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영·이무생·이청아의 미친 연기력에도 캐릭터에 빠져들지 않는 건('하이드')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4. 2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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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기발한 스토리에 연기력인데 왜 매력은 떨어질까

[엔터미디어=정덕현] 드디어 드러난 사건의 전말을 놓고 보면 JTBC X 쿠팡플레이 드라마 <하이드>의 스토리는 기발한 면이 있다. 그저 평범한 삶을 살던 나문영(이보영)에게 벌어진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들은 하연주(이청아)의 복수극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이 사건이 실체를 드러내기까지 <하이드>는 나문영의 주변인물들이 하나하나 껍질을 벗듯 충격적인 본모습을 하나하나 꺼내놓는 것으로 극적인 이야기를 이어왔다.

실종된 줄 알았던 남편이 사체로 발견되고, 알고 보니 그 사체는 남편이 아니라 남편이 죽여 자살로 위장한 사람이었으며, 다시 나타난 남편은 옆집 여자 하연주와 불륜관계였고, 그 하연주와 함께 금신그룹이 리조트 사업을 명목으로 받은 은행 대출금 800억을 빼돌려 도주하려 했다. 그저 친절한 옆집 여자에서 남편의 내연녀로 돌변한 하연주는 거기에서도 모자라 나문영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꺼내놓는다. 그건 25년 전 나문영의 아버지 나석진(오광록)에 의해 죽게 된 하재필의 딸이었다.

빚쟁이에 몰리던 나석진은 벼랑에서 떨어져 죽어가는 하재필을 죽게 방치했고 그의 신분을 도용해 살아왔다. 놀랍게도 나문영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 나석진의 사체를 확인하면서 그게 친부가 아니라 하재필이었다는 걸 알고도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 거짓말은 나석진이 "그래야 네가 산다"는 말 때문이었지만, 그건 하연주에게는 너무나 큰 상처가 됐다. 결국 하연주는 복수를 하는데 그건 나문영 역시 똑같은 고통을 겪게 하는 것이었다.

이 드러난 실체를 놓고 되돌려 보면 나문영의 남편 차성재(이무생)가 벌인 일들이 저 하연주의 계획 안에서 벌어졌던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차성재가 해온 일들은 나문영의 아버지인 나석진이 저지른 일들과 겹쳐진다. 사람을 죽였고 그 사람의 신분을 훔쳐 살아야 하는 위기도 겪었다. 또 나문영의 아버지 나석진은 하연주의 아버지 하재필의 신분을 훔쳐 사는 대가를 톡톡하게 치러왔다. 하연주가 시키는 갖가지 더려운 일들을 도맡아 해야 하는 처지로 살아온 것.

결국 <하이드>의 이 기막힌 스토리는 제아무리 숨기려 해도 과거에 저지른 그 잘못은 결국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그만한 대가를 치른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서사가 모든 관계 속에 들어 있는데, 부모의 잘못이 자식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가 거기에 담겨 있다. 인권변호사인척 하지만 실체는 그저 정치와 권력에만 눈이 먼 차웅(박지일)이나 자식을 위해서는 살인까지 눈을 감는 박명희(남기애) 같은 부모와 그의 자식 차성재의 관계가 그렇고, 나석진과 나문영, 하재필과 하연주의 관계가 그렇다.

<하이드>는 이처럼 그 서사 구조만 보면 흔한 복수극에서 벗어나, 부정한 세상에서 죄가 어떻게 유전되고 그 죄를 숨기고 묻어두는 일이 훗날 어떤 결과로 부메랑처럼 돌아오는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러한 흥미로운 서사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대한 몰입감은 떨어지는 면이 있다. 그건 영국 원작을 가진 이 작품의 리메이크가 한국적인 정서에는 잘 맞지 않는 지점이 있어서다.

그건 인물에 대한 호감이다. 우리네 드라마 시청자들은 서사도 중요하지만 몰입할만한 인물이 사실 더 중요하다. 그만큼 공감가고 매력적인 인물이 서 있으면 서사가 다소 부족하다 해도 빠져서 볼 수 있지만, 정반대로 인물의 매력이 잘 보이지 않으면 몰입이 쉽지 않다. <하이드>에 등장하는 인물들, 즉 나문영, 차성재, 하연주 같은 인물들은 그런 점에서 보면 어딘가 충격적이긴 해도 매력이나 인간적 호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차성재는 처음에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로 호감을 불러 일으켰지만 그것도 잠시 거의 빌런에 가까운 변화를 보여줬고, 하연주 또한 복수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인물로 그 실체를 드러냈다. 저들과 대적하는 나문영이야말로 사실상 가장 호감을 줘야 하는 인물이지만, 그 역시 과거 아버지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지금껏 숨겨온 인물이라는 게 드러났다. 결국 나문영에게 남은 호감이란 딸 차봄(조은솔)을 어떻게든 지켜 자신 같은 처지가 되지 않게 만들려는 그 처절함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가 결국 드러낸 윤리적 결함은 시청자들이 이 인물에 보다 공감하게 만드는데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우리네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가진 '도덕적 우위'는 거의 절대적인 요소나 마찬가지다. 가난하든 실패를 겪었든 주인공이 도덕적으로 우위를 갖고 있다면 시청자들은 그에 대한 지지와 응원을 계속 이어간다. 오히려 그런 실패나 좌절이 저 사회시스템의 부조리에서 비롯됐다고 의식한다. 하지만 <하이드>가 꺼내놓은 세계 속 인물들은 주인공이라고 해도 그 누구 하나 도덕적 결함(물론 어린 날의 실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을 가지지 않은 이가 없다. 그나마 이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바꿔 나가려는 나문영의 모습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행보로 보이지만, 그 뒤늦은 선택이 이 인물에 대한 온전한 응원과 지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그나마 이 드라마는 이보영, 이무생, 이청아 같은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만드는 미친 연기력으로 이런 허점들을 채우고 있지만 그것 역시 한계가 분명하다. 시청자들이 애정을 느끼지 않는 캐릭터들을 애써 공감하게 만들려 애를 쓰고 있는 인상이랄까. 보다 쿨한 정서와 서사에 집중하는 서구의 작품들이라면 통했을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우리네 정서에는 어딘가 엇나간 듯한 <하이드>는 리메이크작이 특히 고려해야할 것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듯하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쿠팡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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