을 넘는 가격이었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까지 학원세계대백과사전(학원출판공사) 등과 함께 지식의 보고 역할을 했다. 그러나 판매가 기대보다 부진해 출판사가 경영난에 빠졌고, 창업자 김상문 회장은 동아출판사를 1985년 두산그룹에 매각했다. 동아출판사는 사명을 두산동아로 바꾼 1996년 ‘두산세계대백과사전’을 출간했다. 개정판을 내기 쉬운 CD 형태의 백과사전을 함께 내고 1999년에는 인터넷 백과사전도 선보였다. 지식의 저장·전파 수단이 점차 컴퓨터로 옮겨가던 ‘정보화’의 흐름을 보여준다.

2000년대 이후 포털 사이트가 등장하면서 책이나 CD 같은 매체 없이도 정보가 유통되는 시대가 열렸다. 최근에는 유튜브 등이 검색 엔진의 역할도 겸하게 되면서 지식이 문자뿐 아니라 영상 등의 형태로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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